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삭력 : 끝판왕. 다른 어떤 면도기를 아무리 잘 다뤄도 절삭력에서는 이길 수가 없다.
안녕, 독자 여러분! 짧은 털 전문가, 라이프스타일 덕후 신동윤이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본인 얼굴에 나는 털을 꽤 성심성의껏 정돈하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더 유별나게 신경써서 정돈하는 사람이다.
우선 내 머리 이야기를 하자. 내 두상은 선이 곱고, 모발이 빽빽해서 싹 밀어버리면 머리칼이 검은 융단처럼 반짝거리는 게 참 이쁘다. 맞다, 자랑이다. 하지만 머리가 빨리 자라서 며칠이면 지저분한 머리가 되어버리고, 이마선도 딱 직선으로 이쁘게 생기질 않아서 ‘아름다운 민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이 든다. 디에디트의 외고 필진 답게 관리를 위해서 장비를 하나 둘 모으다보니, 민머리 4년차에 들어서는 지금. 클리퍼(바리캉)만 3종류에, 추가 장비가 잔뜩이다.
아무리 자진해서 민머리가 되었지만, 사람이 뭔가 머리카락도 없이 그냥 동그랗게 눈코입만 있으니까 달걀에 점 3개 찍어둔 것 같고 좀 심심하더라. 어머니가 밤에 돌아다니는 날 보고 얼굴만 둥둥 떠다니니까 무섭다고 하시기도 하셨고. 달걀귀신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추가된 것이 바로 수염. 사실 머리카락을 기르는 건 오래걸릴 거 같은데다, 똑같이 짧은 털이니까 머리카락처럼 관리하면 될 줄 알고 기르기 시작했었다. 오판이었다. 결국 관리법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또 온갖 장비를 질렀다.
수염에도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봤다. 한동안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보기도 했고, 도구를 바꿔가며 면도를 하기도 했다. 이발소나 바버샵에 가서 면도를 받아보기도 하고, 안전 면도기도 써보고, 전기 면도기를 습식과 건식으로 바꿔가면서 써봤다. 카트리지 면도기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간단히 말하면 이 글을 쓰는 나는 짧은 털에 있어서는 제법 할 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마음 같아서는 얼굴에 나는 모든 짧은 털에 대해서 떠들어대고 싶지만, 오늘은 면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 다른 이야기는? 언제 얘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을 기약하자.
흠, 다른 이야기에 앞서 면도기 종류부터 살펴보자. 그래야 이야기가 쉬울테니까. 오늘 이야기할 면도기는 일자 면도기, 안전 면도기, 카트리지 면도기다. 일반 전기 면도기를 쓰면 컨트롤이 마음대로 안 되어서 잘 쓰지 않는다. 일회용 면도기도 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카트리지 면도기나 안전 면도기의 변용에 가까우니까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빼도록 하자.
자, 우선은 수천년 역사에 빛나는 일자 면도기다. 고작 면도기에 수천년 역사까지 들먹이냐고? 하지만 여러분, 인간은 털이 적게 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생명체다. 다시말해 우리 선조님들은 우리보다 털이 더 많이 났을테고, 면도에 대한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었을거다. 대부분의 위대한 물건이 그렇듯, 일자 면도기의 첫 등장도 바로 고대 이집트다. 이 정도면 고대 이집트 만물 창조설이 맞지 않나 싶다. 기원전 4,000년에도 흔적을 찾을 수 있고, 기원전 1,500년에 실제로 쓰던 일자 면도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아마 일자 면도기를 직접 써보신 분은 별로 없을거다.말이 좋아 일자 면도기지 사실 그냥 접이식 나이프에 가깝다. 실제로 일자 면도기를 제조하는 브랜드는 칼 전문 브랜드다. 그래서 스위니토드를 비롯한 이런 저런 미디어에서도 무기로 많이 등장한다. 근데 이게 과장이 아닌 게, 정말로 써보면 엄청 다친다. 인간의 목이 동맥이 있는 급소라는 걸 생각하면 분명 좀 더 안전한 도구가 필요하다.
