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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런 Mar 14. 2021

와! 틀렸구나, 잘 됐다!

'맞았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맞으면 커다랗고 예쁜 동그라미를 받습니다.

모두 맞는 날에는 밑줄 두 개로 강조한 멋진 100점 글자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기특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에 마음이 뿌듯하게 벅차오릅니다.


틀리면 가차 없이 쭉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빗금이 그어집니다.

한 개 틀렸을 뿐인데 100점을 받지 못한 안타까움에 짜증이 나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아깝게, 잘 좀 하지.'란 실망 어린 목소리를 눈빛에서 읽으며 마음이 타들어 갑니다.


어려서부터 빨간 동그라미를 받을 때마다 봤던 부모님과 선생님의 미소에 우린 중독된 게 아닐까요?




틀리는 건 중요하고 기쁜 일입니다.

현실에서는 잘 되고 있는 것보다 잘못되고 있는 것이 더 주의를 끕니다. 잘못된 걸 찾아 고쳐가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됩니다. 우리에겐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문제를 보고 바로 답을 맞혀서 동그라미를 받는 일에 집중하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어렵습니다. '맞았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마음이 문제를 덮고 자신을 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았다'에 집착하는 것은


'대충 맞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심어 줍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를 평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5지선다형 문제에서 매력적인 답 하나만 고르게 됩니다. 그렇게 선택한 답이 맞을 경우 나머지 네 가지 틀린 답은 다시 읽히지 않습니다.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많고 맞은 문제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시당한 네 가지 틀린 답은 도움이 되는 굉장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틀린 답 자체로 원래의 정확한 정보는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 정보를 어떻게 비틀어 틀린 답으로 만들어 냈는지 출제자의 입장을 가늠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틀린 답을 다른 형태로 바꿔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배울 때 접하지 못했던 지식을 변형하는 것에 익숙하게 해 줍니다.


'맞았다'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씌워지는 순간 이 모든 기회는 사라지고 그 문제는 다신 들여다볼 일이 없어집니다.


추측으로 맞힌 문제도 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정확히 안다면 5지선다형 문제의 나머지 틀린 답 네 개가 왜 틀렸는지 찾고 맞는 답으로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답을 정확히 모르는데 우연히 옳은 답을 골랐을 경우 '맞았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알아서 맞힌 거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차라리 틀렸으면 왜 틀렸는지 들여다볼 문제도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맞은 문제는 일부 지식만 가지고 풀었기 때문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그대로 남습니다.

추측에 의존해 선택한 답인데도 커다란 동그라미로 채점하고 나면 '찍은 답'이 뭐였는지 왜 맞았는지, 고민하던 다른 답은 왜 틀린 건지 모르는 채 넘어가게 됩니다.


정확히보다 빠르게에 집중하게 됩니다.

5지선다형의 틀린 답 네 가지는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 문제집에 반복해 나옵니다. 그래서 문제집의 문제를 많이 풀어 보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맞는 답이 첫 번째나 두 번째에 나오는 경우 거기까지만 읽고 표시하고 다른 문제로 넘어갑니다. 빠른 시간에 많이 푸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문제집을 빨리 풀어야 놀 수 있거나 어릴 때부터 빠르게 연산 문제를 푸는 연습 위주로 공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많이 빠르게 풀다 보면 여전히 '맞았다'는 사실에 집착하기 쉬우므로 실제 아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많이 풀었다는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고 공부가 끝납니다.

적은 문제를 천천히 틀린 답을 왜 틀렸는지 어떻게 고치면 될지 빠짐없이 분석하면서 푸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렇게 풀면 굳이 반복되는 문제를 여러 번 풀 필요도 없습니다.


10개의 문제를 답이라고 생각하는 걸 선택하고 채점한 후 틀린 문제의 정답만 확인하고 넘어가는 것보다 문제 하나를 풀어도 틀린 부분을 직접 고치고 맞는 답을 골라낸 후 채점해서 확인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맞고 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즐겁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틀린 문제는 틀렸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나쁘기 때문에 오래 들여다보고 싶지 않습니다. 정답만 확인하고 빨리 눈 앞에서 치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똑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으려면 오래 머물며 정확히 분석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오래 기분 좋게 보려면 '틀렸다'는 사실을 기분 나쁘지 않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틀렸을 때 "또 틀렸어!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리면 어떡해? 정신 못 차려? 집중 안 해?" 보다 "와! 틀렸구나, 잘 됐다! 모르는 부분을 발견했으니 지금 다시 정확히 공부하면 되겠네. 시험 보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다. 그렇지?" 또는 "시험 점수보다 뭘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히 알게 된 게 더 좋은 거야.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걸 얻었다고 생각하자."라고 말해주면 어떨까요?

'틀렸다'는 사실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고 모르는 걸 다시 공부할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라고 즐겁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아홉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문제를 틀리면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틀린 건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거라고, 고쳐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기쁘다고 진심으로 웃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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