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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Nov 26. 2018

여기저기서 참 태클을 많이 받은 맥주, 블루문

안녕하세요, 에디터M이에요. 오늘은 문득 존댓말을 쓰고 싶은 그런 날이에요. 혹시 제가 말이 많아질 것 같은 날엔 존댓말로 기사를 시작한다는 걸 눈치채신 분들이 있을까요? 만약에 그랬대도 모른척해주세요. 쉿.



맞아요. 맥주 리뷰를 빙자해 수많은 TMI를 쏟아내고 싶은 그런 날이랍니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맥주를 소개해할거에요. 지난 번 한 병에 6만 9,000원짜리 맥주를 리뷰하고 나서 저 나름대로 균형을 맞춰보기로 마음먹었거든요. 그래서 준비한 오늘의 맥주는 한글로 푸른달, 영어론 블루문입니다.



여러분은 블루문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참 좋아해요. 푸른빛이 도는 처연해 보이는 라벨, 합리적인 가격까지! 블루문만큼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맥주가 어디 그리 흔한가요?



그런데 잠깐, 블루문은 왜 이름이 블루문일까요? 블루문은 2년에서 3년에 한 번 한 달에 두번 보름달이 뜰 때가 있는데, 그때 두 번째로 뜨는 달을 블루문이라고 해요. 사실 이름처럼 달의 색이 더 푸른 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 귀한 달이 맥주랑 무슨 상관이냐구요? 왜냐면, 이 맥주를 마신 사람이 “이렇게 맛있는 맥주는 블루문처럼 귀하다”라는 말을 해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뭐 약간 억지로 갖다붙인 것 같기도 하지만, 멋있으니까 인정해주기로 합니다.



블루문은 1995년 맥주의 나파밸리라고 불리는 곳, 미국에서 가장 많은 양의 맥주가 생산되는 덴버에서 시작합니다. 해발 1,600m에 있는 하늘과 가까운 도시죠. 캐나다와 미국을 가로지르는 아메리카 대륙의 허리, 로키산맥의 깨끗한 물로 맥주를 만드니 맛이 좋을 수 밖에요. 원래 술이 맛있으려면 물이 좋아야 하거든요.


[예전에 우리나라에 리틀 야구왕(The Sandlot0)이란 이름으로 개봉한 영화도 있었다는데.. 아시는 분?]


그중에서도 블루문이 탄생한 Sandlot 브루어리는 조금 더 특별합니다. 왜냐면 메이저 리그 야구장 안에 있는 세계 최초의 브루어리거든요. 저는 야(구)알못이라 처음 듣는데 여러분은 혹시 미국 콜로라도 로키스를 아실까요?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 필드가 완공될 때, 이 양조장도 함께 시작됩니다. Sandlot이란 단어가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니라 취미로 하는 일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주로 아마추어 야구단을 지칭하는 단어로 많이 쓰인다는데, 이름부터 어째 야구의 향기가 솔솔 풍기죠?



이쯤에서 여러분은 ‘그럼, 블루문이 그냥 취미로 만들었다는 거야?’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일종의 성공신화 같은 걸 기대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미국의 작은 양조장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세계적인 맥주가 되었다는 이런 이야기 말이에요.



그런데 어쩌죠.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걸요. 사실 블루문은 미국의 3대 맥주 회사인 밀러 쿠어스가 만든 실험적인 맥주입니다. 야구장 오픈 시기에 맞춰 기획하고, 벨기에에서 맥주를 공부한 케이스 빌라(Keith Villa)를 데려와 만든 맥주인거죠. 그리고 이후에 밀러 쿠어스는 캐나다 최고의 맥주 회사인 몰슨사와 합병하면서 북미대륙의 가장 큰 맥주 회사가 되었답니다. 뭐, 대기업의 인수합병이야 그들만의 세상이니 이거야말로 정말 TMI겠네요. 우리가 진짜 알아야할 건, 블루문이 사실은 작은 양조장에서 시작된 게 아니란 것과 복잡한 대기업의 인수 합병으로 인해 현재 블루문이 미국과 캐나다 두 곳에서 생산된다 뭐 이정도면 되겠네요.



