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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Nov 22. 2018

잘 만든 제품의 디테일 구경은 즐거워

애플 워치 시리즈 4

며칠 전 올해 첫 캐롤을 들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만 해도 캐롤은 선물 받을 시간이 다가온다는 걸 의미했다. 징글벨, 징글벨. 엄마아빠가 산타 할아버지인 척하고 선물을 주는 계절. 달콤한 인생이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은 확실히 알게 됐다. 산타는 없고, 이제 나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러니까 12월은 경화가 경화에게 선물하는 계절. 애플워치 시리즈4를 위한 변명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지금 만들고 있으려나…]

디에디트를 밀도 있게(?)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나의 본래 계획은 연말을 맞아 애플워치 시리즈4 에르메스 모델을 사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엔 내 손목에 에르메스가 감겨있겠지… 하고 기대했건만. 아쉽게도 나는 에르메스 모델을 구하는데 실패했다. 정확히 말하면 올해 안에 구하는데 실패한 셈인데, 배송예정일이 2019년 1월이니 한참 멀었다. 이 땅의 얼리어답터이자 리뷰어로서 2018년을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데려왔다. 애플워치 시리즈4 골드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다.



모처럼 박스를 뜯는 즐거움이 있었다. 시리즈4에서 애플워치의 패키징이 달라졌는데, 마치 선물 꾸러미 같다. 보자기 벗기듯 하나의 종이 포장을 벗겨내면 그 안에 두 개의 박스가 담겨있다. 하나는 애플워치 케이스고 하나는 밴드다. 제품을 두 개 산 것 같아서 괜히 뿌듯해진다. 이 포장은 알루미늄 모델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사실 애플워치 1세대만 하더라도 스테인리스 스틸과 알루미늄 모델의 패키지가 달랐다. 그 당시엔 ‘스뎅 모델’을 사면 보석함 처럼 예쁜 플라스틱 케이스를 받을 수 있었다. 좀 더 ‘사치품’의 느낌이 있었다.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괜히 그리워진다. TMI 끝.



요즘은 제품을 샀다하면, 언박싱 영상부터 찍기 바쁘니(그것도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패키지 사진까지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다. 모처럼 사진에 집중해본다. 케이스를 곱게 보호해주는 스웨이드 옷도 깨알같은 요소다.



아, 간만에 만나는 스테인리스 스틸 애플워치다. 1세대 이후로 계속 알루미늄 케이스를 사용해와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는데, 묵직한 느낌이 반갑다. 광택부터 다르다. 골드를 고른 건 신의 한 수였다. 노란 금덩이 색깔이 아니라, 차분한 구릿빛의 광택이다. 이 영롱함은 귀금속의 그것에 가깝다. 쳐다볼수록 궁금해지는 오묘한 빛깔이다. 애플이 요즘 만들어내는 골드 컬러는 작품에 가깝다. 그저 ‘골드’라고 부르는 통에 실물을 보기 전에 선입견이 생기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함께 매칭된 스톤 컬러의 스포츠 밴드. 금속 잠금장치 부분도 골드 케이스와 깔맞춤했다. 좋은 디테일이다. 새로운 골드 밀레니즈 루프를 매칭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손목에서 부내가 폴폴 풍겼겠지. 하지만 나는 2019년에 도착할 에르메스를 지른 몸. 18만 5,000원을 추가 지출할 여유가 없었다. 후후.


[왼쪽 시리즈4, 오른쪽 시리즈3]


애플워치는 원래 보이지 않는 뒷면 센서가 가장 아름답다. 애플워치 시리즈3 알루미늄 케이스와 애플워치 시리즈4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를 나란히 비교해보자. 블랙 세라믹과 사파이어 글래스의 조화가 우아한 뒤태를 완성한다. 뒷면이 뭐 이렇게까지 예쁠 일인가.


[영-롱!]


앱등이들은 본래 이렇게 박스를 뜯어서 전원을 켜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나 하나 뜯어보고 감탄한다. 근데 여러분 그거 아시는지. 잘 만든 제품의 디테일을 세세히 들여다보고, 만끽하며, 즐거워하는 건 소비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애플 제품이 아니라 어떤 걸 사더라도 마찬가지다.



이제 실로 거대해진(?) 화면을 만끽할 차례다. 애플워치는 가장 먼저 OLED를 적용했던 제품이다. 디스플레이속에서 움직이는 가상 시계 바늘이지만, 만져질듯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 이번 신제품에서는 디스플레이의 드라마틱한 면모가 더 두드러진다. 왜냐면 커졌으니까. 기존의 38mm는 40mm가 되고, 42mm는 44mm가 되었다. 디스플레이 가장 자리의 베젤을 엄청나게 줄였기 때문에 케이스 자체의 크기 변화는 미묘하다.


