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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l 18. 2017

충전과 흡연사이, 아이코스

아이코스와 함께한 한 달의 동거 후기


날 기다렸나요?

한 달 정도 아이코스와 질펀하게 놀아났다. 의미 있는 한 달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 번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었지.


아이코스는 분명 좋은 기기다. 땅따먹기도 아닌데 날이 갈수록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담배 시장을 타계하고자, 필립모리스가 무려 10년 동안 2,200억을 투자해 야심 차게 내놓은 제품이니까. 아이코스는 출시되자마자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이란 별명을 달고 훨훨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코스에 궁금해했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대관절 저게 무엇이냐며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서 준비했다. 아이코스와 함께한 한 달의 동거 후기. 나와 아이코스는 어디까지 갔냐고? 결론은 이 리뷰의 끝에 있다.



태우지 않고 찐다는 건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건, 당신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아이코스의 첫 인상은 실로 근사했다. 매끈하게 빠진 새하얀 기기를 손에 쥐면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 니가 아이코스구나. 흡연을 하기 위한 과정도 모두 생경하다. 오른손으로 쥐었을 때 딱 엄지 손가락이 닿는 부분에 위치한 버튼을 누르면, 안녕? 하고 인사하듯 속을 열어보인다. 뭉툭한 아이코스를 꺼내고, 몽당 연필처럼 생긴 히츠스틱을 끼워넣는다.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부르르 몸을 떨어댄다. 예열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너의 몸이 뜨거워지기까지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언제 입을 갖다댈 수 있는지는 본능적으로 알수 있다.


따듯한 체온이 느껴지고,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이제 본게임이 시작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향이다. 고소한 쑥, 혹은 하얗고 탱글탱글한 밥알의 향기 같기도 한, 아이코스의 향은 참으로 오묘하다. 처음엔 이 향기가 고소하게 느껴졌다. 옆에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맡아 보라고 자꾸 강요

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역한 향이 올라온다. 그건 당신 탓.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다. 자주자주 밥(충전)도 먹여줘야 하고, 꾸릿한 향이 나기 전에 청소도 꾸준히 해주는 것이 좋다. 친절하게도 아이코스에는 청소 도구가 동봉되어 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그 순간이 주는 만족감을 해치지 않기 위해 진짜 담뱃잎이 들어있는 히츠스틱을 이용한 건 좋은 아이디어였다. 필터를 꺼내 입에 무는 것도, 자신이 진짜 담배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꽁초가 남는 것도 모두 진짜같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진짜는 아니였다.


예열이 되기까지의 짧은 순간, 다 피우고 나서 4분 동안의 재충전 시간까지. 아이코스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흡연은 지저분한 습관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정서적인 행위다.


내가 미울 때, 세상이 지긋지긋해질 때 입에 물던 그 경험. 공기 중에 흩어지는 그 연기를 째려보면서 나도 그렇게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 대. 딱 한 대만 더 피고 싶은 순간에 발을 달달 떨며 꼬박 4분이나 충전되길 기다리는 건 너무 지루하다.


[내 가방 속 아이코스 feat. 디에디트에코백]


마음이 변하니 커다란 케이스도 거슬린다. 너 정말 손이 참 많이 가는구나. 담배 찌꺼기가 남기 때문에 자주 청소도 해줘야 하고, 충전도 필요하다. 무거운 본체뿐만 아니라, 히츠 스틱까지 바리바리 싸서 다녀야 하는 것도 나에겐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었다.


[너 나랑 중고로운 평화나라에 갈래?]


어쩌면 난 이녀석을 누군가에게 팔게 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너무 좋다며, 이제 일반 담배는 역해서 피지 못하겠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아쉽게도 나한테 그렇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은 사랑과 닮았다. 열렬히 이 제품에 대해 사랑을 늘어놓다도 한 순간에 식곤하지.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쯧. 세상에서 제일 쉽게 뒤집어지는게 사랑이다. 변하지 않는 건, 정이다.


그래서 난 결국 아이코스와 헤어졌다. 넌 내 스타일이 아냐. 절레절레. 누구 사실분?


언제쯤 전자담배와 정붙이고 살 수 있을까? 아직은 희망을 잃지 말아야지. 어딘가에 날 구원하러 올 멋진 왕자님이 있다는 걸 믿어보자. 아아, 내 님은 저 무지개 건너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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