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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30. 2018

이 도시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

안녕, 오늘도 포르투에서 에디터H다. 한 달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밤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한 달간 연재할 콘텐츠의 제목은 뭐가 좋을까, 집은 어느 동네에 구하면 좋을까, 집세는 얼마일까, 여행자 보험은, 물가는, 음식은, 날씨는 어떨까. 이 프로젝트를 준비한 기간만 100일이다. 그동안 나의 마음은 항상 포르투를 향해 있었다. 이미 지중해를 건너 서울을 떠난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진짜 준비가 필요한 것들은 떠날 도시가 아니라 떠나온 도시에 있더라.



포르투로 떠나기 직전엔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곪아왔던 가족들의 갈등이 고름처럼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필 이럴 때 내가 떠나도 되는 걸까? 산더미 같은 짐을 두 개의 캐리어에 테트리스 하듯 욱여넣었다. 그런데 무거운 마음은 넣어둘 곳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괜찮으니 잘 다녀오라고 했다. 할머니는 다시 못 볼 사람처럼 나를 꼬옥 안았다. 네 살 먹은 계집애처럼 엉엉 울며 공항버스를 탔다. 가증스럽게도 이 아름다운 도시에 오고 나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겠다마는 포르투갈의 사람들은 내 나라의 사람들과 아주 닮기도 했고 아주 다르기도 했다. 길거리를 걸으며 생소한 풍경에 감탄하다가도 어떤 날은 서울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건 이 도시의 노인에 대한 에피소드다.



왜 포르투까지 가서 노인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냐고? 그도 그럴 것이 여긴 노인이 정말 많다. 특히 내가 사는 거리는 더욱 그렇다. 평일 낮에는 창밖으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만 스쳐 지나간다. 집 앞 마트에서 나와 함께 감자를 주워 담는 건 주름진 할아버지의 손이다. 낮에 빨래를 널러 테라스에 나가면 옆집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곤 한다. 새하얀 머리의 노부부다. 그들의 걸음걸이를 보며 세월을 유추해본다. 우리 할매보다 많을까, 적을까. 한국에 있는 우리 할매는 아흔 둘. 그들은 언제 태어난 사람일까.



나이 드는 것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내가 결론 내린 것은 없다. 그저 이방인의 눈으로 발췌한 몇 가지 풍경을 전한다.



1.


우리 집 앞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Garden of ST. Lazarus>라는 곳이다. 뒤늦게 알았지만 전쟁 이후에 여성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라더라. 학교 운동장쯤 될 법한 아담한 크기인데 참 아름답다. 빛바랜 붉은색 벤치와 새파란 잔디가 깔려있다. 오래된 나무가 많아서 천천히 산책하면 햇살과 그늘이 교차로 머리 위를 스친다.


어느 도시나 휴식이 있는 곳엔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있는 법이다. 평일 낮에 처음 갔을 땐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다. 공원 입구에선 유럽의 골목길이 다 그렇듯 지린내가 풍겼다. 드문 드문 풀밭을 침대 삼아 잠든 노숙인도 보였다. 가장 압도적이었던 것은 떼를 이루고 있는 노인들.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들이었다.



한 무리에 열 댓 명. 공원 곳곳에 동그랗게 네다섯 무리의 할아버지 길드가 있었다. 몇몇은 꽤 차려입고 있었고, 몇몇 얼굴은 험상궂기도 했다. 행색은 다르지만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커뮤니티’로 보였다. 동그란 원 안에서는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의 표정이 진지했다. 게다가 그 광경은 매일 반복됐다. 더러는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공원 앞을 지날 때마다 호기심에 시달렸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다.



용기를 내서 할아버지들의 무리에 들어가본 건 최근의 일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니 의외로 웃으며 반긴다. 까만 머리 여자들의 등장에 놀란 표정을 짓는 노인도 있었지만 이내 본업에 집중한다. ‘포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분도 있었다. 덕분에 좋은 사진을 얻었다.



할아버지들은 금 간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서 카드 게임 중이었다. 너덜 너덜한 트럼프 카드가 테이블 위를 날아다녔다. 포커인지 무엇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가장 서글서글한 할아버지가 계속해서 카드 게임의 룰을 설명해주셨지만 포르투갈어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분에게 우리가 전달할 수 있는 포르투갈어는 “우리는 한국인이다” 뿐이었다.


가까스로 얻은 정보는 하나였다. 이 카드 게임은 돈 내기가 아니라는 것. 공원 여기저기에 흩어진 테이블 마다 한 명이 승패를 노트에 받아 적고 있었다. 종로 출근 시절 매일 지나치던 탑골 공원이 떠오른다. 노인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데는 이유랄 것이 없었다. 일어나면 그곳에 모여 바둑을 두고 장기를 두고 훈수를 두고 하루를 보낸다. 거기가 그들의 사회였다.



