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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22. 2018

이케아의 꿈

안녕, 여러분 에디터M이에요. 포르투, 미국 그리고 스웨덴까지. 전 세계를 누비던 디에디트는 지금 서울에 안착. 그간 있었던 일들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답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다녀온 출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코펜하겐에서도 꼬박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움직여야 도착하는 엘름홀트]

제가 왜 북유럽 스웨덴, 그것도 수도인 스톡홀름에서 한참을 떨어진 이곳 엘름홀트에 왔냐면요, 바로 여기에 이케아 본사가 있거든요.



이곳 엘름홀트는 이케아의 창업자 잉바르 캄프리드의 고향이자, 이케아 매장 1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 곳이기도 합니다. 인구 1만 7,000명의 작고 조용한 동네에 이케아 직원만 5,100명이라고 하니 이건 뭐 이케아 타운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2014년부터 매년 6월이 되면 ‘데모크래틱 디자인 데이(Democratic Design Day)’에 참석하기 위해 이 작은 마을에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올해엔 디에디트도 초대되었어요. 줄여서 DDD라고 부르는 이 행사에서는 이케아의 제품이 어떻게 제작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곁으로 오는지 제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랍니다.



DDD 이 행사의 이름엔 조금 수상한 단어가 끼어있어요. Design도 Day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치적인 행사도 아니면서  이케아는 왜 ‘민주적인’이란 뜻의 ‘Democratic’를 붙였을까요?



이케아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품질과 우수한 디자인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단순히 예쁘기만 한 물건이 아니라, 절대다수의 사람들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그런 제품을 만드는 거죠. 잘 사는 사람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누구나 평등하게 자신이 쉴 공간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걸까요? 이케아의 좋은 품질과 낮은 가격은 누구나 평등하게 좋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평등 정신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니 작년 11월 디에디트가 처음 401호 사무실을 꾸밀 때가 떠오릅니다. 생전 처음 자신만이 공간이 생긴 우리는 고민이 컸어요. 멋지게는 꾸미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게다가 이제 일 년이 조금 넘은 코딱지만 한 우리가 비싼 가격의 디자이너 가구를 살 수 있는 여력은 없는 게 당연했죠. 우리가 기댈 곳은 역시. 많은 분들이 짐작하셨던 것처럼 이케아뿐이었습니다.


[직원들의 얼굴로 이루어진 창업자 잉바르 캄프리드 모습]

이렇듯 ‘데모크래틱’이란 단어는 이케아를 지탱하는 뼈대입니다. 이케아의 비전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생활을 만든다(Create a better everyday life for the many people)’인 것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자 그럼 다시 DDD로 돌아가 볼까요? 이케아는 매년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입니다. 이케아가 다양한 브랜드와 손잡고 선보인 제품을 통해 이케아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직접 만지고 확인할 수 있는 자리죠.



작년에 이케아는 바이레도와 콜라보레이션을 발표했어요. 콜라보레이션의 이름은오쉰리그(OSYNLIG). 이름이 이렇게 어려운 건, 모든 컬렉션에 스웨덴식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에요. 외우느라 힘들었어요. 바이레도는 제가 너무 좋아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고민하고 있던 향수거든요. 아직 완성된 건 아니고 전시장에서는 프로토타입의 향을 맡아볼 수 있었는데요. 투명한 유리병 안에는 집이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향들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병에서는 과자를 굽고 있는 것 같은 달콤한 향기가 났고, 또 다른 병에서는 깨끗하게 정돈된 침실의 향을 맡을 수 있었어요. 만약 저에게 북유럽에 살고 계신 할머니가 있다면, 그 집에선 이런 향이 나겠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그리운 향기랄까요? 집이란 공간을 구석구석 직접 맡을 수 있는 향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니치 향수인 바이레도와 이케아가 만나 우리에게 어떤 향을 선사할지 기대가 되네요.



이케아의 상징인 프락타백의 변신도 눈여겨볼만합니다. 이 백은 이케아의 상징이기도 하죠. 저는 어떤 물건이 브랜드를 상징하는 아이콘인지 아닌지는 모양이나 소재를 바꿔도 그 제품의 원형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가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스웨덴식 옷을 입고도 푸른색 원형이 보이는 프락타백은 꽤 성공적인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때요, 저랑 잘 어울리나요?



