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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05. 2018

사람이 어떻게 빵만 먹고 살겠는가.

포르투갈의 술

포르투엔 와인만 있는게 아니지.


지난 기사에서 포트 와인에 대해 장황한 썰을 풀긴 했지만(아직 안 봤다면 여기로) 우리가 여기서 포트 와인만 마신 건 아니다. 근사한 저녁을 먹으며 곁들이기엔 역시 와인이 최고지만, 사람이 어떻게 빵만 먹고 살겠는가. 이번에는 와인 말고 내 입고 혀를 즐겁게 하고 가끔 내 간을 힘들게 했던 포르투갈의 술들을 모아봤다. 



그 중 대부분은 맥주였다. 포르투갈어로 맥주를 cerveja(세르베자)라고 한다. 식당에서 비어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알아는 듣지만, 이왕 포르투갈에 왔다면 현지어로 멋지게 외쳐보자. 세르베자 포르 파보르(Cervega por favor)!


1.일단 포르투갈의 국민맥주 수퍼복(Super Bock)부터.



우리나라에 카스가 있다면, 포르투갈엔 수퍼복이 있다. 술집의 맥주잔은 모두 슈퍼복으로 대동달결. 집앞 바의 냉장고, 노천 카페의 차양, 우리의 눈길 닿는 곳 어디에나 빨갛고 동그란 마크의 수퍼복이 우리를 보살피고 있다. 심지어 집앞의 1유로 짜리 샹그리아를 마셔도 플라스틱 슈퍼복 잔에 담아준다. 자본의 힘이란!



1927년 포르투갈 북부에서 시작한 슈퍼복은 지금까지도 포르투갈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중 하나다. 맛은 우리가 먹어봤고 상상할 수 있는 일반적인 페일 라거의 전형이다. 각잡고 음미하지 않으면 큰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개성이 없다고 해서 맛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탄산은 조금 약한 편이라 목넘김이 좋고, 잡맛 없이 아주 약한 단맛과 씁쓸함이 조화롭다.



주량이 약한 사람들은 슈퍼복 미니를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20ml 우유 한 팩보다 적은 용량인 200ml의 앙증맞은 사이즈다. 세모금 정도면 금세 바닥이 보인다. 


2. 그렇다고 2등인 사그레스(Sagres)를 빼면 섭하다.



슈퍼복이 견고한 1위라면, 사그레스는 포르투갈 2등 맥주다. 수퍼복과 사그레스 두 거성이 포르투갈 전체 맥주 시장을 89.5%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포르투갈 사람들의 골라 마실 권리는 참으로 빈약하다. 


수퍼복이 포르투갈 북부에서 시작했다면, 사그레스는 수퍼복보다 7년 늦은 1934년에 포르투갈의 중부에서 시작한다. 세로로 긴 포르투갈의 땅끝 꼬리에 위치한 사그레스는 유럽 대륙의 끝이라고 불린다. 사그레스란 이름은 신대륙을 찾아 시작된 대항해 시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따왔다. 


솔직히 말해 포르투에서 아래 소개할 레몬 맥주를 제외하면 가장 기본적인 페일 라거 맛의 사그레스 맥주를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포르투가 포르투갈의 북부에 위치해서 일까. 포르투는 수퍼복의 지배아래 있었다. 코카콜라를 파는 곳에서 펩시를 마시기 힘든 것처럼 수퍼복을 판매하는 술집에서 사그레스 맥주를 함께 파는 경우는 없다고. 다행인 것은 수퍼복과 사그레스의 맛이 엄청난 차이가 있진 않다는 거다. 그냥 보이는 걸로 마시면 된다.


3. 목마를 땐 레몬맥주를 마신다.



포트 와인이 모두 잠든 새벽,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즐겼던 술이라면 레몬 맥주는 해가 쨍한 한낮을 책임지던 술이다. 알코올 도수 2도. 쓴맛이 거의 없이 레몬 사탕처럼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라 물처럼 꿀꺽꿀꺽 마실 수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포르투의 우리 이층집에 생수는 떨어져도 레몬 맥주가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라거 시장의 치열한 1위 2위 다툼에서 레몬 맥주 만큼은 예외로 수퍼복과 사그레스 모두를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두 브랜드를 나란히 파는 경우는 본 적은 없다. 영역 싸움이 치열한 모양이다. 슈퍼복에서 나온 레몬 맥주가 그린(green) 사그레스는 라들러(Radler)였는데 사실 라거 만큼이나 둘의 맛이 차이는 찾기 힘들다. 라들러란 원래 독일어에서 온 종류로 갈증 해소를 위해 밝고 가벼운 라거 맥주와 탄산이 있는 레모네이드를 섞는 시작된 일종의 맥주 칵테일을 말한다.