나는 일자 면도기를 사서 쓰자마자 베이고 환불했는데, 베이자마자 ‘이거 익숙해지기 전에 죽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옛 사람들은 이 생각을 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신 모양이다. 1901년에야 ‘일자 면도기보다는 안전한’ 안전 면도기가 등장한 걸 보면.
하지만 실제로 안전 면도기를 써보면 생각보다 면도가 쉽지 않다. 카트리지 면도기처럼 헤드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정형이라 얼굴 굴곡에 맞춰서 각도를 요리조리 바뀌주어야 한다. 각도가 좀 어긋난다고 바로 베이는 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으면 몇 차례 베일 수 밖에 없다. 농담이 아니다. 안전 면도기로 면도하면 인간 얼굴이 얼마나 입체적으로 생겼는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안전 면도기가 20세기 발명품이라면, 우리가 쓰는 ‘이 진짜 안전한’ 카트리지 면도기는 대체 얼마나 하이-테크한 물건인 걸까? 카트리지 면도기는 190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아직 50살도 못 먹은 애송이다. 그렇다고 평가절하될 순 없다. 다중 면도날이라는 절삭 방식과 교체형 카트리지라는 말도 안되는 편의성으로 나오자마자 시장의 방향을 완벽히 바꾼 혁신적인 물건이니까. 질레트의 마하3는 출시와 동시에 세상을 바꿔버린다.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린 영향력을 비교하자면, 애플의 아이폰과 맞먹는다.
이제 종류가 뭐가 있는지는 알겠고, 대체 뭘 써봐야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부터는 완벽한 취향의 문제다. 면도기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싶겠지만, 그럼 비싸디 비싼 질레트는 진작에 망했어야했고, 굳이 여러 종류의 면도기를 만들어서 제작비를 늘리는 바보같은 일을 할리가 없다. 놀랍게도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면도기도 다 스펙이 다르다. 면도기의 스펙은 딱 두 가지 면에서 나뉜다. 피부 자극과 절삭력. 가장 중요한 건 이 두 가지. 나머지는 모두 부가적이다.
면도를 위한 물건이니까 당연히 절삭력은 중요하다. 애초에 수염이 안 잘리는 면도기가 가치가 있을 턱이 없다. 다만 문제는 이거다. 면도를 위해서 얼굴에 칼을 대다보니 피부 자극이 장난이 아니라는 점. 또 절삭력과 피부 자극은 기가 막히게 정비례 그래프를 그린다. 따지고 보면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털을 잘 자르면 당연히 피부도 많이 긁고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고운 피부에 얼마나 미안해하면서 수염을 편하게 밀어낼 것이냐, 조금 덜 깔끔해도 피부에 좋게 할 것이냐를 고민해야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피부 상태도, 수염 상태도 다르니까 이게 최고야!라고 말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거다. 진짜로 많이 써보고 여러분 취향에 찰떡같이 맞는 녀석을 고를 수 밖에 없다.
아 아, 알았다. 그래도 짧은 털 덕후로서, 후보군 정도는 드리는 게 원고료를 하는 것이겠지. 그럼 지금 내가 직접 쓰고 베이고 피를 보면서 알아낸 면도기를 몇 개 소개하겠다. 진짜로 ‘피같은 정보’다.
절삭력 : 실력에 따라 다름. 고수가 다루면 제일검, 초보가 다루면 대체 이걸 면도기라고 불러야하나 싶다.
피부 자극 : 실력에 따라 다름. 고수가 다루면 피부 자극 최저, 초보가 다루면 면도할 피부가 안 남아난다.
솔직히 내 취향은 단연 일자 면도기다. 나는 원래 좀 아날로그하고 과정에 품이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엥, 아까는 직접해서 한번에 베이고 바로 환불했다고 해놓고 무슨 말이냐고? 내가 안 하면 된다! 세상이 분업화가 되어있는 건 모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대신 이것저것 다 해보고 먼저 망해가고 있는 내가 그 증거기도 하고.
