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냉찬양기
안녕,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 일본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냉면집에 가서 한 사발 쭉 들이킨,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냉면의 시대’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나의 냉면 사랑은 유난히도 각별하다. 시작은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 입덧이 심했던 어머니가 그나마 드실 수 있었던게 냉면 뿐이어서 주구장창 먹어제꼈고, 외가가 이북출신이라 아직 한글을 쓰기 전부터 평냉을 먹었을 정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평양냉면은 나에게 일종의 소울푸드라고나 할까.
날이 추워졌다. 원래 이렇게 추운날 일수록 냉면이 맛있는 법.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에게 평양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한식, 이라고 하면 냉면부터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텐데 나는 평양냉면부터 떠오르곤 한다. 평양냉면이야말로 가장 이질적인 한식이자, 가장 오묘한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냉면이 전세계에 없는, 한국에만 있는 음식은 절대로 아니다. 서양에서는 차갑게 먹는 국수라는 개념이 무척이나 생소하지만, 사실 동양권에서는 차게 먹는 국수가 적지않다. 당장 일본만해도 우리가 흔히 먹는 냉소바가 있다. 냉파스타가 있지 않냐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냉파스타는 와풍 파스타, 그러니까 일식 요리라고 봐야한다. 서양권에서 말하는 콜드 파스타는 국수가 아니라 대개 샐러드로 취급된다.
차가운 국수가 생긴 이유는 사실 재료의 탓이 크다. 냉면이 왜 북한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재료를 통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쌀과 밀이 자라는 한반도 남부와 달리, 메밀을 재배하는 북부는 따듯한 국수를 만들기 어려웠다. 요즘에야 전분을 섞어 찰기를 만들 수 있지만, 원래 순수한 메밀로 국수를 뽑으면 찰기가 부족해 따듯한 국물에 면이 들어가는 순간 죄다 풀어져버리고 만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쉽다. 찬 국물에 넣으면 된다.
그래.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냉면은 탄생했다. 그 탓에 북한에서는 국수 = 냉면을 뜻한다. 랭면, 그러니까 냉면은 평양냉면만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아니, 천지에 널린 게 찬 국수인데, 그럼 왜 평양냉면이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오묘한 한식일까. 솔직히 나도 주장은 있는데, 내 주장을 뒷받침해줄 만한게 없어서 고민을 좀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랑 비슷한 주장을 하는 책을 하나 찾았다. 지금부터 음식평론가 이용재씨가 쓴 책, ‘한식의 품격’에 나오는 평양냉면의 설명에 기반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평양냉면의 육수는 기본적으로 고깃국물이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소고기 뭇국을 데우기 전의 상태를 보신적이 있을까…? 기름이 허옇게 떠서 둥둥 떠다니고, 국물에서도 기름기가 뭉쳐서 느끼하고 맛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한식에서 고깃국을 만들면서 원하는 게 동물성 재료덕에 생기는 묵직한 기름의 맛인 탓이다. 하지만, 평양냉면은 그 고깃국을 차게 식혀서 만들어야하니, 동물성 재료를 쓰지만, 기름기가 생기면 안된다. 결국 사용하는 재료는 ‘가장 기름기 적은 고기’가 된다. 일반적인 한식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한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치미를 섞어서 깊은 맛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결코 많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자고로 김치는 자기주장이 너무 세서, 나머지 재료가 뭐던 간에 다른 재료의 맛을 쉽게 무시해 버린다. 많은 음식들이 그렇다. 김치가 들어갔다고 하면 그냥 김치맛만 난다. 그래서 평양냉면이 오묘한 조화를 가진, 한식의 정수인 거다. 한국인의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김치가 다른 맛을 덮어버리는 만큼이 아니라, 정확히 제 역할을 하는 만큼만 사용된다.
여기까지 읽고 어떤 분들은 ‘그렇다면 면은? 평양냉면의 면 무시하나?”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에이 걱정마라. 평양냉면의 맛이 국물로 갈리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면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면을 미리 뽑아두지 못하기 때문에(메밀로만 반죽해 뽑은 면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부서져버린다),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제면이 들어가는 게 통상적이다.
요즘에는 메밀에 약간의 전분을 섞어 먹기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혹시라도 100% 메밀이 아니잖아! 라고 화내지는 말자. 일본에서 만드는 가장 고급 소바도 ‘니하치’라고 해서 밀가루 2, 메밀 8라는 법칙을 따른다.
자료를 찾다보니 '평양냉면을 먹는 법'이라는 가이드라인도 제법 발견했는데, 그 중에서도 평양냉면의 스탠다드인 옥류관의 맛있게 먹는 가이드라인을 공유한다.
고명은 옆으로 치워둔다.
면에 식초를 넣는다.
양념장과 겨자를 넣는다.
골고루 섞어서 먹는다.
