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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29. 2018

이곳의 모든 술을 탐했다

포르투갈 포트와인의 모든 것 

여러분 안녕, 에디터M이에요. 제가 요즘 술꾼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나요? 여자 셋이서 매일 정확히 한 병(아니, 가끔 2병)의 와인을 비우고 잠든다는 이야기는요? 반주가 없이는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데 이걸 어쩌죠?


술이 점점 늘어가요…못생김도 함께…


포르투의 자라나는 새싹 술꾼러가 된 저는 결심했어요. 이왕 이렇게 된거 끝까지 가보자! 이곳의 모든 술을 탐하고 기사로 남기리라. 그 첫번째는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와인, 포트 와인에 대해 말해볼까해요.


포트 와인이 뭐에요?


와인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한국에서 마실 땐 그냥 레드인지 화이트인지만 정하고 나머지는 그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고르는게 전부인걸요. 그런데 여러분 다행히 포트 와인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맛도 이야기도요. 저도 이해했으니까 여러분도 할 수 있을 거에요.



어쩌면 포트 와인이란 게 좀 생소할 수도 있어요. 한 마디로 포트 와인은 굉장히 달고 독해요. 알코올 도수가 18도에서 20도 정도거든요. 소주와 비슷한 도수의 와인이라니. 말만 들어도 벌써 맛있을 것 같고 위험하고 막 그러지 않나요? 



포트 와인을 마시면 라즈베리, 블랙베리, 카라멜, 시나몬, 그리고 초콜릿까지. 우리가 디저트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맛을 느낄 수 있어요. 달고 독하니까 식사 중엔 잘 마시지 않아요. 식후에 디저트로 마시는게 정석이죠. 과거 신사, 숙녀들은 저녁을 먹고 응접실에 모여 삶의 의미와 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토론을 하며 포트 와인을 마시곤 했대요. 크으. 너무 낭만적이죠? 그래서 디에디트 세 여자도 매일 늦은 저녁을 먹고(이미 와인으로 들큰하게 취한 뒤) 이층집 테라스에 앉아 디에디트 콘텐츠가 나아가야할 길과 인생에 대해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마시고 있답니다. 참 낭만적인 술이에요.


특히 시가랑 초콜렛 무스랑 체리랑 같이 마시면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

포트 와인 자체가 맛이 진하기 때문에 안주는 그만큼 강한 맛이 필요해요. 쿰쿰하고 꼬릿한 냄새가 나는 치즈나 다크 초콜릿도 좋아요. 전 마트에서 산 초콜렛 무스랑 함께 마셨는데 기가 막히더라구요.


와인에 대한 영국 사람들의 집념으로 탄생한 술 


저는요, 뭐든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 시작을 되짚어 보는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지금부턴 이 포트 와인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이게 또 아주 재미있거든요.



포트 와인의 시작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영국과 프랑스가 벌였던 백년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국 귀족들은 프랑스 와인을 사랑했어요. 당연하죠. 이렇게 맛있는데 어쩌겠어요. 반주에 와인만한 게 또 어디있나요? 그런데 프랑스가 치사하게 전쟁 중에 영국으로 수출되는 와인을 모두 금지시킨거에요. 하긴. 전쟁중에 와인이 왔다갔다 하는 것도 좀 웃기긴 하네요. 아아. 더 이상 와인을 마실 수 없던 영국인들은 심각한 금단 증세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와인을 대체할 장소를 찾기위해 눈에 불을 켜던 영국 사람들은 바다 건너 포르투갈을 발견했어요! 포르투갈의 북쪽, 그러니까 디에디트가 지금 살고 있는 포르투 지역엔 아름다운 도루강이 흐르고 있어요.



도루강 상류지역(지도의 푸른색 빗금의 도루 밸리)의 너른 땅과 일조량, 강수량까지 모든 것이 포도를 재배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거죠. 신이 난 영국 사람들은 열심히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어 영국으로 보내기 시작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포르투갈에서 온 따끈따끈한 와인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배를 타고 오는 동안 와인이 다 상해버린 거에요. 만찬을 차려놓고 와인을 땄는데 시큼떨떠름한 와인을 입에 머금게 된 귀족들의 얼굴을 상상해보세요.



영국 사람들은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어떻게 하면 항해 중에 상하지 않는 와인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들은 와인에 독한 브랜디를 넣기 시작했어요. 높은 알코올 도수가 일종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셈인거죠.


아까 포트 와인은 달고 독하다고 한 거 기억하시나요?


