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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31. 2018

이곳이 궁금한 걸 보니 이 도시를 사랑하나 보다

안녕, 여러분. 포르투에서 막내 에디터 기은이다. 여긴 참 사진찍기 좋은 도시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아름다운 건물, 멋진 외국인들로 붐비는 거리. 누구나 담고 싶은 풍경들일테다. 그러나 재밌게도 어느 날 들쳐본 내 아이폰 앨범 속엔 포르투의 문 사진만이 가득했다.


[에디터H가 보고 기겁했던 내 사진첩]

포르투에서 우리가 한 달 동안 머물 숙소에 도착한 순간, 나는 우리집 말고 옆집 대문에 꽂히고 말았다. 어린아이의 손 모양을 한 문두드리개(?)가 집집마다 다 붙어 있었기 때문. 한동안 정확한 이름을 몰라 ‘손모가지’라 부르고 다녔다. 문에 달린 작은 손을 잡고 흔들면 노크를 할 수 있는 원리인데, 진짜 그 용도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상징적인 장식물에 가까워보였다. 그때부터 집요하게 살펴보니 이 도시의 가정집 대문 중 8할이 앙증맞은 손을 가지고 있더라. 쳇, 우리집만 없었다.


[딱 5살 어린 아이의 손 같아 보인다]

각양각색의 페인트가 스민 도시 속 ‘손’은 바닐라 파르페 위 체리 같았다. 반짝반짝. 보석을 발견한 까마귀처럼 내 안의 수집 욕구가 끓어올랐다. 가져가 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가 평범한 우리 집 아파트 문에 붙인다면 영 어색해질 게 뻔하므로 참았지. 그래서 보이는 족족 사진으로 담아놨다. 이 도시 속 손들을 찾아 유랑하며.



앙증맞은 손이 기본값이라 생각했는데 아빠 손 같은 문고리도 있었다. 익숙하다고 자만했던 이 도시에서 커다란 문고리를 발견하는 순간 압박감에 휩싸였다. 포르투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모습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너무 커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아빠 손 같은 장식]

‘아빠 손’은 크고 아름다웠다. 포르투는 해리포터의 배경이 된 도시니 그에 맞게 비유해보자. (조앤 롤링은 포르투에서 해리포터를 집필했다고 한다) 여태껏 보아온 작은 손이 해리포터의 앙증맞은 노크였다면 아빠 손 문고리는 거인 해그리드가 문을 두드리는 느낌이다.


[빨간 문에 깜장 손이라니, 우아해]

아래서 위를 향해 찍은 것 같은 각도는 착각이 아니다. 대다수의 손 장식은 내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있다. 행여 아이들이 장난이라도 칠까 봐 손닿지 않는 곳에 둔 걸까? 지나가는 어른인 나조차 괜히 손을 흔들어보고 싶은데 하물며 아이들은 어떨까. 발을 동동 구르며 애닳지 않을까나.


우리가 지냈던 이층집엔 손 모양 문고리가 없었기 때문에 내 큰 호기심 중 하나는 결국 해소되지 않았다. 저걸로 노크하면 얼마나 큰 소리가 날지, 안에 있는 사람이 내게 문을 열어 줄 정도로 기척이 있는지 궁금했으나 알아낼 길이 없어 포기했다. 난 교양있는 사람이니 ‘벨튀’같은 건 꾹 참기로 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세월의 흐름을 한 눈에 실감할 수 있게 수차례 덧칠해진 페인트가 매력이다. 그리고 칠할 때마다 ‘손은 어떤 색으로 할까’를 고민했겠지. 어느 손은 여러 겹의 페인트칠이 함께 되어있고 어떤 손은 새로 붙인 듯 깔끔하며 어떤 손은 분위기 있게 녹슬어 있었다. 



계속해서 아가 손, 아빠 손으로 지칭했지만 사실 정식 명칭은 Hand of Fatima 파티마의 손 (Door Knocker)다.


포르투갈은 오래전 5세기(711~1249) 동안 아랍계 이슬람 교도인 ‘무어인’들에게 지배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때부터 이어져 온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이 문에 달린 장식에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파티마의 손이란 건 이슬람에서 사용하는 부적 같은 의미로, 이걸 붙이면 집을 보호해준다고 믿는다더라. 그저 귀여운 손모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


[실례합니다, 손만 찍고 갈게요]


Door Knockers Porto, Portugal door 등 여러 검색어를 통해 진실을 찾아 헤맸다. 재밌는 사실은 포르투갈의 문을 검색할 땐 제대로 된 정보가 나오지 않았는데, ‘Moorish legacy 무어인 전통‘라는 키워드를 찾아내고 나서야 ‘Hand of Fatima 파티마의 손‘ 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역시 지나간 시간을 되짚으면 많은 걸 알 수 있다. 


귀여운 문 장식 하나에도 도시의 역사가 담겨있다. 역사 공부에 큰 뜻이 없었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학창시절에도 이렇게 공부했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이곳이 이토록 궁금한 걸 보니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하나 보다. 한 달이란 시간이 참 짧게 느껴진다. 더, 더 알아 가고 싶다. 포르투 너란 도시. I ♥ PORTO, I PORTO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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