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관
꼭 멤버십에 가입해야만 취향관의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픈 살롱 것도 있는데, 멤버가 아니어도 신청을 할 수 있다. 멤버십 가입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맛보기로 살롱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으며 노르웨이산 연어를 먹는 프로그램이 다행히 오픈 살롱이어서 나도 한번 신청해보려 한다.
안녕, 여러분. 디에디트의 외고 노예 김석준이다. 전 <소공녀>라는 영화를 봤다. 줄거리보다는 영화의 주인공 ‘미소’가 인상 깊었다. 미소는 돈이 없어서 대학교를 중퇴했고, 돈이 없어서 집도 없이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산다. 수입도 불안정했다. 가사도우미로 일해 하루에 4만 원 정도의 수당을 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미소가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두 가지가 있었다. 그건 바로 위스키와 담배. “너 아직도 그러고 사니?”라는 친구의 말에 미소는 이렇게 답한다. “알잖아. 나 술 담배 좋아하는 거. 그건 포기 못 해.”
자신의 취향을 굳건히 지키는 사람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돈 때문에 나의 취향을 하나씩 포기할 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괜히 응원해주고 싶다. 그런데 취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금 소개할 ‘취향관’은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카페도 아니고 술집도 아니다. 여긴 살롱이다.
살롱? 살롱?? 살롱???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몇 개씩 떠오르겠지. 그럴 수밖에 없다. 살롱은 21세기를 사는 표준의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디터M이 좋아하는 192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를 보면 살롱의 분위기를 조금 알 수 있는데, 아래 이미지 같은 느낌이랄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드나잇 인 파리>의 스틸컷을 가져왔다.
살롱을 굳이 해석하자면 ‘사교장’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만, 그 기능은 단순한 사교에만 머물지 않는다. 남녀의 벽, 신분의 벽을 깬 대화의 장이었고, 소설가, 미술가 등이 만나는 지적 토론의 장이었다. 물론 건전하게 토론만 한 건 아니고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사랑도 싹트고 그랬겠지. 자, 이제 다시 취향관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자.
취향관은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어서 가입한 멤버만 취향관을 이용할 수가 있다. 멤버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일정 금액을 내고 월간 또는 3개월짜리 시즌 멤버십으로 가입하면 멤버가 될 수 있다. 월간 멤버십은 12만 원, 시즌 멤버십은 30만 원이다.
이쯤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길 것 같다. “그럼 멤버십에 가입하고 공간을빌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대화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가격이 좀 비싼 것 같은데요?” 다. 그렇다면 가격이 비싸다고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취향관은 공간만 빌려주는 곳이 아니다. 음식, 책, 음악 등 사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있다.
위 공간은 컨시어지라는 곳인데, 마치 호텔처럼 취향관의 손님을 맞이하는 첫 공간이다. 취향관에 입장하면 바로 저곳으로 가서 설명을 들으면 된다. 일종의 체크인이다. 컨시어지에서 지금 준비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4월에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있는가 보니 [목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프로그램이 있더라. 어릴 때 들었던 노래 한 곡, 요즘 자주 듣는 음악 한 곡을 가지고 와서 다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두 곡 중 하나는 반드시 LP, CD, 카세트테이프여야 한다는 아날로그적인 옵션과 함께. 이 프로그램은 차우진 음악평론가가 진행을 해주더라.
2층에 있는 방. 이 안락한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얘기를 나누는 거다.
또 다른 프로그램 하나를 얘기해볼까. [미식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함께 음식을 먹으며 책에 대해 얘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으며 노르웨이산 연어를 먹는 건데, 둘의 매칭이 뜬금없어서 귀여웠다. 이외에도 GQ 코리아의 손기은 에디터와 함께 하는 [취향탐구생활], [사진으로 일상 담기] 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스킬이나 기술을 일방적으로 알려주기보다는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향으로 준비되어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참고로 프로그램 캘린더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꼭 멤버십에 가입해야만 취향관의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픈 살롱 것도 있는데, 멤버가 아니어도 신청을 할 수 있다. 멤버십 가입이 조금 부담스럽다면 맛보기로 살롱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으며 노르웨이산 연어를 먹는 프로그램이 다행히 오픈 살롱이어서 나도 한번 신청해보려 한다.
2층에는 계단식 의자로 되어있는 미디어룸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같이 영화를 보고 얘기를 나누기에 좋아 보였다.
1층에는 ㄷ자 형태의 바(bar)가 있다. 커피도 팔고, 술도 파는 곳이다. 이 날 방문했을 때도 한 손님이 홀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로운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 부러웠다. ㄷ자의 바가 그리 크지 않아서 서로 대화를 나누기엔 편해 보였다.
1층의 로비에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 지금껏 취향관을 세 번 정도 방문을 했는데, 그중 두 번을 소파에 앉아 낯선 사람과 대화를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른이 된 우리가, 그것도 서른을 넘긴 내가 낯선 사람과 일에 관련되지 않은 대화를 나눌 일이 얼마나 될까.
공간 곳곳에는 책과 잡지가 꽂혀있었다. 1층 로비에 있는 책꽂이에도(영화 <킹스맨>에서 보던 것 처럼 책꽂이를 밀면 비밀의 방이 나타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책과 잡지들이 보였다.
이곳은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상업공간임에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처럼 조금은 경계가 풀어지는 따뜻함이 있었다. 특히 바닥, 가구 등에 따뜻한 느낌의 나무 소재를 활용해 아늑했다. 그리고 화장실에는 사용하지 않는 욕조가 있었는데, 요소 하나하나가 공간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세면대에 이솝이 있다든지, 수십 개의 나무 의지가 제각각 다른 디자인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글을 마무리하려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취향이 있으면 나한테 뭐가 좋을까?”글쎄. 자기계발? 사고의 확장? 넓은 인간관계? 그럴 수도 있겠지만,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냥 이거 아닐까. 그래야 인생이 덜 심심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