높은 도수는 브랜디를 섞어서인데 그럼 단맛은 왜 날까요? 설탕을 넣어서? 놉! 발효라는 건 효모가 당분을 와구와구 먹고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과정을 말하거든요. 포도를 으깬 뒤 포도의 달콤한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발효되기도 전에 77도 브랜디를 콸콸 들이 부었으니, 포도의 당이 발효되지 못 하고 그대로 남아 이토록 달콤한 술이 된 거랍니다.



포도는 도루강 상류에서 재배하고 브랜디를 넣고 숙성하는 과정은 바로 여기, 포르투에서 이루어져요. 에디터H가 사랑해 마지않는 히베리아 거리의 맞은 편. 붉은 지붕의 낮게 깔린 이곳 말이에요. 과거엔 도루 상류에서 만든 와인을 이곳에서 숙성한 뒤 오포르투 항구를 통해 바로 영국으로 산지직배송! 포트 와인이란 이름도, 포르투갈이란 이름도 모두 이 항구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엔 수많은 와이너리들이 워낙 가까이 붙어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3군데 정도는 거뜬하게 돌 수 있답니다. 제가 또 직접 와이너리 투어도 다녀왔는데, 그건 나중에 영상으로 보여드릴거에요.


정리하자면, 포트 와인은 프랑스 와인을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된 영국 사람들이 와인에 대한 집념으로 탄생한 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쟁은 해야겠고, 와인도 마시고 싶은 그 마음. 역시 사람은 재미있어요.


그럼 이제 뭘 마실 지 골라 볼까요?



포트 와인은 색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뉘어요. 화이트, 로제, 루비, 토니. 가장 기본이 되기도 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레드 와인을 포트 와인에서는 ‘루비’라고 부른답니다. 황갈색이란 영어 단어에서 나온 토니(tawany)는 조금 뒤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볼게요.


루비는 아주 큰 통에 넣어 숙성을 합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루비는 레드 와인과 비슷한 붉은 색을 내요. 와인 1,000리터는 족히 들어갈 수 있는 큰 통에 넣어 2년에서 3년 정도 숙성한답니다. 이 때 5분의 1정도 되는 양의 브랜디를 콸콸 붓는대요. 아, 이 큰통의 이름은 VAT. 오크 나무와 밤나무를 섞어 만든답니다.



루비는 레드 와인에 설탕을 넣고 졸인 것처럼 달콤하고 과실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어요. 포트 와인을 처음 시작한다면, 무조건 루비 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왜냐면, 포트 와인이 무엇인지 가장 단박에 알 수 있는 기본적인 맛이거든요.



다음은 가장 생소한 개념인 토니(tawny) 포트 와인을 설명해볼게요. 토니 와인은 포트 와인 중에서 루비 다음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포트 와인이랍니다. 숙성 연도에 따라 10, 20, 30, 그리고 40년까지 있는데, 숫자는 토니 와인을 만들 때 블렌딩한 숙성 연도의 평균 값을 적는다고 해요.


왼쪽이 토니와인을 숙성하는 작은 통 그리고 오른쪽이 루비 와인을 숙성하는 거대한 통

아까 루비 와인이 엄청나게 큰 오크통에서 숙성을 한다고 말했었죠? 토니 와인은 그것보다 훨씬 작은 통에서 숙성이 이루어져요. 같은 기간이라도 더 작은 통에서 숙성을 하니 와인이 산소나 혹은 통과 닿는 면적이 훨씬 커진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오랜 시간 숙성할수록 포도에서 느낄 수 있는 과일맛과 향이 옅어지고, 조금 더 복합적인 풍미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루비가 베리류와 초콜릿의 맛이 지배적이라면, 토니는 좀 더 달고 진하고 진득한 카라멜 혹은 구운 견과류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어요. 뭐랄까 와인과 위스키의 중간 정도 맛이랄까요?


아 아름다운 토니 와인! 노란빛이 도는 컬러가 매력적이에요

포르투에서는 카페에서 와인을 팔아요. 신나는 일이죠? 제가 또 호기롭게 어떤 카페에서 토니 와인 40년을 시켰잖아요, 가격은 12유로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이 정도 숙성된 토니 와인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미묘한 맛을 내는데, 약간의 산미와 흙 내음, 후추, 그리고 구운 헤이즐넛의 고소함 까지 느낄 수 있어요. 위스키처럼 고급스럽고 농밀한 맛이 나더라구요. 물론 시럽처럼 달콤하기도 하구요.


물론 토니 포트 와인 20년도 마셨습니다. 헤헤

그런데 전문가들이 가장 즐기기 좋은 토니 포트 와인은 바로 중간 정도 숙성한 20년이라고 하네요. 토니 와인이 궁금하면 20년이 기준이다 생각하고 먼저 즐기는 것을 추천할게요.


