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M이다. 낮이 짧아지고 밤은 길어졌다. 겨울이 왔다는 소리다. 겨울밤엔 시방 난 위험한 짐승이 된다. 밖에 나가긴 싫지만 그렇다고 집에만 있자니 고독하고 쓸쓸한 밤. 타오르는 촛불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달래주는 건, 맛있는 한 잔의 술이다.
오늘은 정말 정말 위험한 술과 안주를 들고 왔다. 근사한 안주 이야기는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 일단 술 이야기부터 해보자. 조니워커 블랙 셰리 에디션. 무려 아시아 독점 한정판이다.
그렇다면, 셰리란 무엇인가. 셰리(Sherry) 와인은 포트 와인과 함께 세계 2대 주정 강화 와인으로 불린다.
사실 세계 몇 대 같은 말은 크게 중요치 않다. 주정강화 와인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둘은 닮은 듯 다르다.
가장 기본적인 분류는 지역이다. 포트는 포르투갈에서 셰리는 스페인에서 시작했다. 포트와인은 발효 중에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넣는다. 알콜이 될 운명을 타고 났다가 브랜디에 의해 강제 로그아웃된 당분들이 갈곳을 잃고 그대로 술에 잔류한다. 포트와인이 달고 끈적한 이유는 아직 미련이 남은 당분들의 발자취다. 이쯤에서 포트와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 사람이 있다면 잠시 이 기사를 읽고 와도 좋겠다.
반면 셰리 와인은 발효가 모두 끝난 와인에 브랜디를 넣기 때문에 포트와 달리 굉장히 드라이한 편이다(물론 단맛이 나는 셰리도 있지만, 일단 이렇게만 알아두자).
셰리 와인도 포트 와인도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존의 조니워커 블랙에 이 셰리 와인을 저장했던 오크통에 숙성한 위스키 원액을 함께 블렌딩했다는 것이다. 조니워커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블랙 라벨이 셰리를 담았던 오크통을 만나 어떻게 변했을지! 술 마개를 따기도 전에 내 마음이 두근두근.
조니워커의 각진 병은 그대로다. 하지만 아름답다. 기사를 쓰며 다시 봐도 영롱한 사진이다. 블랙 라벨이 레드 라벨보다 조금 더 진한 편이긴 하지만, 이건 조금 더 붉다. 블랙 라벨에 미스코리아가 떠오르는 붉은 띠만 둘렀을 뿐인데 다르다. 매일 후줄근한 차림으로 만나던 오랜 연인이 어느날 멋지게 차려입고 짠하고 나타난 것같은 새로움이다.
밤의 어둠이 더 깊고 끈적해진 요즘에 마시는 위스키란. 모든 불을 끄고 노란 스탠드 불빛만 일렁거리는 어느 날, 음험한 마음을 안고 이 병을 따기로 했다.
아주 조금 마셔본다. 입술을 타고 달콤한 액체가 흘러 들어온다. 그러다 조니워커 특유의 스모키한 향이 목 뒤에서 기화한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자리에는 달콤한 바닐라 향, 초콜릿 그리고 오크향이 남는다. 블랙 라벨에 다양한 캐릭터가 덧입혀진 맛이다.
온더락을 해서 마시면 맛과 향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얼음이 녹아 알콜을 죽이고 향이 올라온다. 하지만, 지금 이 셰리 에디션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스트레이트로 마셔야 한다.
여기서 끝이냐고? 설마. 이 맛있는 셰리 에디션을 조금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내 이름을 걸고 이건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니. 제발 나를 믿고 한 번만 시도해보자.
최근 내 인스타그램 피드를 핫하게 달구고 있는 하겐다즈의 새로운 맛. 피넛 버터 크런치다. 깊고 진한 바닐라 베이스에 중간중간 땅콩버터가 그리고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캐러멜 소스가 입혀진 땅콩이 있으니 이건 뭐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입에 스모키하고 향기로운 셰리 에디션 한 입이면 크으. 요즘말로 #JMT 누가 단짠단짠이 옳다고 했던가. 정말 옳은 건, ‘단쓴단쓴’이다. 인생의 쓴맛 뒤에 가끔 찾아오는 고소함이 함께 느껴지는 성숙한 어른의 맛이다.
고백하자면 난 아직 위스키의 맛을 온전히 즐기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깊은 새벽이 혹은 몸과 마음이 지진하게 가라앉은 어느 야심한 밤이 아니면 위스키를 찾는 일은 그리 자주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왜 위스키를 찾는지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괜찮다.
농염한 맛을 내는 근사한 아이스크림과 함께라면 위스키 정도야 얼마든지 아니 솔직히 딱 한 잔, 그만큼이면 충분히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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