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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25. 2018

이 도시를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포르투 뜨내기의 10가지 가이드 



이 도시를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직 한국에선 그리 유명한 여행지가 아니고, 알려진 정보도 단편적이다. 시 자체의 인구만 따지면 31만 명. 큰 규모는 아니지만, 수도인 리스본에 이어 포르투갈 제2의 도시다. 쉬운 이해를 위해 촌스러운 비유를 불사하면 한국의 부산 정도가 되겠다. 실제로 둘다 항구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영 억지스런 비유는 아니다.



포르투라는 묘한 이름부터 들여다보자. 포르투갈이라는 국명에서 따와서 꼬리만 떼낸 것 같지만 정반대다. 놀랍게도 포르투갈의 국명을 포르투에서 따왔다. 나라의 이름이 될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한두 골목만 둘러봐도 옛 모습이 얼마나 잘 남아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이건 선택적인 보존은 아니었다.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도루강 하구에 위치한 포르투는 이 꿀 같은 지리적 조건 덕분에 항구도시로서 화려한 리즈 시절을 보낸다. 포르투라는 이름 역시 항구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대항해시대가 지나고 유럽 경제의 중심이 바뀌자, 포르투는 시대의 흐름에서 도태된다. 덕분에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아름다운 건물과 유적지가 고스란히 남아 2000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심지어 훗날 해리포터의 배경이 될 정도로 말이다. 확실히 마법같은 곳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포르투의 역사나 유적지에 대한 건 아니다. 2018년의 포르투에서 잠시 머물면서 느낀 현실적인 이야기. 여러분에게 이 도시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방법이 가장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포르투 뜨내기의 10가지 가이드를 정리했다.



1. 포르투갈의 음식은 한국과 정서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식재료나 조리 방법 모두 익숙하다. 스테이크를 시켰더니 ‘시래기 무침’으로 보이는 사이드 디쉬가 나와 당황한 적도 있다. 심지어 맛도 비슷하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먹는 해물밥이나 문어밥 등의 전통요리는 ‘어쩐지 먹어본 맛’이다. 실제로 집에서 문어 육수를 내서 신라면 분말 스프를 소량 넣고 끓였더니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 풍미가 되더라. 바다에 둘러싸인 나라라 해산물 요리가 끝내준다. 특히 문어 구이가 대단하다. 문어 다리에 무슨 짓을 한 건지 씹는 순간 입 안에서 푸딩처럼 흘러 내린다. 한국인 입장에서 ‘음식 적응 스트레스’는 적지만, 간이 아주 센 편. ’Sin sal’이라고 말하면 소금을 빼주는데, 짧게 머무는 여행객이라면 포르투갈 요리의 짭짤한 매력을 한 번 즐겨보시길.



2. 음식 얘기를 하나 더 하자. 문어도 맛있고, 바칼라우(염장 대구)도 맛있지만 포르투갈 최고의 식재료는 단언컨대 감자다. 집에서 감자조림을 네 번이나 해 먹었다. 고추장에 졸여도 맛있고, 그냥 쪄먹어도 맛있고, 버터에 구워 먹어도 맛있다. 여기는 틀림없이 감자의 나라. 적당한 단맛, 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실제로 여기 사람들은 감자를 엄청나게 먹는다. 보통 고기 요리를 시키면 감자 튀김이 곁들여 나오고, 생선 요리에는 올리브 오일에 살짝 볶은 찐 감자가 나온다. 밥 대신 감자를 먹는다고 생각하면 쉬울 듯. 한국에 사가고 싶을 정도로 놀라운 맛이다.



3. 술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여기 머무는 동안 단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2% 도수의 레몬 맥주는 물 대신 마셨고, 와인은 밥 대신 마셨다. 대낮에는 가볍게 샹그리아도 좋다. 마트에 파는 와인은 대부분 한 병에 2~5유로 정도면 살 수 있다. 놀라운 가격인데 심지어 맛과 품질도 좋다. 작정하고 마트에서 가장 비싼 포르투갈 와인을 골라보자고 했는데 간신히 10유로를 넘겼다. 물론, 포트 와인은 숙성 기간에 따라 더 비싼 것들이 많다. 이건 에디터M이 따로 소개할 예정. 가장 감동했던 건 마트에서 구입하는 가격과 레스토랑에서 구입하는 가격에 크게 차이가 없었다는 것. 제법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모엣 샹동 한 병을 45유로에 마셨는데, 집 앞 마트에서 40유로였다. 한국이었으면 마트 가격과 2배 이상 차이가 났을텐데. 브라보.



혹시 레스토랑에서 마신 와인이 너무 맛있는데, 라벨에 그 레스토랑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면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 맛있는 와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야 한다. 우리는 A grade라는 레스토랑에서 마신 와인이 너무 맛있어서 따로 사갔다. 3병을 살 테니 가격을 제시해달라고 말하니, 병 당 1유로씩 깎아주더라. 후회없는 쇼핑이었다.



