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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21. 2018

아이폰 인물사진모드가 이렇게 좋았다니 (ft.역광)

안녕, 여러분. 오늘은 에디터H의 아이폰 사진첩을 탈탈 털어왔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나의 ‘인물 사진 모드(Portrait mode)’ 활용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인물 사진 모드는 아이폰7 플러스에 처음 적용됐던 기능으로, 듀얼 카메라를 이용해 DSLR의 아웃포커싱을 흉내낸다. 쉽게 말해 피사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배경은 흐릿하게 날려준다는 얘기다. 이렇게 심도 표현이 얕게 된 사진은 어딘가 그럴싸하다. 뭔가 되게 비싸고 좋은 카메라와 렌즈로 찍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아이폰X으로 촬영한 사진]
[소니 A7R3로 촬영한 사진]

아이폰의 인물 사진 모드를 잘만 써먹으면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다. “이거 무슨 카메라로 찍은 거야?” 아이폰X으로 촬영했다고 하면 다들 깜짝 놀란다. 후훗.



사실 아이폰의 인물 사진 모드가 구동되는 방식은 ‘진짜 카메라’의 아웃포커싱과는 완전 다르다. 화각이 다른 두 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배경과 피사체를 촬영한 뒤 합성하는 방식에 가깝다. 일반 화각의 렌즈로는 배경을 찍고, 망원 카메라로는 피사체를 촬영한다. 그 다음 피사체는 또렷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블러처리해서 두 사진을 합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듀얼 렌즈가 아니라 촬영 후에 이미지를 처리하는 능력이다.


[아이폰X 인물 사진 모드]

처음에는 결과물이 그리 정교하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 배경과 피사체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저조도일 땐 거의 써먹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금도 100%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몇 차례 놀라운 진화를 거듭하며 점점 그럴싸한 아웃포커싱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초기엔 10장 찍어서 5장을 건졌다면, 지금은 10장 찍으면 8장은 근사하다.


촬영에 몇 가지 제약이 있다는 건 다들 이미 아시겠지.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가 2.5m 이내여야 하며, 충분한 빛이 확보되어야 한다. 촬영 환경은 밝으면 밝을수록 좋다.


[꽃보다 경화미 모드]

항상 생각하지만 ‘인물 사진 모드’라는 이름은 기가 막히다. 그냥 ‘아웃포커싱 모드’라고 이름을 지었다면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을 기가막히게 피해간다. 카메라와의 거리나 화각을 고려했을 때 인물의 상반신 컷을 찍을 때 가장 적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물을 찍었을 때의 결과물이 가장 아름답다.



경계선이 딱 떨어지는 사물을 찍었을 때는, 아무래도 배경과 맞닿은 부분의 이미지 처리가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물 사진은 다르다. 사람의 머리카락 주변으로 살짝 뭉개지는 현상이 있어도 오히려 더 근사한 요소가 되곤 한다. 인물 사진의 특성상 사람의 눈이나 표정에 더 눈이 가기도 하고 말이다.


포르투갈에 지내는 동안 에디터들끼리 서로의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그중 유독 인물 사진 모드를 쓴 결과물이 많다. 이번에 한가지 깨달은 팁은 강한 빛을 등지고 역광으로 찍는 사진의 성공률이 높다는 것. 노을질 무렵인 ‘골든아워’에 찍은 사진은 물론이고, 한밤중에 가로등을 등지고 찍어도 멋지다.



피사체와 배경의 조도가 다르기 때문에 아웃포커싱 효과가 비교적 깨끗하게 적용되며, 머리카락 한올 한올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도 아름답다. 성공적으로 건진 사진을 모아봤다. 참고로 모든 사진들은 아이폰X과 아이폰8 플러스의 인물 사진 모드로 촬영했으며 후보정을 한 상태다. 사진에 따라 그레인 효과를 강하게 넣은 것도 있다.



