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을 꼬박 포르투갈에서 살다가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갔더니 미래 세계에 온 것 같았다. 때마침 애플의 세계개발자 회의 기간이라서 더 그랬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의 귀엔 약속한 것처럼 에어팟이 걸려있었고, 손목엔 애플워치가 감겨있었다. 서로 같은 아이템을 장착한 사람들이 미소로 인사하며 스쳐 지나갔다. 나도 그중 일부였다. 그러다 문득 다른 점 하나를 발견했다. 저들의 애플워치엔 빨간 점이 ‘콕’ 박혀있었다는 것. 우측 크라운에 빨간 점이 찍혀있다는 사실은 셀룰러 모델을 의미했다. 갈증이 밀려왔다.
애플워치 시리즈3의 셀룰러 모델 축내 출시가 지연되며, 작년부터 기다리던 참이었다. 사실 셀룰러 모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GPS 모델만 출시되며 국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애플워치 모델의 선택지가 줄어들었다는 게 불만스러웠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에르메스 에디션이 갖고 싶었는데 GPS 버전에선 오직 알루미늄 모델만 선택할 수 있었다.
반 년이 넘는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한국에서도 애플워치 시리즈3 셀룰러 모델을 개통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오래 써보진 못했지만, 나의 편견을 깨버릴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한 사용기를 준비해봤다.
아, 이번엔 드디어 에르메스 에디션을 샀냐고? 지갑 사정이라는 게 항상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주는 게 아니지 않나. 잦은 면세점 출입으로 가산 탕진을 거쳐… 지금은 도무지. 주르륵.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셀룰러를 지원한다면 애플워치는 이제 독립된 전화기와 마찬가지다.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사를 통한 개통 과정이 이루어져야 하고, 별도의 요금제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서로 다른 번호를 쓰는 건 아니다. 연동해서 사용하는 아이폰과 같은 번호를 공유할 수 있으니 걱정마시길. 나는 LG 유플러스에 기존부터 웨어러블 요금제로 개통했다. 데이터 제공량이 썩 많지 않은데, 쓰다 보니 그건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아이폰이 근처에 있을 때는 두 제품이 블루투스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아이폰의 데이터를 사용한다. 거리가 멀어지거나 아이폰의 전원이 꺼지는 등 연결이 끊어지면 플랜B로 와이파이에 연결된다. 그리고 아이폰도 와이파이도 연결되지 않은 최악의 상황(?)에만 단독으로 데이터를 쓰게 된다.
아쉽게도 애플워치 셀룰러 모델 출시에 국내 이동통신3사가 모두 참여한 건 아니다. SKT와 LG유플러스만 이름을 올렸고, KT는 일단 발을 뺐다. 셀룰러 모델의 출시를 오래 기다려온 사용자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그 답답한 사용자다. 인터넷부터 스마트폰까지 몽땅 KT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워치도 KT로 개통하려다 물먹었다. 번호이동도 고려했지만, 일단 리뷰를 위해 LG 유플러스 회선을 하나 더 내는 방법을 택했다. 크악!!
개통 과정도 설명드리자면 스마트폰처럼 USIM을 넣어 개통하는 방식은 아니다. 애플워치 안에 분리할 수 없는 eSIM이 내장돼 있다. USIM을 구입해서 물리적으로 삽입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애플워치를 구입한 뒤에 이통사 대리점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다. 그냥 아이폰에서 가입하면 된다.
워치에 들어간 eSIM은 세계 곳곳에서 사용하는 LTE 대역에 맞게 맞춤 제작된다. 한국과 같은 대역을 지원하는 국가에서 구입한 애플워치는 이제 국내에서 개통할 수 있다. 미국이나 중국 버전은 네트워크 대역이 달라 호환되지 않지만, 일본이나 호주, 싱가포르 등 같은 대역을 지원하는 나라에서 구입한 제품은 무방하다.
연결을 마쳤으니 손목에 착용해보자. 보기에 별로 다를 건 없다. 빨간 크라운 하나만 다르다. 평소엔 모른다. 셀룰러 모델의 진가는 아이폰과 떨어졌을 때 발휘된다.
애플워치를 오래 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문득 워치 화면을 들여다봤는데, 아이폰과 연결이 끊어졌음을 알리는 빨간 아이콘이 표시됐을 때. 그 순간 밀려오는 기묘한 불안감! 심지어 얼마 전 아이폰X을 소매치기당한 에디터M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애플워치의 disconnected 아이콘을 보고 눈치챘을 정도다.
