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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Nov 30. 2016

애플이 빨간 이유

매년 12월 1일이 오면, 애플은 새빨개진다

5년 전, 광화문으로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길거리에서 “어린이들을 지켜주세요”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점심 식사 후 3,500원 짜리 커피를 쪽쪽 빨며 걷던 나는 커피 몇 잔 값에 어린아이들의 삶을 구할 수 있단 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결국 월정액 기부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 이후로 5년 동안 알량한 금액을 자동이체로 보내고 있다. 가끔은 내가 포기한 커피 몇 잔이 누군가의 밥이 되고 약이 되는 풍경을 상상을 한다. 내 보잘 것 없는 돈도 쓰임이 있다니. 기부는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비 내리는 뉴욕이다. 연말을 맞아 작은 모임에서 훈훈한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맞아 에이즈 퇴치 기관인 프로덕트 레드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애플의 리사 잭슨 부사장도 참여해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자는 의도”라며 지난 10년간 레드와 함께 일해온 취지를 밝혔다.


공익적이건 아니건,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도록 종용하는 과정은 결국 ‘마케팅’이다. 마케팅은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프로덕트 레드는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RED) 로고가 붙은 제품을 구입할 때마다 에이즈 없는 세계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보다 명료한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잠시 숫자를 살펴볼까. 10년 전, 이 캠페인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매일 1,200명의 아기가 에이즈에 감염된 채 태어났다. 하지만 지금은 400명까지 줄어들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남아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감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들어가는 하루 약 값은 고작 30센트라고 한다. 애플을 통해 모금된 돈은 1억 2,000만 달러. 4억 일 어치의 약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떤 국가 단위의 기부보다 큰 금액이다. 그리고 이 숫자를 만들어낸 건 사용자들이다. 이대로면 2030년까지 에이즈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우리’가 동참한 일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프로덕트 레드는 에이즈 퇴치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기존의 자선 단체가 강조해왔던 이미지를 강조하지 않았다. 아프고 슬픈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워 동정심에 호소하는 방식 말이다(이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신 새빨간 컬러로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기부가 쉽고, 즐거우며,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미지 말이다.


사실, 에이즈 환자를 돕는다는 건 일상에서 아주 먼 곳에 있는 특별한 일처럼 보인다. 애플과 레드는 이 거리감을 좁히고 일상 속의 기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양한 종류의 프로덕트 레드 제품 역시 그 일환이다. 애플은 올해도 아이폰7용 스마트 배터리 케이스나 아이폰SE 케이스, 비츠 솔로3 무선 헤드폰 같은 기존 제품들의 ‘레드 버전’을 출시한다. 친구에게 빨간색 아이폰 케이스를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셈이다. 애플 페이나 아이튠즈 결제를 통해서도 에이즈의 날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디지털 기부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대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은 ‘Games for (RED)’ 캠페인이다. 앱스토어의 다양한 게임 앱을 통해 직접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 캠페인 기간 동안 수익금 100%가 에이즈 기금에 기부되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웃고 즐기며 플레이하는 게임과 에이즈 퇴치 운동의 만남이라니. 아이러니해서 더 재밌다. 각 게임 개발사를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 다들 레드 캠페인에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레드 아이템 결제를 통해 기부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프로덕트 레드 프로젝트의 취지를 전달하는 스토리 텔링 방식이 인상적이더라. 게임 속 캐릭터와 다양한 스테이지를 통해 끊임없이 기부에 대한 동기 부여를 마련한다. 이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즐겁다. 콘텐츠가 가진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앱이 참여하지만, 그 중에서 내 관심을 끈 게임을 몇 가지 소개한다.