그럼 복잡한 기업들의 사정이야 머리속에서 지우고, 다시 블루문의 맛으로 돌아가 볼까요? 블루문은 호가든과 결이 비슷해요.둘 다 흔히 말하는 밀맥주 그중에서도 벨기에 스타일의 하이트비어로 맥주의 종류가 같구요. 오렌지 껍질과 코리엔더(고수)가 들어가는 것도 공통점이죠. 둘의 맛의 차이는 바로 이 오렌지에 있어요.



벨지안 화이트 비어는 원래 레몬 가니쉬를 올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블루문은요 오렌지 가니쉬를 올려서 마셔야해요. 이건 블루문에서 정한 불문율입니다. 바텐더에게 서빙을 할 때 꼭 오렌지 가니쉬를 사용할 것을 따로 불러 교육을 시켰대요. 그래서 블루문은 세계 최초 오렌지를 올린 벨지안 화이트 비어가 된 셈이죠.



블루문은 맛도 색도 오렌지에 상당부분을 기대고 있어요. 여과 하지 않아 탁하고 오렌지 빛의 맥주 색. 오렌지의 향과 달콤함이 강한 맛 덕분에 오렌지 가니쉬를 더하면, 그 풍미가 더 올라갑니다. 화이트 비어의 고소한 맛을 기본으로 딱 좋은 쿰쿰함과 고소함 그리고 오렌지의 달콤하고 상큼한 맛까지. 크으. 언제 마셔도 아주 즐거운 맥주입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지금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맥주지만 1995년 블루문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엔 분위기가 좀 달랐어요. 미국 사람들은 한결같이 라거를 사랑했거든요.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에일 맥주가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과 분위기는 아니었겠죠. 그래서 단맛을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오렌지의 달콤한 맛과 향을 더한거죠. 결론적으로 블루문을 만든 케이스 빌라의 전략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현재의 블루문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맥주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솔직히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블루문을 좋아해서 좀 놀랐어요. 탁하고 쿰쿰한 밀맥주는 대중적인 맛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걸까 가만 생각해보니 역시 오렌지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도 오렌지의 씁쓸함은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어요. 블루문은 생각보다 오렌지의 맛이 강한 편인데, 화이트 비어의 쿰쿰함과 구수함덕분에 균형이 잘 맞습니다.



사실 블루문은 여기저기서 참 태클을 많이 받은 맥주에요. 일단 벨기에에서 만든 맥주가 아니면서 벨지안 화이트비어라는 말을 썼다고 벨기에 맥주 협회에서 항의를 받았구요. 그래서 위의 ‘벨지안 화이트’란 큰 글씨 아래 ‘벨기에 스타일의 밀 맥주(Belgian-Style Wheat Ale’)라고 작게 표기해뒀답니다. 이건 좀 치사했어요.



그리고 또 있어요. 솔직히 블루문이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게 아니란걸 알고 아주 조금 실망하지 않으셨나요? 맥주도 우리처럼 출신이 굉장히 중요한데 밀러 쿠어스라는 대기업의 이름을 쏙 빼고 블루문 브루어리에서 만든 것처럼 자꾸만 크래프트 비어인척한다는 거에요. 이런 점이 진짜 크래프트 비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거죠.



하지만 작은 곳에서 만들었든 큰 곳에서 만들었든 뭐가 중요한가요. 밀러 쿠어스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있는 에디터M이 즐겨 마실 만큼 유명한 맥주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걸요. 저는요. 블루문 같은 맥주가 일종의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별처럼 많은 크래프트 맥주들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북극성처럼 화이트 비어! 밀맥주! 오렌지맛! 이런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세상엔 맥주의 종류가 너무 많고,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아는 건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런데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는 블루문 같은 맥주가 있다는 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거에요.“저는 블루문을 좋아하는데, 저한텐 어떤 맥주가 좋을까요?” 그럼 당신은 화이트 비어를 좋아하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거죠.



이번 리뷰는 그냥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네요. 블루문은 참 맛있는 맥주다. 여러분 편의점에서 블루문을 보셨다면, 일단 마시고 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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