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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Feb 26. 2018

딱 이만큼의 편리가 손이 가게 한다

하이브리드 카메라 인스탁스SQ10

나는 디에디트에서 카알못(카메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맡고 있다. 수치스러운 과거를 얘기하자면 AF를 애프터 이팩트라고 말한 적도 있다. 과거의 치욕을 벗어던지기 위해 사진 트레이닝에 돌입했다. 그리고 노력하는 막내를 위해 에디터H가 꼭 나 같은 카메라를 던져줬다. 처음엔 쉬운 게 좋다면서 단순하고 가벼운 아이, 인스탁스 SQ10을.



이 아이는 기존 인스탁스 미니의 세 배 되는 가격이다. 고성능 카메라도 아닌데 35만 원이란 가격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간 즉석카메라들은 우릴 슬프게 했다. 사진을 수정할 방법도 없었고, 인화 전에 잘 나왔는지 확인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모처럼 잘 나온 사진을 따로 저장해둘 방법도 없었고 말이다. 이는 사진 한 장이라도 잃어버릴까 싶어 아이폰 앨범, 클라우드, 외장 하드까지 동원하는 내게 큰 슬픔이었다. 마찬가지로 저장 강박증에 걸린 디지털 맥시멀리스트들에게도 가혹한 행위였을 거다.


그런 우리에게 등장한 하이브리드 카메라 인스탁스SQ10은 사진을 저장할 수 있음은 물론, 간단한 편집까지 할 수 있는 똑똑한 아이다. 아 정말이지 영상편집 꿈나무이며, 포토샵도 수준급이고, 기사까지 쓰는 나를 쏙 빼닮았다.



시원스런 3.0인치 LCD 모니터로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확대하거나 비네트 조절도 할 수 있다. 총 10가지의 필터 중 원하는 분위기를 골라 입힐 수도 있다. 다만 사진 보정 앱에 익숙한 스마트폰 유저들에겐 조금 촌스러운 필터들이다. 이 역시 나를 닮았다. 다 잘하는데 카메라 실력만은 부족한 나.


무엇보다 재미있는 건 이중노출 기능과 썸네일 인화 기능인데, 내 안의 예술 세계를 뽐내기에 딱이다. 말로만 하면 재미없다. 자, 이제 사진으로 말하겠다. 아래는 저장과 수정의 즐거움에 사진전까지 열어버린 에디터 기은의 전시회. 차린 건 많으니 즐감하세요.



 제목 : 오피스 가족들 
실제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디에디트 에디터들. 각기 따로 찍은 사진들도 썸네일 인화 기능을 이용하면 한 장에 담을 수 있다. 포인트는 혼자 핑크빛 배경인 대표님(에디터M). 같은 장소에서 찍었는데 특유의 노랑머리가 화이트 밸런스를 바꿔놓았다.



제목 : 36만원 짜리 디에디트 로고 네온사인 
36만원 짜리니까 조각마다 4만 원 쯤 하려나. 9번에 나눠 찍고 썸네일 인화 기능을 이용했더니 스팀 펑크 느낌이 물씬 난다.



제목 : 별헤는 밤 
누가 알았을까. 물 빠지라고 담가둔 청바지에서 이렇게 멋들어진 무늬를 뽑아낼 줄은. 이중 노출 기능을 이용해 청바지를 찍고 내 얼굴을 찍었더니 멋들어진 사진이 나왔다. 부끄러우니까 사람들에게 자랑할 땐 밤하늘과 나를 찍은 것이라 말해야지. 모르고 보면 사뭇 진지하고도 아름다운 내 사진.



 제목 : 거울 속의 나는 두 명이오 
거울을 보는 나와 거울에 비친 나를 찍고 이중노출을 이용하면 내가 4명이 될 수 있다.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는 나는 꽤 아름답소.



[B컷]



 제목 : between couple 
친구 커플. 의욕이 넘친 나머지 발렌타인데이에 찾아가 찍사 역할을 자처했다. 현장에서 필름이 부족해 낭패를 봤으나 저장 기능 덕분에 추후 뽑아 선물했다. 그것도 두 장이나. 둘 다 원하는 사진을 똑같이 가질 수 있어서 기뻐하더라. 덕분에 데이트에 끼어들었던 내 행패를 용서받을 수 있었다. 미안했어. 그래도 추억을 선물했으니 행복하렴. 발렌타인데이에 커플을 찍어주는 내가 너무 슬펐으니 B컷으로.