Angry Birds 2

로비오의 앵그리버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바일 게임 시장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타이틀 역시 레드 캠페인에 참가한다. 앵그리버드2는 캠페인 기간 동안 레드 컬러의 파워업 마스크를 제공한다. 고맙게도 이 아이템은 무료다. 게임 속 화폐인 젬(GEM) 80개를 0.99센트에 구입할 수 있는데 꽤 좋은 가격이다. 샵에 들어가면 ‘우리가 힘을 합치면 에이즈 없는 세대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크게 표시된다.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게임 화면 속에서 아주 눈에 띄는 자리에 배너를 내걸었다. 원래 그린 컬러인 돼지 캐릭터도 캠페인 기간 동안 레드 컬러로 변한다는 사실도 깨알같은 포인트. 모든 사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레드 피그 5천 만 개 잡기’ 리워드를 진행한다. 레드 캠페인을 장려하기 위한 가장 앵그리버드 다운 장치인 셈이다. 가장 재밌는 건 앵그리버드의 메인 캐릭터 이름이 우연찮게도 ‘레드’라는 사실이다. 이 캠페인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매치인가!



CSR2

레이싱 게임을 워낙 못하는 터라 즐기지 않지만, 이런 내 아이폰에도 다운로드돼 있을 만큼 유명한 게임이다. CSR2에는 레드 캠페인을 위해 아주 특별한 ‘아이템’이 추가됐다. 현존하는 자동차 중 가장 빠르다는 부가티의 시론을 게임 속 차량으로 채택한 것. 실제로 부가티와 긴밀하게 협조해 CAD 데이터까지 받아 실물의 느낌을 정교하게 표현해놨다. 당연히 레드 컬러다. 우리는 게임 속에서 260만 달러짜리 차를 19.99달러에 구입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번 캠페인을 위해 가장 화려한 스페셜 아이템을 준비한 게임은 CRS2가 아닐까.




FarmVille: Tropic Escape

팜 빌은 나만의 섬을 꾸미는 아기자기한 게임이다. 당연히 캐릭터와 아이템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번 캠페인을 통해 ‘리오’라는 라이프 가드 캐릭터를 추가했다. 리오는 바닷가 산호초에 서서 다른 캐릭터들의 안전을 지켜보는 역할이다. 캐릭터의 아이덴티티가 이번 캠페인의 취지와 잘 들어맞는다는 건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나의 착각일까? 다양한 레드 아이템도 추가되어 섬을 예쁘게 꾸미는 재미를 더했다. 사용자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게임 속 스크린샷을 공유하기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간편한 스크린샷 공유 기능을 마련했다. 흥미로운 건 공유를 보낼 때마다 자동으로 레드 캠페인에 대한 취지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영어는 물론이고 한글로도 보낼 수 있다.




YAHTZEE With Buddies

고전적인 주사위 게임인 야찌도 눈에 띈다. 사용자는 조금 더 유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레드 팩’ 보너스 롤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다. 친구와 함께 게임할 수도 있고, 게임 속 캐릭터와 대전하는 싱글 플레이 모드도 있다.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는 단계 별로 점점 더 강해지는 주사위 마스터들과 대결하게 된다. 이 마스터 캐릭터들에는 에이즈 퇴치 캠페인에 관련된 이야기를 녹여냈다. 의사 캐릭터가 점점 강한 영웅 캐릭터로 성장하는 등 게임 속에서 자연스러운 스토리 텔링으로 캠페이에 접근하려 한 모습이 엿보인다.




FIFA Mobile

EA의 인기 게임인 피파 모바일 역시 이번 캠페인에 동참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레드 캠페인에 관련된 메시지가 표시된다. 게임 내 스토어에서 어시스트 팩을 2.99달러에 구입할 수 있는데, 전액 모두 기부된다. 스페셜 키트에 포함된 레드 컬러의 유니폼은 캠페인이 끝난 후에도 게임 속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익숙한 축구 게임 속에서도 레드 캠페인의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


소개한 게임 외에도 붐비치, 클래시 오브 클랜 등 굵직한 모바일 게임 다수가 캠페인에 참여한다. 다양한 개발사의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만큼 여러 사용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캠페인이 될 것이다. 이제 곳곳에서 (RED) 표시가 보일 때마다 눈여겨 살펴보자. 좋은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엄지손가락 끝에서 벌어지는 일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아마 모두에게 빨갛고 따뜻한 12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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