보통 애플워치 사용자들은 아이폰을 통해 들어오는 메시지나 메일, 전화 등의 알림을 받을 때 손목 진동에 크게 의지한다. 평소엔 애플워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어느 날 실수로 놓고 나오기라도 하면 기가 막힐 만큼 연락을 놓치게 된다. 그러니 아이폰과 애플워치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는 건 곤란하다. 화장실을 갈 때도 의식적으로 아이폰을 챙기고, 에디터M께서 잠시 옥상으로 따라나오라 하실 때도 본능적으로 아이폰을 챙기곤 했다. 이쯤 되면 병이었다. 이렇게 살았으니 스마트 워치에 셀룰러 기능이 필요 없다고 믿게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하루종일 아이폰이랑 워치가 붙어있는데 굳이? 어차피 아이폰이 없으면 애플워치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진짜를 만나보니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애플은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나에게 제시하고, 슬쩍 한번 써보면 그게 그렇게 편하다. 애플워치만 차고 옥상에 올라가 에디터M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장된 번호라면 시리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할 수도 있고, 애플워치 화면에서 직접 다이얼 패드를 누를 수도 있다.
뚜르르, 뚜르르. 에디터M이 전화를 받았다. 손목에 대고 말하는 건 명탐정 코난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에어팟이 필수다. 아, 이렇게 통화하니 생각보다 더 쾌적하다.
포르투에서 한 달 동안 지내는 동안 서울에선 안 하던 운동을 했다. 맨날 했다고 하면 뻥이고, 작심삼일은 확실히 넘겼다. 레깅스에 티셔츠 하나 입고 나가는데 아이폰을 챙기려니 거추장스럽긴 하더라. 음악도 들어야 하고 낯선 동네라 지도도 확인해야 하고, 한국에서 오는 연락도 받아야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참 뛰다 보면 아이폰을 쥔 손에 땀이 났다. 그럴 때 셀룰러 모델을 쓰고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
사실 셀룰러를 지원하는 애플워치를 쓴다고 해서 아이폰과 완벽히 작별할 수 있단 얘기는 아닐 것이다. 쓰다 보니 감이 온다. 이제 때때로 아이폰과 분리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고 보는게 맞다. 애플워치만 차고 운동하러 나가는 교과서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좋다. 잠깐 외출하려는데 아이폰 배터리가 앵꼬일 때, 옥상에 잠시 끽연하러 나갈 때, 집앞 편의점에 맥주사러 나갈 때… 일반 사용자들에게 생기는 찰나의 순간에 아이폰을 챙기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엔 아이폰과 분리되고 싶은 의외의 사유가 있다. 평소엔 항상 노트북과 촬영 장비를 챙기기 위해 커다란 가방만 들고 다니는데, 일이 없는 주말엔 그러기 싫다. 손바닥 만한 가방 하나 들고 데이트하러 나가고 싶다. 주인의 부름을 받지 못한 스몰백들이 옷장에서 꺼이꺼이 울고 있다. 작년 여름에 구입한 귀여운 라탄백이다. 흰 원피스에 이거 하나 매고 나가면 얼마나 산뜻할까?
근데 내 아이폰이 여기 들어가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삐져나와서 가방이 닫히질 않는다. 지갑과 립스틱을 하나 넣으면 끝이다. 그래서 일 년째 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 들고 나갈 생각이다. 아이폰은 집에 두고, 애플워치만 차고서. 가방 때문에 애플워치를 사냐고?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휴대폰이 생긴 이후로 19년. 그동안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느라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제 전화기를 놓고 외출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애플워치만으로도 팟캐스트를 듣거나 애플뮤직을 스트리밍할 수 있다. 시리를 잘 활용한다면 입력 방식의 한계도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하다. “기은이에게 문자 보내줘”라든가 “근처 레스토랑 찾아줘”같은 초보적인 미션은 굉장히 빠르게 인식하고 수행한다. 사실 애플워치에서 시리를 잘 쓰지 않아서 몰랐는데, 반응 속도가 놀라울 만큼 빨라졌다. 지도 앱의 인터페이스는 훌륭하지만, 한국에서의 검색 결과는 아직 아쉽다.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에서 워치용 앱을 내주면 제일 좋을 것 같은데.
애플워치의 셀룰러 기능에 접근할 수 있는 API를 개발자들에게 공개했으니 다양한 앱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러려면 워치가 많이 팔려야한다. 여러분 모두 애플워치를 사는 게 좋겠다. 나만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나 생활이 바뀌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오래 써보고 다시 리뷰를 준비해보겠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