버질 아블로의 오프화이트와 협업한 마르케라드(MARKERAD) 컬렉션도 재미있었어요. 버질 아블로라니, 얼마 전 루이비통 남성복 라인의 수장으로 발탁된 요즘 가장 핫한 남자 중 한 명 아닌가요. 스트리트 문화를 선도하는 그와 함께 작업한 건 이제 막 독립해서 집을 꾸미기시작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잡기 위한 이케아의 큰 그림인 거죠. 실용성 뿐만 아니라 힙까지 노리겠다는 야망이 엿볼 수 있기도 하구요. 정말 힙하긴 했어요. 특히 방수종이로 만들어진 프락타백은 하나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에디터H한테 사진을 보냈더니 당장 사오라고 난리던데, 아쉽게도 아직 판매하지 않는다고 해요. 만약 살 수 있다면, 줄을 서서라도 사 오고 싶은 녀석이었습니다.



DDD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앞으로 이케아와 함께 하게 될 콜라보레이션을 발표하는 키노트였습니다. 마치 클럽처럼 꾸민 행사장은 공기부터 들썩입니다.



가장 큰 환호성을 받은 건 역시 레고였습니다. 이케아와 레고와의 만남이라니 아이가 없는 저도 궁금해지네요. 아이들의 놀 권리와 정리정돈을 원하는 어른 그리고, 키덜트까지 이건 모두를 위한 콜라보레이션이 되겠네요.



세상에 이번엔 아디다스와의 콜라보래요. 저도 그렇지만, 요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호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케아가 아디다스와 손을 잡은 건, 이런 흐름을 읽은 게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집이 운동하기 더 좋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혹은 좀 더 건강한 삶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 결과죠. 아무래도 그 답은 홈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실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들의 환호성과는 별개로 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콜라보레이션은 따로 있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디에디트는 포르투에서 집을 구해 한 달을 살았잖아요.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제대로된 사무실 공간이 아니라 식탁에서 일했어요. 점점 집과 사무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이케아는 이런 시대정신을 명민하게 읽고 스테판 디에즈(Stefan Diez)와 협업을 발표합니다. 그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HAY와 함께 사무 가구를 디자인하고, 그가 만든 사무 가구가 전세게 위워크에 쫙 깔릴 예정이라고 해요. 그가 디자인한 가구를 보세요. 아름다우면서도 실용적이죠. 디에디트 사무실을 꾸밀 때 마음에 드는 사무용 가구가 없어서 고심했어요. 실용적이면서도 예쁜 걸 찾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앞으로 이케아가 제안하는 사무실의 모습은 어떤 그림일지 기대가 되네요.



먹는 이야기가 빠질 수 없죠. 왜냐면 2박 3일 출장 내내 정말 잘 먹고 다녔거든요. 이날 점심엔 이케아 미트볼을 먹었어요. 본토에서 먹는 미트볼은 촉촉하고 아주 맛있더라고요. 사실 이케아 매장에 있는 푸드 섹션은 이윤보다 물건을 사러온 고객들에게 편안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것에 가깝습니다. 전 세계 이케아는 매장 오픈 30분 전에 푸드코트를 먼저 열어두곤 합니다. 사람들이 배고픈 상태에서 쉽게 쇼핑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정확합니다. 맞아요! 저는 배가 고파지면 예민해지고,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거든요.



전시장에서는 100% 식물성 원료의 딸기 아이스크림과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핫도그도 맛볼 수 있었어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핫도그라니, 끄응. 요즘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위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케아가 이 메뉴를 선보인 건 조금은 다른 이유 때문이랍니다.


여러분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소래요. 고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먹는 우유와 치즈만 줄여도 지구는 좀 더 깨끗해질 수 있대요. 채식은 고기를 먹기 위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고 사람과 환경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채식을 단순히 존중해야 할 삶의 방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미래의 투자라고 보는 거죠. 놀랍게도 맛이 꽤 좋았어요. 이 정도 맛이라면, 채식도 나쁘지 않겠는걸요?



한정된 자원이란 말이 나온 김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게요. 이케아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목재 중 1% 정도를 사용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죠? 이러니 지구의 한정된 자원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재미있는 점은 이케아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은 단순히 버려진 가구를 효율적인 재활용이 가능토록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더 쉽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만약에(what if)”로 시작됩니다.



