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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16. 2017

이것이 맥주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새로운 술이 나왔다. 굉장히 맥주처럼 보이는데 맥주는 아니다. 하이트 진로가 야심 차게 내놨다. 이름은 필라이트.

‘12캔에 만 원’,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 이 두 문장은 우리 앞에 있는 수상쩍은 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


“Elephant in the Room”


명백한 사실이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를 말하는 표현이다. 그동안 국내 맥주 회사는 밀려드는 수입 맥주와 크래프트 맥주 사이에서 휘청였다. 그래, 우리 맥주가 싱거울 수 있어. 인정해. 하지만, 한국인의 최애 칵테일인 소맥엔 우리 만한게 없거든? 기업들은 변화를 거부했다. 그 사이 코끼리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올해 수입맥주 시장의 규모가 20%를 육박했다. 더 이상 코끼리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에 대해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해답은? 가격이다.


[뀨우. 필라이트의 마스코트가 코끼리라는 게 재미있다]


필라이트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맥주이길 과감히 포기했다. 발포주는 맥아 함량이 66% 이하인 술을 말한다. 맛 없기로 악명 높은 한국의 맥주도 최소 70% 이상의 맥아 비율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최근엔 맥아의 비율을 100%까지 끌어올렸다. ‘물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라는 광고 카피가 등장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12캔에 1만 원 하는 발포주’의 비밀은
바로 맥아의 비중을 낮춘 주세법에 있었다.



미안. 설명이 너무 길었다. 술은 결국 맛으로 이야기하는 법인데. 내 세 치 혀를 너무 놀렸다. 이 발칙한 술을 마시기 위해 당장 편의점을 찾았다. 비싸지 않은 맥주니까 편의점에 앉아 간단히 해치우기로 한다. 편의점에서는 한 캔에 1600원. 하지만, 할인마트에서는 정말 만 원에 12캔이란 놀라운 가격에 살 수 있다더라. 알코올 도수는 4.5%. 알코올 도수는 맥주와 비슷하다.


안주는 진짬뽕과 요즘 우리가 푹 빠진 CU 강레오 맥앤치즈. 컵라면이 1500원, 맥앤치즈가 3500원. 당연히 안주 값이 더 나왔다. 맥앤치즈는 정말 강추.


그래서 이게 맥주 맛이 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해줄 수 있다. 하지만 필라이트가 맛있어요?라고 묻는다면 글쎄. 무알콜 맥주보다는 맥주스럽고 그냥 맥주보다는 심심하다. 발포주란 애매한 이름처럼 맛도 맥주와 음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정답은 당신의 마음속에).


그러니까 무슨 맛이냐면… 모든 것이 서툴고 거친 20대 초반 같은 맛이다. 인생이란 시큼 텁텁한 맛을 이제 막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청춘 같은 맛. 편의점앞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새우깡 하나에 깡소주 하나로 밤새 울고 웃고 떠들던 그때 그 시절 같은 맛.


맥주가 식어갈수록 쓴맛과 쇠맛이 올라온다. 이상하지 그들의 젊음은 분명 부럽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선뜻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 맥주였다. 만약 내가 스무 살에 이 맥주를 만났다면, 아마 매일 마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슬프고 다행스럽게도 난 이제 돈 몇 푼에 나의 입맛을 저당잡히고 그저 취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아마 다음번에 편의점에 들른다면, 약간의 돈을 조금 더 낸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고를 것이다.


하이트진로 필라이트
Point – 골라 골라 12캔에 1만원
With –  새우깡
Nation – 한국
Style – 발포주
ABV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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