2.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이 도시의 노인’이라고 단정 지어 갈 때쯤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거리엔 노인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와 가게가 따로 있었을 뿐. 내가 포르투 전통음식에 열광하며 정어리 구이와 문어 요리를 탐닉할 때, 포르투의 젊은이들은 샐러드와 베지테리언 샌드위치를 먹으며 다른 골목에 숨어있었다. 서울로 치면 ‘하동관’만 찾아다니며 “왜 나이 든 사람만 있지?”라고 생각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가게’는 있지만, ‘젊은이들만 모이는 가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따로 소개할 예정이지만 집 근처에서 찾은 근사한 바가 있다. 입구가 좁고 후줄근해서 별 생각없이 찾았던 곳이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얼마나 멋지던지. 힙스터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바텐더와 공간마다 분위기를 다르게 한 인테리어는 정말 기가 막혔다. 모처럼 발견한 멋진 가게에 신나서 여기저기 얼빠진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라.



대부분은 내 또래의 젊은이였지만, 그 바 안에서 음악과 술을 즐기는 연령대는 너무나 다양했다. 옥상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헐렁한 셔츠를 입은 20대 남자와 할아버지가 열띤 대화 중이었다. 생소한 풍경이라 나도 모르게 시선이 멈췄다. 테라스에는 8명쯤 되는 단체 손님이 있었는데 그 테이블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새하얀 수염의 할아버지도 있었고, 눈썹 위로 껑충 올라간 앞머리의 젊은 여자도 있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대화를 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당연하게.



그 순간 내가 서울에서 주로 가는 술집과 카페를 떠올려보았다. 성수동의 미슐랭 레스토랑, 해방촌의 펍, 상수동의 이자카야. 나는 멋진 분위기와 힙한 인테리어에 열광한다. 이렇게 멋진 나의 단골집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들어오는 일은 본 적이 없다. 마치 금단의 영역처럼 우리에겐 세대를 가로지르는 견고한 배리어가 있으니까. 하다못해 20대와 30대를 가르는 빗금 또한 우스울 만큼 명확하다. 나 역시 20대에 한참 찾던 술집을 서른 넘어선 간 적 없다. 취향이 달라지고 마시는 술도 달라졌지만, 이제는 그곳을 찾는 게 머쓱하다. 주책맞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포르투 번화가로 쇼핑을 나섰던 날, 손바닥만 한 크롭티와 에코백을 파는 매장에서 할머니가 진지하게 옷걸이를 뒤적이며 쇼핑하는 걸 보았다. 혜민이(에디터M)가 다가와 참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냐며, 본인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그런다. 그러게, 참으로 그렇다. 이 동네에선 금단의 영역이 없다. 20대의 사회가 있고 80대를 위한 사회가 있지만, 서로가 침범 못 할 영역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라면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다시 생각해본다.



3.


마지막 에피소드는 히베이라 광장이다. 포르투 최고의 관광지인 이곳의 백미는 레스토랑 앞이나 도루 강가 앞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아티스트. 하루는 현지인(으로 추측되는) 할머니가 악사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책맞고도 귀여운 할머니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점원들이 곤란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금세 누군가 와서 할머니와 팔을 맞잡고 춤을 춘다. 강렬한 댄스파티 뒤에는 진한 포옹이 남았다.



우리는 와인잔을 부딪히며 이 도시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려워할 것도 없고, 기피할 것도 없이 편안하게 다가가는 모습.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과 진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모습. 거기까지 얘기하다가 눈물이 헤픈 나는 조금 울먹였다.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다. 나의 오두방정을 싫어하는 에디터M이 곤란한 듯 코를 찡긋거렸기 때문에 금방 그쳤지만.


이 도시에 머무는 동안 나의 청춘을 기록하기보다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할머니가 된다면 이런 풍경 속에서 나이 들고 싶다. 멋진 가게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주눅들지 않고, 나와 다른 언어를 느끼는 세대와 여전히 대화 하고 싶다.



그러다 또다시 아흔둘인 우리 할매를 떠올린다. 할머니의 세계가 좁은 건 무릎이 아파서가 아니다. 방 밖의 세계가 노인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번의 봄이 남았는가를 생각한다. 할머니에게 포르투를 보여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이 도시에서 목격한 노인들에 대한 기록은 여기까지다.



이 도시에 머무는 세 여자들의 기록이 궁금하시다면,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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