포르투에서는 포트 와인의 기본을 조금씩 마셔볼 수 있는 미니어처 세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잘 모르겠으면 이걸 사면 됩니다

난 최고로 좋은 게 마시고 싶은데? 


이제 귀한 정도에 따라 구별을 해볼까요? 기준은 두 가지에요. 특정 해에 수확한 질 좋은 포도로만 만들어 병에 연도를 꽝 찍었는지, 아니면 여러해에 수확한 포도를 섞었는지가 그 하나구요. 배럴에서 숙성을 했느냐 아니면, 병에서 숙성이 되었느냐 두 번째 기준입니다.



병에 리저브(reserve)가 붙어 있다면, 루비 와인의 프리미엄 와인이란 뜻이에요. 다양한 해에 수확해서 만든 와인을 블렌딩한 뒤, 오크통에서 5년 정도 숙성해서 나온 와인이랍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서 위스키 중에 조니워커, 발렌타인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이해하면 되겠네요.


귀한 빈티지 와인이시여!

역시 가장 귀한 건 빈티지(vintage) 포트 와인이에요. 유난히 포도 농사가 잘 되었다 싶은 해에 만들어진 귀한 와인입니다. 빈티지 포트는 병입 전 2년에서 3년 정도 숙성 후, 그 해의 연도를 꽝 새기는 거에요. 다음부턴 시간의 몫입니다. 지나간 세월만큼 병 안에서 숙성이 이루어지는 거고 우리는 그저 기다릴 뿐인 거죠. 작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충 2년에서 3년에 한 번씩 빈티지 와인이 나오는데 이게 와이너리의 자존심이거든요. 전체 포트 와인 시장에서 오직 2%만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지 감이 오시나요?


맛을 설명해드리고 싶은데 아쉽게도 빈티지 와인은 아직 한 번도 마셔보지 못했어요.


이걸 보고 제 주변의 85년생들이 떠올라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왜냐면 제가 마실 것도 없거든요

빈티지 와인을 가장 마시기 좋은 때는 20년에서 40년 사이라고 해요.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태어난 해의 빈티지 와인을 선물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되겠네요. 제가 태어난 년도인 1987년 빈티지 와인이 보이면, 한 병 사가고 싶은데 아쉽게도 아직 찾지 못했어요. 일반적인 포트 와인은 10유로 정도면 살 수 있는데, 빈티지 와인은 가장 저렴한 게 80유로 정도는 줘야 하더라구요. 흑.


지금 머물고 있는 이층집 숙소에 도착했을 때 호스트가 선물로 준 Kopke 2013 L.B.V. 포트 와인


다음은 L.B.V.(Late Bottled Vintage)입니다.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는, 위에 설명한 빈티지 와인의 보급형(?)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네요. 빈티지 와인 만큼은 아니어도 괜찮은 해의 좋은 포도로 양조해 오크통에서 4년에서 6년 정도 숙성한 뒤 병에 담은 걸 말해요.



빈티지 와인이 병입 전 2년에서 4년 정도 숙성을 하는 반면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는 4년에서 6년 정도 숙성합니다. 빈티지 보다 조금 더 오래 숙성해서 ‘late bottled vintage’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쉽죠? 혹시 제가 쉬움을 강요했나요? 훗.



L.B.V.는 애초에 태생이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빈티지 포트 와인을 맛볼 수 있게 한 거라, 맛있어요. 저희 최애 포트 와인이거든요. 맛이요? 포트 와인의 달콤한과 과실향은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일반적인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탄탄한 바디감까지 함께 느낄 수 있어요. 뭐랄까 포트 와인과 일반 와인의 매력을 모두 갖고 있다고 할까요? 너무 좋아요.



포트 와인잔은 일반 와인잔을 고대로 축소시켜 놓은것처럼 작아요. 용량은 230mL 정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보르도 와인잔 용량이 650mL 정도라고 하니 확실히 작아 보이죠? 여기에 조금씩만 따라 마셔도 금세 취하니 다들 조심하시구요.


길고 길었던 포트 와인 이야기는 요약으로 마무리할게요. 그래서 포트 와인을 마시고 싶은데 무엇을 마시면 되는지 궁금하다면, 일단 지금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전 그럼 이 기사의 끝을 축하하는 의미로 포트 와인 한 잔 마시러 갈게요. 다음 술에 또 만나요.


꼭 마셔야할 포트 와인


  

포트 와인 루비 혹시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루비 리저브(reserve)로

  

토니(Twany) 포트 와인 20년

  

L.B.V.(Late Bottled Vintage) 

  

아니면 아주 귀여운 미니어처를 사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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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을 물처럼 마시는 세 여자가 궁금하다면,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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