하지만 여러분, 애초에 평양에서 파는 평양냉면은 한국에서 먹는 평양냉면이랑 궤가 다르고, 심지어는 평양에서 먹는 식초도 우리가 먹는 식초랑 조금 다르다는데, 저렇게 먹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뭐, 네가 뭘 아냐고 말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입맛도 다 다르고, 식당마다 평양냉면의 맛도 다 다른데, 정답이 있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저런 가이드라인은 그냥 시도해봤다가 자기가 먹어서 제일 맛있는 방법을 찾아서 먹도록 하자. 나는 편육이나 수육은 가끔씩 면이랑 같이 곁들여 먹으면 참 별미고 좋더라. 헤헤.
내가 또 옥류관 서울 1호점이라는 팝업스토어에서 첫날, 첫타임 손님으로 예약에 성공했다. 북한식 평양냉면과 남한식 평양냉면인데, 맛도, 생김새도 극단적으로 다르다.
앞서 말한대로, 평양냉면 가게가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어떻게 먹냐보다는 어디서 먹냐가 중요하다. 그럼 이제 평양냉면 가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바야흐로 ‘대 평양냉면시대’에 도달한 탓에 평양냉면을 파는 가게가 너무 많아져서 사실 어딜 가야할지 고민이 될지도 모르실 수도 있겠다.
평양냉면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다면, ‘~~계보’라는 걸 들어 보신적이 있으실텐데 오늘은 굉장히 간단하게 설명하려한다. 이 계보는 크게 2 종류로 나누어진다. 장충동계와 의정부계. 물론 이외에도 ‘그외’로 취급받는 다른 가게들이 있다(오해는 하지말자, 그외로 취급받는다고 절대로 맛이 모자란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우선 내가 가장 사랑하고, 우리집 근처에 있는 장충동계다. 장충동의 평양면옥이 그 시초인데, 사실 이제는 논현동, 도곡동, 분당에 흩어져있다. 창업자이신 ‘어머님’이 장충동에서 시작하셨고, 큰 아들, 둘째 아들, 딸, 손녀 사위가 여기저기 분점을 낸 거다. 이제 본점인 장충동 평양면옥은 큰 아들이 운영하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신다고 한다. 거의 다 비슷한 맛을 내니까 어딜 가든 상관은 없다. 이건 낭설이지만, 창업자이신 ‘어머님’이 오늘 어느 가게에 있으시냐에 따라서 가장 맛있는 가게가 어디냐가 바뀐다고 한다. 혹시라도 주방쪽에서 ‘어머님’이 보인다면 조용히 쾌재를 부르자. 여러분이 먹을 평양냉면은 그날의 장충동계 평양냉면 중 가장 맛있는 평양냉면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평양냉면의 기준이라고 불리곤 하는 의정부계다. 의정부계의 시초는 필동면옥이지만, 이제는 이름이 평양면옥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창업자 부부의 자녀들이 을지로의 필동면옥, 을지면옥, 잠원동에 있는 의정부 평양면옥으로 흩어져서 영업 중이다.
가장 큰 특징은 아주 약간의 고춧가루가 뿌려져있다는 점인데, 나의 평양냉면 파트너인 대학 선배에 의하면 장충동계 평양냉면보다는 의정부계 평양냉면이 소주와 궁합이 너무나도 찰떡이라고 한다. 다만 나는 소주를 먹지 않아서 사실 잘 모르겠다. 장충동계와는 다르게, 의정부계는 각각의 가게들이 이름도 다르고 맛도 조금씩 다르다. 다시 말해 여러분에게는 충분한 선택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브라보.
마지막이 봉피양, 을밀대, 우래옥, 능라도, 능라밥상, 숯골원, 서경도락 등의 가게다. 솔직히 가게마다 너무 특징이 달라서 이곳에 모두 적는 것은 무리고, 나보다 맛을 잘 너무 잘 아는 분들이 많아서 내가 구구절절히 적기도 좀 부끄럽다. 그래서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평양냉면 전문가 분들의 인스타그램을 공유하고자 한다.
@pyung_naeng_mania
아카이브 끝판왕. 어떻게 이런 곳까지 가보시지…? 싶으실 정도로 많은 곳을 가시고 디테일하게 리뷰하신다. 프로필로 공유하는 ‘전세계평양냉면지도’는 평냉 마니아의 성물.
@pyongyang_naengm
처음부터 점수로 깔끔하게 평가해 빠른 결정을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프로필에서 공유되는 오픈카톡방에 들어가면, 수많은 평냉 사랑꾼들이 “저 어디어디인데, 근처에 좋은 평냉집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집단지성으로 답해주신다.
@seumseumworld
평냉 인스타그램의 초신성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사진을 너무 이쁘게 찍는다. 디테일보다는 장점/단점을 딱딱 구분해서 적어주신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말투가 다른 분들에 비해서 조금 친근한 느낌이어서 좋다.
자, 여러분. 지금까지 나의 평양냉면에 대한 부족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혹시라도 냉면집 한 구석에서 혼자서 냉면을 들이키고 있는 민머리를 만난다면, 나일수도 있으니 인사해주길 바란다. 좋은 평양냉면 파트너는 언제나 환영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나온 평양냉면 찬가를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