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목표와 방향 대화로 공유하기
가장 좋은 학습 동기는 성취감이라고 합니다.
눈앞의 작은 보상이 계속 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큰 의욕을 불러일으켜 주는 건 커다란 최종 목표 달성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왜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걸 스스로 쟁취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미리 실감할 수 있다면 당장의 어려움을 참고 버텨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하루 종일 공부를 하거나 쉴 때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왜 그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본인이 명확한 답을 할 수 없다면 그 상황은 더욱 답답해질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우리 가족의 미래 기대 모습과 경제 환경의 변화를 구체적인 대화로 공유해 보는 건 어떨까요? 막연한 불안을 심어주는 것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정확히 지워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는 학생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공부 목표에 대한 대화가 필요한 이유
<백만장자 불변의 법칙>에서 토머스 J. 스탠리는 부자들의 삶을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 소득이 높다고 부가 오래 유지되지 않는 점을 발견합니다.
진짜 부자와 가짜 부자를 나누는 일차 요인은 본인의 지출 수준이었지만 본인이 검소하게 생활하더라도 자녀 양육에 많이 지출하는 경우 그 부는 자녀 대에서 금방 끝났습니다.
자녀에게 모든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경우 자녀들은 수입을 창출하려는 노력 없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소득이 높은 계층 수준의 지출을 유지했고 빠르게 재산을 소진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 자녀들은 본인의 힘으로 독립된 수입원을 만들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을 발휘해 부모 못지않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는 아무래도 손이 더디고 못 미더운 자녀가 걱정되기 마련이라 그에게 돈을 더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도움이 오히려 자녀를 더욱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인지 평생 부모의 뒷바라지에 기대며 사는 모습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뭐든 똑소리 나게 알아서 잘하던 자녀는 자기주장이 확고해 부모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잘났으면 혼자 잘 살아봐라."라는 말을 몸소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 앞길을 개척해 나갑니다.
부자든 부자가 아니든 대부분의 부모는 어린 자녀가 안쓰럽고 뭐든지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사랑하는 마음이 아이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해야 하는 기회를 뺏는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현재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은 어떤지, 미래 부모님의 노후 준비까지 고려했을 때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은 언제까지 해줄 수 있는지 미리 충분한 대화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부모님을 화수분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자녀에게 지원해 줄 수 있는 정도를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 교육이 함께 이루어질 때 학습 동기를 얻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몇 살까지 경제적 독립을 하려면 그 수단을 얻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절박함을 갖고 고민해볼 수 있으니까요.
경제적인 독립에 앞서 정신적인 독립이 필요하고 그 정신적인 독립은 부모와 자녀의 가장 큰 공통 관심사인 공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가정과 학교에서 전적으로 지원받고 있는 공부만이 당장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안전된 환경에서 독립하는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스스로 할 줄 아는 힘이 있다면 다른 어떤 분야도 독립적으로 배우고 훈련해내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공부 방향에 대한 대화가 필요한 이유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자립 능력을 키우는 첫 단계부터 주변의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아이들은 보조 바퀴를 단 채 네발 자전거로 달리는 연습을 합니다.
페달을 밟는 힘에 따른 속도감과 앞바퀴 방향 조절에 익숙해지면 보조 바퀴를 떼고 균형 잡는 연습을 합니다. 빠르게 달리다 넘어지는 게 무서워 페달을 밟지 않는 바람에 속도가 줄면 오히려 균형 잡기가 더 어려워 결국 넘어지고 맙니다.
여러 번 넘어지는 게 무서울 수도 있지만 그걸 감수하고 페달을 밟아야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웁니다. 저는 넘어지고 다치는 게 두려워 페달을 밟지 않았고 그래서 부끄럽지만 아직도 자전거를 타지 못 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이렇게 저렇게 해보며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골고루 받아 봐야 어떤 공부 방법이 자신에게 맞고 성과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패도 해봐야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몸소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혼자 넘어지며 걷는 방법과 자전거 타는 방법을 스스로 배운 아이에게 정작 중요한 공부 방법은 스스로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하면 또 넘어지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보고 방법을 찾아내던 아이에게 조금 떨어진 성적에 왜 그럴까,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다시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할 새가 없습니다.
아기일 때 넘어져도 괜찮다고 위로받고 한 발짝 걸으면 칭찬 세례를 받으며 컸는데 조금 컸다고 한번 넘어지면 비난이 쏟아지니 공부할 맛도 나지 않고 당장 학원 수업에 끌려 다니느라 홀로 실패 원인을 찾을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만 성적이 떨어져도 걱정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전염된 건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혼자 발을 떼던 용기가 사라지고 넘어지는 게 무서워 누군가 끌어주길 바라는 모습만 남은 것 같습니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기 전까지 초중학교 9년이란 시간은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가느라 시행착오를 겪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100점 과녁만 맞추다가 정작 중요한 시합에서 강적을 만나는 바람에 마인드 컨트롤 실패로 크게 빗나가기보다는 0점에서 100점 골고루 맞아가며 오차 범위를 줄여가는 게 안정적이지 않을까요?
주위 환경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꾸준히 유지해온 대로 실력을 발휘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나'에 대한 생각만 가득 찬 채 '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과 비교하거나 따라 하지 말고 '내 미래'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존감 높은 태도를 갖는 데는 부모님의 이해와 신뢰가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공부와 사투하면서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마주하고 있는 입시 경쟁이 치열해서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합니다. 그럼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당연한 선택이고 공부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을 품습니다. 그렇게 공부 효율을 스스로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때 그 고통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인식을 바꿔주면 어떨까요?
나중에 후회하기 싫으면 공부 열심히 하라고, 입시에 실패하면 다 끝장인데 이제껏 힘들게 고생한 걸 헛수고로 만들고 싶냐는 협박이 아니라 만약 입시에 실패하더라도 그동안의 공부 경험이 삶에 큰 도움이 되니 안심하고 마음껏 실력을 쌓아 놓으라는 격려를 주는 겁니다.
기억력, 논리적 사고력, 종합력과 분석력의 향상과 같은 두뇌 발달, 꾸준히 무언가를 해내는 끈기와 노력이라는 재능의 발견, 공부했던 모든 내용이 창의·융합과정을 통해 다른 분야에서 활용된다는 사실.
모두 입시가 끝나면 사라지는 물거품이 아닌 실제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이자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달려야 할 때 그저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부모님께서는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닦달하고 어딜 봐야 할지 모르는 자녀는 부모님만 바라보면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고 있진 않은지 걱정됩니다.
공부를 잠시 멈추고 함께 목표를 정하고 실천 방법을 구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가족이 함께 원하는 삶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보고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과연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