 제목 :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다 
완성도 제로인 이 사진은 뭘까. 인스탁스 스퀘어 SQ10은 찍는 즉시 인화해주는 오토모드와 수정이 가능한 메뉴얼 모드가 있다. 문제는 모드를 변경할 때 누르는 버튼이 튀어나와 있다는 것이다. 가방에 넣으면서 버튼이 눌렸고 이때 오토모드로 변경된 줄 몰랐던 막내는 그저 셀카를 찍었을 뿐이다. 그리고 곧장 인화되었다. 이상하다. 어느 블로그에선 바로 취소를 누르면 나오지 않는다던데 나는 반쯤 나와버렸다. 또 펌웨어 업데이트를 하면 화면에 현재 모드를 띄어 알려준다던데 막내는 참, 이것도 몰랐다. 업데이트하면 컬러추출 기능도 추가된다더라.



제목 :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다 2 
밝기 조절 모드를 건드리다 실패한 사진이다. 인화 후 3분간 실루엣도 나오지 않아 다시 인화할 뻔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원인은 추위였다. 에디터H에게 물어봤더니 겨울엔 원래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필름을 겨드랑이에 껴두면 온도가 딱 알맞다고. 아, 이 사진은 겨드랑이에 낑겨 인화될 뻔한 사연도 가지고 있다.



저장 기능이 있다고 해서 몽땅 다 저장할 수만은 없다. 50장까지 저장 가능하며 따로 마이크로SD 카드를 삽입하면 다른 카메라에서 찍었던 사진을 인화할 수도 외부로 사진을 옮겨갈 수도 있다. 화면 상단에 위치한 빨간 인스탁스 이모티콘 아래의 숫자는 남은 저장 가능한 사진 수다. 그 아래 점박이들은 인화할 수 있는 필름의 개수.



스퀘어 필름의 가격은 10장에 1만 5,000원이다.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원하는 사진만 인화할 수 있는 점에서 오히려 필름값을 아낀다고 생각하면 수긍할 수 있다. 인화를 누르면 귀엽게도 모니터 속 필름이 쏙 따라 올라간다. 이제 아날로그의 감성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급작스레 여기서 치이고 말았다. 내 마음을 톡, 건드린다. 넌 정말 사랑스러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야.



사실 따지고 보면 애매하다. 인스탁스 스퀘어 SQ10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그 어딘가에 위치해 있으니까. 가격만 보면 그냥 디지털카메라를 사거나 포토프린터를 사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음악과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한다. 이를 위해 라디오, 턴테이블, 블루투스 스피커, 음악을 틀어주는 기기들을 샀는데 개중 최고는 출근 준비 때 이용하는 라디오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입할 당시엔 그게 최고로 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절차가 많았다. 첫째로 스피커를 켜고 둘째로 스마트폰과 페어링 하고, 셋째로 음악 앱을 켜야 들을 수 있다. 그러니 간편한 걸 좋아하는 나는 켜기만 하면 되는 라디오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인스탁스 스퀘어 SQ10도 그랬다. 필름을 꺼내 인화를 맡기는 행위, 휴대폰과 연결하고 인화하는 행위 모두 나를 ‘약간’ 귀찮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즉석에서 선별하고 인화가 가능한 인스탁스 스퀘어 SQ10은 아주 ‘약간’ 편했을 뿐. 결국 내 손때를 탈 기기는 ‘약간’ 편한 인스탁스 스퀘어 SQ10이 될 듯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딱 그만큼의 편리가 손이 가게 하니까.


재미있는 카메라, 재미있는 트레이닝이었다. 이번 트레이닝의 목표는 쉽고 빠른 카메라로 사진에 익숙해지기였다. 앞으로도 내 사진 트레이닝은 계속될 것이다. 고로 에디터 기은의 전시회 또한 계속된다. 다음 내 손때를 탈 기기는 뭣이 될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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