[왼쪽 시리즈4, 오른쪽 시리즈3]


전면은 조금 더 커졌지만, 두께가 얇아지며 전체 부피는 오히려 줄었다. 나는 38mm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40mm로 갈아탔다. 애플워치를 쓰던 사람이 아니라면 시리즈3와 시리즈4를 나란히 두어도 그게 그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태껏 한 번도 디자인 업데이트가 없던 애플워치에겐 큰 변화였다. 디자인으로 보나 성능으로 보나 역대급 업데이트다.


[한국에선 쓸모없는 애플 지도를 띄워본다]


바탕이 블랙 컬러인 워치 페이스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화면 전체를 사용하는 앱이나 워치 페이스를 설정해두면 디스플레이가 어떻게 확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화면 곡선을 타고 모서리까지 범위를 넓혔다. 처음엔 너무 커서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만에 적응해버렸다. 이젠 어떻게 예전 애플워치의 좁은 화면을 들여다보았나 어색할 정도다. 간사하긴.


[왼쪽 시리즈4, 오른쪽 시리즈3]


확실히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경험이 시원시원해졌다. 포도알처럼 동글동글 모여있는 앱 아이콘 사이에서 원하는 걸 터치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지도 앱도 훨씬 볼만하게 열리고 메신저의 대화창도 쾌적해졌다. 어떤 기기가 그렇듯 화면이 커지면 대부분의 조작이 편리해진다. 특히 이렇게 코딱지 만한 화면에선 그 차이가 더 드라마틱하다.


[왼쪽 시리즈3, 오른쪽 시리즈4]


모서리는 기존 제품보다 더 둥글게 마감됐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아쉽다. 기존의 직사각형 디자인이 샤넬의 프리미에르 워치를 연상케 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둥글게 처리하며 엣지가 떨어져버렸다. 현재의 모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좀 더 샤프하던 예전의 디자인이 내 취향에 맞았다는 얘기다.



게다가 화면이 커지는 바람에 아날로그 시계의 느낌에서 한발짝 더 멀어졌다. 스마트워치 시장 초창기 부터 고민해온게 있었다. 어떤 게 ‘진짜 시계’다운 디자인인가. 애플워치는 나름대로 그 정석을 잘 찾아가고 있었다. 둥근 페이스 대신 선택한 직사각형 디자인도 좋았다. 그런데 쾌적한 40mm 케이스를 채용하며, 편리함을 더한 대신 가상 디스플레이의 특유의 이질감도 더해지고 말았다. 이건 애플워치를 ‘스마트 기기’인 동시에 ‘액세서리’로서 생각하는 나의 견해다.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지만, 여전히 38mm 케이스가 손목 시계로서는 더 알맞아 보인다.



물론 화면이 커진 걸 디자인적 요소로만 생각하면 섭하다. 모서리까지 꽉꽉 채운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새로운 워치 페이스도 등장했다. 인포그래프 페이스에는 무려 8개의 컴플리케이션을 채워넣을 수 있다. 나는 기분이나 상황에 맞게 워치 페이스를 자주 바꾸는 편이다. 4년을 사용했더니 크게 두 가지로 정착했다.


[내가 멋부릴 때 쓰는 심플 페이스]


가장 아름답게 쓸 수 있는 ‘심플’ 페이스와 가장 많은 컴플리케이션을 담을 수 있는 ‘모듈’ 페이스를 왔다갔다했다. 가끔 옷차림에 맞게 미키마우스도 끼어들긴 했지만, 이것도 TMI. 해외 출장을 가거나 포르투에서 한 달 살기를 했을 땐 모듈 페이스 마저 모자란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현지 시간과 한국 시간을 동시에 띄우고, 날짜와 운동량, 배터리, 날씨를 채워넣다보면 캘린더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인포그래프는 대단하다. 내 모든 욕망을 한 화면에 띄울 수 있다. 입맛에 맞게 세팅해보았다. 처음엔 너무 정신사나워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적응해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디지털 크라운은 좀더 야트막하고, 섬세해졌다. 예전에는 미끄덩하게 한없이 돌아가는 수도꼭지 같았다면, 새로운 디지털 크라운은 태엽돌아가듯 리드미컬하다. 애플워치에서 앨범을 넘기거나, 밝기를 조절하고, 스크롤을 오르내릴 때 마다 간지럽히듯 진동하는 햅틱 피드백을 느낄 수 있다. 어디까지가 ‘한 번의 클릭’인지가 분명해졌다. 손맛도 좋아졌지만 조작할 때의 정확도도 높아졌다는 얘기다. 톡톡, 반응하는 그 진동이 아주 적당하다.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가장 선명하게. 캘린더에서 날짜를 넘길 때는 마치 일력을 한 장 한 장 뜯어내는 기분이 들 정도다.



크라운 밑의 작은 구멍은 마이크다. 오른손잡이가 애플워치로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한다고 했을 때, 자세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차이 중 하나는 스피커 볼륨. 촬영장에선 아이폰을 가방에 넣어두기 때문에 급한 전화를 애플워치로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상대방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서 신경질스럽게 내 목소리를 높이던 경험이 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빠한테 온 전화를 애플워치로 받았는데 주변 사람 모두가 아빠 목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일찍일찍 들어와! 너 그렇게 일하다 죽어!”



