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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01. 2018

아무래도 오늘은 빨래를 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날씨가 찢어지게 좋다. 아무래도 오늘은 빨래를 해야겠다. 고사리같은 손으로 조물대는 간단한 거 말고 진짜 빨래 말이다. 뭐든 있는 포르투 우리집에 단 하나 없는게 있다면 바로 세탁기다. 내방 구석에서 쌓여가는 빨랫감들을 애써 무시한지 벌써 한참이 지났다.


[이게 바로 세탁방 패션]

세탁방에 대한 나의 경험은 미국 교환학생 시절이 전부다. 기숙사 지하실에 딸려 있던 간이 세탁방에는 2대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다. 학생 수에 비해 턱 없이 부족했던 세탁기 때문에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성적 A를 받는 것 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했다.



미리 사둔 세제와 동전 지갑을 챙겨 들고 떠난다. 빨랫감은 짙은 색과 흰색을 분리해야 서로 물드는 일이 없다. 집에선 손하나 까딱하지 않는 내가 이 먼곳에서 빨래를 해야한다고 부지런을 떠는 것을 보면 우리 엄만 퍽 서운해 하실게 분명하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세탁방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공간이었다. 5유로 짜리 카드를 발급받아 충전해 사용하면 1유로를 할인해준다. 할인이라는 말에 5유로 짜리 카드를 받았다. 앞으로 기껏해야 한 번 정도 더 올거 같은데 아무래도 괜한 짓을 한 것 같다. 나는 바보다. 세탁 비용은 4.95유로에서 9.50유로까지. 건조기는 1.60유로에서 1.90유로.



기껏 세제를 챙겨갔는데, 세제는 물론 섬유유연제까지 내장된 첨단 세탁기였다. 한 번 익숙해지고 나니 사용 방법은 꽤 간단했다. 원하는 물의 온도를 선택하고 나면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여행자는 모든 것이 괜히 신기하다. 집에선 한 번도 제대로 본적없는 세탁기 돌아가는 모습도 구경한다. 물론 SNS도 한다.



이 도시에서 술집을 제외하고 가장 늦게까지 깨어있는 가게가 바로 이 세탁방이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라니. 모든 것이 빨리 잠드는 포르투에서 빨래 만큼은 느지막히 할 수 있나보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있다.



빨래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생각한 것 보다 더 빨리. 25분이면 세탁과 헹굼 그리고 탈수까지 끝난다니 믿을 수 없다. 우리 집에 있는 세탁기는 가장 짧은 급속 코스가 38분이던데. 깨끗하게 빨리긴 하는건지 의심스럽다. 오래 걸릴 것 같아 노트북과 전자책까지 챙겨나왔는데, 노트북을 열자마자 끝난 기분.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건 실패다.



20분 후 빨래가 끝난 옷들을 건조기에 옮겨 담는다. 건조기를 돌리는덴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제서야 두 명의 사람이 세탁방으로 들어온다. 간단한 눈인사를 나누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창밖을 바라본다. 주말의 거리는 한산하다. 이방인이 이 거리 사람들의 일상에 잠시 섞여 들어가는 순간이다.



건조기에서 꺼낸 빨래는 사람의 체온처럼 따듯하고 좋은 향기를 낸다. 바구니에 옮긴뒤 가볍게 털어 개킨다. 생각보다 빨래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다. 기분 좋은 향기, 세탁기가 돌아가는 일정한 소음은 마음의 안정감을 준다.



이곳에서 먹고 사는 건 일의 영역과 분리가 어렵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이곳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밥을 먹는 것도 세탁방 가는 것도 모두 촬영으로 남겨야 하는 우리는 모든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기록은 모든 행동을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잘 먹고 청결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써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여행을 갔을 때도, 매일 출퇴근을 하던 서울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다.


이런 나의 상념과는 별개로 방금한 빨래를 방에 두니 포근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 퍼진다. 요즘 머리가 복잡했는데 역시 빨래를 하고 나면 뒤엉켜있던 생각들이 정리되는 기분. 자, 이제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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