가격은 한 병에 0.85유로. 6개 들이 한 팩을 사도 2.5유로 정도다. 이렇게 착한 가격이니 목이 마르면 콜라보다 레몬 맥주를 찾게 된다. 호불호 없이 누구나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맥주니까 반드시 사서 마셔보자. 포르투갈 어로 레몬을 limão(리망)이라고 하는데 맥주에 이게 쓰여있으면 레몬 맥주라고 생각하면 쉽다. 



누구나 한 번쯤은 병따개가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을 거라 믿는다. 이럴 때만 치밀한 에디터H는 가방에 언제나 병따개를 상비해서 다닌다. 포르투갈의 맥주병의 재미있는 점은 병따개가 필요 없는 원터치 방식이라는 거다(모든 병맥이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맥주가 이런 방식이다). 한 손으로 뾱하고 딸 수 있는 이 간단한 방식은 너무나 편리하고 우아하다. 아, 하루빨리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으면.


4. 체리 담금주 진자도 있다.


진자(ginjaha)는 포르투갈의 전통술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체리로 만든 담금주랄까. 알코올 도수 20도로 끈적하고 달콤하고 피처럼 붉고 독하다. 진자는 본디 오비두스라는 지역의 특산품으로 초콜렛 컵에 담아 길거리에 앉아 마시곤 하는데 사실 포르투갈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가격은 1유로.



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아 뼛속까지 으슬으슬 떨리는 날 카페에 앉아 마셨다. 작은 잔을 탁 털어 마시면, 식도부터 장까지 선명한 궤적을 남기며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5. 포르투의 힙함도 즐겨보자.


포르투갈에도 크래프트 맥주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은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요즘 유행하는 소의 ‘HIP’은 전세계 어딜가나 비슷하다. 동네의 힙스터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레스토랑이 보이길래 삼고초려 끝에 아주 힘들게 예약에 성공해 다녀왔다. 그곳에서 OPO74 Brewing Company의 맥주를 처음 만났다. 경리단 길 보틀샵에서 본 같은 기하학적인 라벨과 쉽사리 읽히지 않는 브랜드 이름이 온 몸으로 외치고 있다. ‘I’m so hip’.



맛은 향기롭고 즐겁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서울에서 마셔봤던 싱그럽고 씁쓸한 에일 맛이다. 언제 어디서나 보이는 수퍼복과 사그레스 맥주에 질렸다면, 포르투의 젊은 이들이 추앙하는 이 맥주를 시도해보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다.


6. 마지막도 크래프트맥주다.


서울의 크래프트 맥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선 크래프트 맥주를 단돈 2유로에 즐길 수 있다는 거다. 포르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양조장에서 만든 Cerveja Nortada. Nortada는 포르투갈어로 북방의 찬바람이란 뜻이다. 포르투(북쪽)에서 시작해 시원한 맥주 바람을 일으켜보겠단 야심이 느껴지는 네이밍이다.



비엔나 라거라는 다소 생소한 스타일의 맥주로 영국 에일에 사용되는 색이 옅은 맥아를 사용해 진한 구릿빛과 절제된 쓴맛을 특징으로 한다. 라거인데 예쁜 호박색을 띠고 초반에 새콤한 맛이 났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깔끔한 맛이다. IPA처럼 혀끝에 끈덕지게 남아있는 쓴맛이 아니라 딱 기분 좋은 정도의 쌉싸름함을 남긴다. 탄산은 거의 없고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태어나 처음 마셔보는 맥주맛이었다.


매 끼니 거르지 않고 꼬밖꼬박 술을 챙겨마시고 있지만 아직 마셔보지 못한 술이 너무나 많다. 매일 들르는 마트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은 언제나 술코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고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병들 앞에 서있노라면, 사탕가게 앞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길게 늘어선 술병들은 환상과 모험의 원더랜드로 가는 문이다. 오늘은 어떤 술을 마셔볼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오늘도 몇 병의 술을 집어왔다. 아, 서울로 돌아가게 되면 한 병의 술을 담는데 별 고민하지 않던 지금의 내가 가장 부러울 것 같다. 



> 세 여자의 유럽 한달 살기! 포르투에서 살면 뭐가 좋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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