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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리런 Feb 08. 2021

학원에 자녀를 맞추지 마세요.

무리한 선행 학습의 부작용

주식 투자를 할 때 욕심에 눈이 머는 순간 그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가 된다고 합니다.

한 기업의 가치와 성장성, 재무제표를 자세히 분석하고 주식을 구입하는 것과 몇 % 의 수익을 약속하는 주식이니 지금 매수해야 한다고 유혹하는 돈 좀 번 지인을 따라 주식을 구입하는 것이 같을 수 없습니다.


자녀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달 생활비와 비슷하거나 이를 초과하는 사교육비의 비용을 놓고 보면 상당히 큰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출을 하기 앞서 사전조사가 부족하고 지출을 하는 중에도 검토가 드문 것 같습니다.


강력한 학부모 네트워크로 어느 학원의 어떤 강사가 좋은 지 선행학습을 몇 학년까지 미리 완성시켜 주는지 무슨 과목은 어디가 더 괜찮은 지에 대한 공급 주체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얻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투자 대상인 자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비 지출의 목적은 자녀에 대한 투자이지 잘 나가는 사교육 업체를 발굴하고 그 주식을 사서 되팔려는 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선 왜 자녀에게 투자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노후를 보장받고 싶어서? 그건 바라지도 않으니 캥거루족은 피하자는 생각으로 자기 앞가림을 하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못 다 이룬 명문대 입학과 전문직의 꿈을 대신 이뤄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에 덩달아 내 위상도 높이고 싶어서? 다 필요 없고 취업하기도 힘든 시대에 대기업 정도만 입사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서? 아니면 무엇이든 꿈을 펼치도록 도와주겠지만 공부는 어느 정도 기본은 해야 하니까?


사랑에 빠진 연인 사이에 서로의 단점이 보이지 않듯이 부모도 자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막연히 자녀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남들 다 하니까 자녀에게 투자를 해야 하며 그러니까 남들이 좋다는 기관을 수소문해서 자녀를 맡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녀의 수준에 적합한지 살짝 염려도 되지만 또래 친구들은 다 무난히 따라가는 (것 같은)데 혼자 수준 낮은 반에 보내긴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 정도 걱정은 말솜씨 좋은 선생님의 듣고 싶은 말만 들려주는 영업에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일단 믿고 보냈는데 효과가 미미하면 비싼 돈 주고 공부시켜 주는 데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먼저 탓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인도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서 주인공 8살 이샨은 난독증을 갖고 있어 수업시간에 딴짓만 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대체 뭐가 문제냐고 소리치며 이샨을 문제아 취급합니다.

우연히 이샨의 증세를 알아챈 니쿰브 선생은 난독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에게 중국어를 들이밉니다. 그리고 배운 적 없는 중국어를 얼른 읽으라고, 정신 차리고 집중하라며 왜 안 읽냐고 호통을 치는 방식으로 자신도 문제를 모른 채 혼란스럽기만 한 이샨의 입장을 이해시킵니다.



학생들도 선행학습을 할 때 이와 유사한 상황에 노출됩니다.

각자 분야별 두뇌 발달 속도와 학습 결손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다른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은 판단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이 아닐 때 다른 수업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잘못 판단하고 맙니다. 자신의 지능이나 학습 능력이 부족하다고 자책하는 것이죠. 그런 상태로 수업을 따라가면서 모르는 걸 부끄럽기 때문에 아는 척하기도 하고 또는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 쉽고 바로 잡을 기회도 놓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교육은 보충 학습보다는 선행 학습에 맞춰져 있습니다. 모두 앞서가려 하고 뒤처지는 걸 싫어하다 보니 학습 결손은 무시하고 무조건 빨리 배우는 걸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지는 듯합니다.


이제 저도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를 키우며 자녀의 사교육에 투자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제가 겪었던 사교육 경험을 돌아본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 일부 들려 드립니다.



선행 학습의 부작용


1.

저는 중3 때 특목고 입시 준비로 유명한 수학 선행 학원을 다녔습니다. 수준 평가 없이 학급의 등수만 가지고 반을 배정받았고요. 그런데 수준에 맞지 않는 선행 학습으로 이론 수업은 따라가도 활용 문제는 풀 수 없었습니다.

선행을 계속해왔던 다른 학생들이 문제를 척척 푸는 모습을 보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학원 교재를 숙제로 해갈 때는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어서 갖고 있던 수학 정석에서 똑같은 문제를 찾아 답과 풀이를 베껴 가기도 했습니다.

그걸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학원 선생님은 수강생을 놓칠까 봐 부모님께 제 상황을 정확히 알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제게 개별 보충 수업을 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실제로 얻은 것 하나 없이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 쌓인 채 몇 개월을 허비했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었던 수학이 이후 가장 못하고 자신 없는 과목으로 바뀌게 되었고 그 정서는 끝까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2.

같은 해에 원어민 영어 그룹 과외를 했습니다. 같은 학교 친구 3명과 함께였는데 안타깝게도 부모님들이 친하셔서 만들어준 그 모임 역시 제 수준에 맞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원어민과 어느 정도 짧은 대화가 가능했는데 저는 그때 그렇게 외국인을 가까이한  건 처음이라 대화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못 알아 들어서 친구가 통역해 줄 정도였기 때문에 저는 매번 우물거리다 오기 일쑤였고 그 좋은 회화 연습 기회를 모두 놓쳤습니다.

영어 실력 향상이란 목표는 완전히 실패인 선행이었고, 그냥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는 데 굳이 의의를 두자면 둘 수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가성비가 매우 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실패한 선행 학습의 영향이 그 수업이 종료되어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후 학교 수업을 들을 때 이해가 잘 되는 것조차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싸여 제 실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교육비 지출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저와 같은 일 없이 확실한 도움을 받으면 좋지 않을까요? 제가 겪은 경험이 대부분 '묻지마 투자'와 같은 사교육 선행 학습의 결과였지만 그중에는 평생 도움이 된 성공적인 경험도 분명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와 관련하여 사교육비 투자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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