한밤중에 가로등을 등지고 찍은 야경 사진. 나는 사진의 ‘포커스’에 집착하는 편이다. 피사체에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고 흐릿하게 나왔다면, 이미 망했다고 판단하고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이 사진도 100% 완벽하게 초점이 맞진 않았다. 엄청난 저도도 환경이었기 때문에 카메라가 초점을 잡기 위해 고전하고 있었는데 성질 급하게 셔터를 눌러버렸다. 근데 참 느낌이 좋다. 처음으로 찾아갔던 히베이라 거리의 밤 풍경. 노란 불빛을 받아 빛나는 기은이의 단발 머리. 설레는 표정. 동글동글 빛나는 도루 강가의 빛망울들.



마찬가지다. 약간은 흐릿하지만 좋다.



해 질 무렵에 촬영한 에디터M의 독사진. 이 사진을 찍고 인물 사진 모드의 위대함에 취해버렸다. 빛이 너무 세서 선글라스 없이 해를 마주하기 힘들 만큼 역광이었는데, 덕분에 사진은 더 근사하게 나왔다. 그녀의 얇은 머리카락을 따라 햇살이 스며든 게 참 예쁘다. 어쩌다 흑백 필터를 씌워봤는데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보정했다.



이 사진도 비슷한 타이밍에 찍은 것. 상반신을 이 정도 비율로 촬영할 때 가장 효과가 좋더라.



이건 빛 좋은 대낮에 찍었다. 하늘도 새파랗고, 건물도 알록달록했는데 무슨 심보인지 흑백으로 보정했다. 인물과 배경이 아주 깔끔하게 분리된 걸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찍었지만 잘 찍었다. 유럽 생활 3일 차라 설레는 마음에 꽃을 샀다. 저 아름다운 꽃다발은 나중에 우리집에서 말라죽은 사체로 발견됐다. R.I.P.



내가 아이폰으로 속 편하게 사진 찍는 동안 소니 카메라로 작품활동 중인 에디터M.



에디터M의 탈색 머리는 정말이지 포토제닉하다. 사진 속의 헤어는 내가 직접 염색해준 것. 근사한 핑크 투톤이었다. 내가 보정하면서 빨간머리로 만들어버렸네.



넌 옆모습이 제일 예뻐. 이 사진은 뒷배경의 아웃포커싱이 아주 예쁘게 표현됐다. 얼핏보면 DSLR로 찍은 사진으로 보일 정도다.



해 질 무렵 산책 하다 촬영한 막내의 모습. 머리 위로 쏟아지는 저녁 해가 정말 강했다. 그래서 약간 희뿌옇게 표현된 게 더 마음에 든다. 얼굴보다 티셔츠 프린트에 초점이 더 깨끗하게 맞았다는 건 함정. 여기서 씬스틸러는 뒷배경의 키스하는 남녀다.



아이폰X을 쓴 뒤로는 이런 저조도에서도 인물 사진 모드를 용감하게 시도해본다. 약간 노이즈가 생기긴 하지만 괜찮은 결과물이다. 콧등부터 입술까지 옆모습 윤곽이 깨끗하게 살아남았다. 야호.



이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빛이 부드럽게 들어왔다. 나는 조는 게 아니다.



빛도 중요하지만 피사체와 배경의 거리가 충분히 멀면 피사계 심도 효과가 더 잘 표현된다. 이 사진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보정을 강하게 했다. 일부러 그레인 효과도 넣고, 색감도 드라마틱하게 만져봤다. 영화 스틸컷 같다. 아이폰으로 이 정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물론 인물이 아닌 피사체도 잘 나온다. 특히 음식. 음식 사진 모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니까.



아직 취약한 피사체는 ‘컵’이다. 투명하게 빛이 투과되는 컵 입구는 곧잘 저렇게 이상하게 나오곤 한다. 조금 아쉽다.


에디터H의 사진 폴더를 탈탈 털어 봤는데, 즐겁게 보셨는지. 아마 아이폰X이나 플러스 모델 사용자분들은 당장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카메라를 좋아한다. 물론 좋은 카메라에 좋은 렌즈를 물려서 얻을 수 있는 깊이감 있는 사진들은 다른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때로는 묵직한 카메라 없이 손바닥만 한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조금 더 쉽게, 그럴듯하게. 여러분은 어떤 인물 사진을 찍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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