이제 이번 신제품의 하이라이트인 심전도 기능을 말해보자. 생각해보면 터치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애플워치에 굳이 크라운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나는 이걸 장식적인 요소로 생각해왔다. 스마트 워치의 이질감을 줄이고, 진짜 시계처럼 보이기 위한 장치 말이다. 그런데 2018년에 벌어진 일을 보니, 이 작고 예쁜 크라운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이 불가하지만, 애플워치 시리즈4의 심전도 측정 기능은 간단하다. 애플워치를 착용하지 않은 반대편 손가락을 크라운에 갖다대면 된다. 한쪽 손 끝에서 다른 한쪽 손목까지. 전극과 전극의 폐쇄회로를 만들어 몸을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하면 쉽다. 디지털 크라운에 탑재된 전극과 후면 크리스탈의 전기 심박센서가 함께 작동하며, 심장 리듬 분류를 표시해준다.



30초 동안 터치해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태까지 경험했던 어떤 심전도 측정보다 가깝고 빠르게 이루어지는 셈이다. 병원을 찾아가서 마음 먹고 검사 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심전도에 너무나 쉽게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나는 건강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까지 건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ECG 앱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이 기능을 자주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심방세동이라는 말도 이번 기회에 배웠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부정맥 형태인데 심장이 아주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게 된다. 주요 증상은 불안함과 가슴 두근거림, 호흡곤란 등인데 문제는 이게 뇌졸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애플워치 시리즈4는 이런 심방세동의 징후가 있는지를 판별할 수 있다. 만약에 심방세동을 암시하는 부정맥이 감지된다면 알림을 표시해준다. 이게 절대적인 결과는 아니겠지만 사용자는 혹시 모를 이상 징후를 보다 더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 나처럼 사무실에서 열심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직장인이 맥박에 이상이 느껴진다고 해서 병원으로 바로 달려가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애플워치 크라운에 손가락을 갖다대는 건 더 쉽다. 애플워치에 생긴 새로운 심전도 측정 기능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난 아직 써보지도 못했는 걸! 다만,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게 당연해졌던 것처럼 스마트 워치로 건강을 체크하는 미래도 당연해질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진심으로 흥미롭다.



함께 발표한 넘어진 감지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 그대로 사용자가 넘어지는 순간을 감지해주는 기능이다. 중력가속도를 32G까지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가속도계와 넘어지는 상황에 대한 알고리즘을 분석한 결과다. 사용자가 넘어졌다고 판단하면 알림을 보낸다. 애플워치의 실수라면 해제하면 되고, 사용자가 크게 다쳐 알림을 해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긴급 구조 요청을 보내게 된다. 가짜로 넘어져서는 먹히지 않으니, 괜히 애플워치 새로 샀다고 위험한 행동을 하진 마시길.



대한민국에서 앱등이의 삶을 살아오며 아이패드가 나오면 “사자!”고 외쳤고, 에어팟이 나오면 “지르자!”고 선동해왔다. 하지만 애플워치만은 무조건 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 적이 없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다”고 말했을 뿐. 나는 이 제품이 참 좋았지만, 스마트워치가 모두에게 필요한 기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도 “무조건 사라!”고 힘주어 말할 자신은 없다. 대신 이렇게는 돌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갖고 싶은’ 제품이었는데,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주고 싶은 제품’이 됐다.



첫 애플워치를 사용한 뒤로 4년이 지났다. 사실 1세대 제품은 여러모로 미숙했다. 방수 성능도 완전하지 않았고, 마음 먹고 제대로 활용하기엔 모든 반응 속도가 느렸다. 얼리어답터나 스포츠광이 아니라면 매력 포인트를 찾기 힘든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스마트워치가 망할 거라고 말했다. 애플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애플워치는 애플의 어떤 제품보다 절묘한 업데이트를 거듭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 내 손목에 걸려있는 이 제품이 나온 것이다.



전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하드웨어 성능이나 센서의 업그레이드, 블루투스 5.0 같은 변화도 당연히 반갑다. 1세대 제품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의 완성도와 성능을 갖췄다. 그리고 근사하다. 얼마나 기능이 많고 잘 만든 기계인지를 넘어 일상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건강’과 ‘삶의 질’을 건드리는 방식도 아주 칭찬하고 싶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애플워치가 없어도 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동기와 핑계가 필요하다.


마지막 문단을 쓰려는데 타이밍 좋게 일어설 시간이라는 알림이 온다. 손목이 기분 좋게 울린다. 이토록 미래적인 제품이 있을까. 혹시 여태까지 스마트워치 입문을 망설이고 존버하셨다면, 잘 하셨다. 애플워치 시리즈4로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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