원래 옛날 사람들은 매일 이발소를 갔다. 면도를 위해서다. 낡은 이발소는 원래 면도도 제공하고, 요즘에는 바버샵에서도 면도를 해준다. 나도 아주 가끔, 진짜 아주 가끔 바버샵이나 이발소에 가서 면도를 한다. 위험한 만큼 품을 들여서 면도를 하기 때문에 대접받는 느낌도 좋다. 찜질을 하는 과정에서 마사지 효과도 있는데다, 정성들여 삭삭 칼 면도를 마치고 났을 때의 개운함을 이길 수 있는 면도기는 없다.
그럼에도 직접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거다. 비록 나는 일자 면도기를 다루는데 실패한 사람이지만, 과정을 설명해 드리겠다.
먼저 데운 물수건으로 면도 부위를 감싸고 찜질한다. 수염을 부드럽게해 면도도 쉽게 해주고, 노폐물도 빼주고, 마사지 효과도 있다. 기분도 좋은 시간이다.
브러시로 쉐이빙 비누 거품을 내준다. 비누를 물에 적신다음, 브러시에 묻히고 컵 같은 둥근 그릇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면서 거품을 내면 된다. 쫀쫀하고 부드럽게 나올 때까지 돌리면 된다. 브러시는 대개 오소리털을 써서 만드는데, 인공 소재로 된 것도 있다.
얼굴에 거품을 바른다. 피부 자극도 줄이고 면도도 쉽게 해준다.
칼날을 잘 정리한다. 대충 헹구고 마는 사람도 있던데, 베였을 때 세균감염이 안되려면 반드시 해야하는 진짜 중요한 과정이다.
칼날을 든다. 거울을 보면서 스위니토드같은 표정을 지어주면 좋다. 대신 아무한테도 안 들켜야한다.
조심해서 면도한다.
뒤처리를 한다. 면도를 하기 전의 과정이 조금 길지만, 면도를 마치고 나면 뒤처리는 무엇보다도 쉽다. 구조가 그냥 칼날만 있는 구조라서, 수건으로 쓱쓱 닦고, 잘 말려서 헹거에 걸어두면 된다.
보시다시피 과정도 좀 많고, 필요한 도구도 면도기만 있는 건 아닌데, 당연히 제작사들도 이걸 알기 때문에 대개 세트로 출시한다. 하지만 우선 면도기만 사서 시도해보고, 장비를 추가하길 권한다. 한국에서 일자 면도기를 검색하면 나오는 건 높은 확률로 파커(Parker)겠지만, 사실 가장 메이저 브랜드는 도보(DOVO), 티엘 이싸르(THIERS ISSARD), 보커(BOKER)다.
이중 가장 추천하는 건 도보다. 한국 지사가 따로 없는 건 도보나 티엘 이싸르나, 보커나 모두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도보는 도보 코리아라고 이름을 걸고 있는 수입원이 있다. 고급형은 통짜 날로 되어있는 거라서, 가죽 스트랩을 통해서 면도를 할 때마다 갈아주어야한다. 아무리 과정을 사랑한다고 해도, 매번 갈아주는 건 무리다. 우선은 날 교체형인 저가형을 사서 천천히 입문해보도록 하자.
절삭력 : 끝판왕. 다른 어떤 면도기를 아무리 잘 다뤄도 절삭력에서는 이길 수가 없다.
피부 자극: 끝판왕. 이 면도기를 아무리 잘 다뤄도 여러분의 피부는 박살나게 되어있다.
아, 이런 번거로운 과정 도저히 못한다! 라고 말하시는 분들을 위한 선택도 준비했다. 카트리지 면도기 사용법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테니, 사용법은 생략하겠다. 그냥 사람들이 잘 모르는, 혹은 잘 알아도 딱히 지키지 않는 면도의 이야기를 해보자.