4. 콘센트는 220볼트를 사용한다. 덕분에 한국에서 가져온 수많은 촬영 장비를 편안하게 충전할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이곳에서 전자 제품을 사가도 한국에서 쓰기 아무 문제없다는 뜻이다. 시내에 ‘fnac(프낙이라고 읽었는데 알고 보니 프랑크라고)’이라는 대형 전자 제품 판매점이 있어서 종종 들렀는데, 역시 아무리 물가가 싸도 이런 건 네이버 최저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5.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게 포르투갈의 인터넷 속도다. 집에서는 와이파이를 사용하고, 스마트폰엔 보다폰(vodafone)의 선불 유심을 넣어 사용했다. 여행자를 위한 선불 유심은 옵션이 단 두 가지다. 하나는 15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3GB 데이터 유심, 다른 하나는 30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5GB 데이터 유심. 각각 15유로, 20유로다. 난 당연히 5GB 짜리를 구입했다. 고백하자면 벌써 세 개 째다. 한 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15GB 데이터를 쓴 내가 자랑스럽다. 한국의 LTE를 상상하면 실망하겠지만, 생각보다 쓸만한 속도다. 다만, 우리집 와이파이가 느리다. 공유기가 후진 것 같기도 하고. 거실에선 와이파이가 잡히는데 내 방에선 안 터지더라. 한국에서 전달된 1GB 짜리 파일을 받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고, 결국 실패했다.



6. 가끔 운 좋게 찾은 ‘로컬 맛집’에선 메뉴판에 영어가 없는 경우가 있다. 어느 나라든 메뉴 이름은 식재료와 조리 방법으로 구성되는 법이다. 몇 가지 단어만 알아두면 주문할 수 있다. 고기는 Carne, 생선은 Peixe, 꼭 먹어봐야 할 문어는 Polvo, 대구는 Bacalhau다. 솔직히 구글 번역기가 있는 세상에 더 설명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겠다. 주문한 적도 없는데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빵이나 치즈, 올리브는 유료다. 대부분 1유로에서 3유로 사이인데, 돈을 내기 싫다면 물리면 된다. 나는 한 번도 물린 일 없이 다 먹었다. 냠냠.



7. 포르투갈에선 무조건 우버다. 언제 어디서나 바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활성화 되어있다. 우버의 본진 실리콘 밸리에서도 이렇게 빨리 드라이브 매칭이 이루어지는 건 본 일이 없다.



8. 이곳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소박하다. 몇 주간 관찰한 소감으론 한국인과 많이 닮았다.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수줍다. 때로는 정열적이고 다혈질이다. 축구 경기가 있던 날 밤엔 전쟁이 났나 착각했을 정도다. 온 도시가 빵빵대고 소리지르고 노래 부르고. 이게 아침까지 계속됐다. 2002년 월드컵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운전 할 때 성격도 상당히 급한 편. 1시간 거리의 근교로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도 나름대로 미친듯이 밟고 있는데 계속해서 뒤에 바짝 붙어 똥침을 놓는다. 모두가 놀라운 속도로 달려간다. 아우토반인가?



9. 어젯밤엔 집 앞에 있는 바에 놀러 갔다. 입구가 허름한 동네 술집 같았는데,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화려하더라. 청담동 앨리스에 잘못 들어왔나 싶었을 정도. 말쑥하게 차려입은 멋쟁이들이 많았다. 스타일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서서 20대(로 보이는) 젊은이와 머리가 희끗한 중년 신사가 열띤 토론 중이더라. 다른 세대가 섞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풍경이 너무 생소해서 부러워졌다. 포르투의 건물들은 입구가 작아 보여도 들어가면 공간이 아주 넓다(혹은 길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상상도 못한 풍경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용기를 내서 들어가 보자.



10. 날씨는 좋다. 천하태평한 날씨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1년 내내 아주 더워질 일도, 아주 추워질 일도 없는 날씨다. 한낮에는 살이 아릴 정도로 해가 뜨겁다. 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이내 서늘해진다. 건조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분다. 일몰 이후엔 적당한 쌀쌀함이 찾아온다. 더운 날씨를 상상하고 여름 옷만 가져온 우리는 처음에 몹시 당황했다. 낮에는 반팔 차림으로 다니다가 저녁엔 겉옷을 걸쳐야 알맞다.



해가 길어서 9시 넘어서도 하늘이 훤하다. 덕분에 하루가 더없이 늘어진다. 사람들의 성미는 날씨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 도시의 날씨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는 법이 없다. 개가 혓바닥을 늘어뜨리는 여름도 없고 매섭게 추운 겨울도 없다. 포르투의 사람들은 내일의 날씨를 준비할 까닭이 없다. 월요일에도 토요일에도 사람들은 똑같이 느긋하다. 카페는 3시면 문을 닫고, 슈퍼마켓은 시에스타가 있는 건지 오후마다 문을 닫는다. 때때로 이 도시에서 일하는 건 우리 뿐인 것 같다. 어깨에 긴장을 풀고 싶어지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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