여러분 대나무가 친환경적인 소재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왜냐면 대나무는 농약을 치지 않아도 쑥쑥 아주 잘 자라거든요. 얼마나 빨리 성장하냐면요, 하루에 80cm에서 100cm까지 자란다고 해요. 1시간 동안 다른 나무가 몇 십 년 동안 자라는 정도로 큰다고 하니 정말 놀랍죠? 머지않아 인류가 한정된 자원 때문에 고통 받을 거라고 생각한 이케아는 농약 없이도 쑥쑥 크는 대나무를 이용해 다양한 가구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깨끗한 물처럼 한정적인 자원도 없죠. 전 유난히 손의 위생상태에 집착하는 편이라 하루에도 열 번씩 손을 씻곤 해요. 그런데 말이에요, 손을 씻을 때 우리 손에 채 닿지도 못하고 바로 하수구로 떨어지는 물을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이케아는 이 노즐을 개발했어요. 물줄기 대신 안개처럼 미세한 물줄기를 뿌려주고 어떤 수도꼭지에도 쉽게 설치할 수 있대요. 미스트처럼 얇은 물줄기가 퍼져나가기 때문에 쓸데없이 낭비되는 물을 절약할 수 있죠.


자원은 한정적이니까, 되도록 적은 양의 원료로 효율적인 물건을 만든다. 이것은 공교롭게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의 가치와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버리고 간결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케아의 철학이기도 하고요.



잠시 이케아에서 가상 쇼핑을 한다고 상상해 볼까요. 쇼룸에서 물건을 고르고 1층으로 내려가 창고에서 물건을 찾습니다. 가구는 납작하고 작아요.  ‘플랫팩(faltpack)’이라고 하는 포장 방식 때문이죠. 착착 접어 압축하니 완제품을 옮기는 것보다 자리를 덜 차지하고 제품 파손을 막기 위해 불필요한 자원 낭비도 줄일 수 있어요. 이건 인건비와 물류비용을 엄청나게 줄인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케아의 모든 제품은 개발과 디자인 단계부터 이 플랫팩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고 해요. 물론 이케아의 가구는 조립을 직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요.



제작 공정이나 조립 과정을 줄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사를 없애는 것, 문 손잡이 설치 시 드릴이 필요 없도록 클립 형태로 대체하는 것들도 바로 좋은 예죠. 공정이 단순화되면 될수록 생산 단가는 떨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전시장에서 한 편에서 5분 만에 조립할 수 있는 소파를 볼 수 있었어요. 시간을 쟀는데 정말 금세 튼튼해 보이는 소파가 뚝딱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동안 소파는 이케아에서 유일하게 플랫팩으로 포장이 힘들었던 제품군이었대요. 본래 소파에는 120개 정도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부품의 개수를 무려 13개로 줄였다고 합니다. 부품을 줄이면서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각 부서 간의 면밀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해요.



벌써 75주년을 맞이한 이케아는 29개국에 355개의 매장이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이곳 현장에서 느낀 이케아의 분위기는 굉장히 자유로웠습니다. 직원들끼리 매우 수평적이고 편안한 분위기였어요. 현재 이케아의 대빵(?)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총괄 마르쿠스 엥만은 도착한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너무 많이 마주쳐서 이제는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니까요.



이케아 카탈로그에 들어가는 제품을 촬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요. 보안이 철저한 곳이라 사진을 많이 찍을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3D스캐너로 촬영한 소파의 가죽 주름까지 선명하게 담아내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정을 마치니 오히려 일반 카메라로 찍은 것보다 훨씬 더 실물처럼 보이더라구요.



흔히들 이케아를 홈퍼니싱 브랜드라고 부릅니다. 집을 꾸밀 때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의 가구를 사기 위해서 들리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해요. 집은 우리가 먹고 잠을 자고 옷을 입고 생활하는 근간이 되는 공간입니다. 2박 3일의 촘촘한 일정을 마치고 제가 느낀 건, 집이란 스케치북에 이케아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무궁무진 하다는 거에요. 새하얀 도화지 위에 이케아가 그리는 그림은 이제 막 시작인 것처럼 보여요. 방금 노란색과 파란색 크레파스를 들고 선을 그었을 뿐이거든요. 이케아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거창하게 마무리했지만, 사실 2박 3일 동안 참 잘먹고 돌아다녔어요. 이케아는 배고플 틈을 안주고 절 사육시키더라고요. 틈틈이 영상으로 남겨두었으니 에디터M의 먹방이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확인해주세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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