면도는 결을 따라서 하자. 카트리지 면도기는 기본적으로 다중날을 이용해서 수염을 쭉 당겨서 자르기 때문에 까슬까슬함이 안남고 깔끔하게 밀리는 원리다. 문제는 피부보다 안쪽으로 잘라버리는 탓에 모공이 아물어 버리면 흔히 ‘인그로운’이라고 부르는 매몰모가 생긴다. 이 현상은 수염의 역결로 면도할 때 심해지니, 수염의 결을 따라서 면도하자. 충분히 잘 잘린다.
쉐이빙 폼/젤을 이용하자. 이건 부탁에 가깝다. 다중날은 접촉 면접이 크기 때문에 피부에 상처가 크다. 칼날로 얼굴을 계속 긁어대는데, 상처가 안 날리 없다. 비누나 폼 클린징을 쓰면되지 않냐고? 용도가 다르다, 용도가. 비누와 폼 클린징은 청결이 목적이기 때문에 피부의 유분을 날려 부드럽게 면도하지 못하고, 상처가 생기기 쉽다. 쉐이빙 폼/젤은 이 피부 자극을 최소화해주는 도구다. 지성이면 피부에 밀착될 수 있는 젤 타입을, 건성이면 폼 타입을 이용하자.
애프터쉐이브를 쓰자. 이것도 결국 같은 이야기다. 쉐이빙 폼/젤이 주사를 놓기 전에 엉덩이를 두들기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과 같다면, 애프터쉐이브는 주사를 놓고 난 뒤 솜으로 문지르는 것과 같다. 칼날로 긁어댄 피부를 달래주는 과정이라는 거다. 다만 요즘에는 피부 진정효과 정도는 웬만한 스킨에 다 포함되어있으니, 스킨이라도 잘 발라주자.
제발 날을 주기적으로 교체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날을 안 교체하고 지나치게 오래 사용한다. 여러분, 턱에 생기는 트러블, 그거 금속 알러지가 아니라 날이 더러워서 그런 거다!
보시다시피, 전부 다 피부 자극 때문에 생기는 팁이다. 그만큼 카트리지 면도기가 갖는 피부 갈등 문제가 크다. 그냥 다중날이면 다 좋은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7중날, 9중날이니 하는 것보다는 3중날, 5중날로도 충분하다.
추천은 안 해주냐고? 흠, 그전에 달러쉐이브클럽(DollarShaveClub)이라는 곳 이야기를 해보자. 저렴한 가격에 면도기를 정기배송해 대박 난 미국 스타트업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 이노쉐이브라는 서비스다. 최소 한달에 1번, 최대 한달에 8개까지 3중날, 5중날을 선택해 받을 수 있다.
절삭력 : 적당히 잘 밀림.
피부 자극 : 적당히 적음.
꼭 안전 면도기의 특징이 외날 면도기와 카트리지 면도기의 중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카트리지 면도기의 피부 자극도 부담스럽지만, 외날 면도기를 직접 쓰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는 안전 면도기가 제격이다. 외날인 탓에 피부 자극도 적고, 다중날처럼 수염을 당겨서 자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그로운(매몰모)의 위험도 없다. 하지만 동시에 다중날의 절삭력은 없으니, 잘 면도하려면 조금의 요령이 필요하긴하다.
기본적인 면도법은 카트리지 면도기와 똑같다. 유일한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앞서 말했듯 헤드가 고정되어 있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팁은 바로, 최적의 각도인 약 30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연습을 통해 알아내라는 거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금방 익힐 수 있다.
대체 안전 면도기의 장점은 뭐가 있다는 거지 싶으신 분들을 위해서 설명드리자면, 안전 면도기가 확실히 경제적이다. 이게 한국에서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꾸준히 이야기되는 주제다. 카트리지 헤드에 비해서 날만 갈아주면 되는 양면 면도기는 가격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도루코 기준으로 면도날 100개에 만원 정도다. 카트리지 헤드는 4개에 오천원 이상이니, 쓰면 쓸수록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환경의 문제다. 결국 카트리지 헤드는 플라스틱을 계속 버리게한다. 금속이라서 금속으로 분리수거해버리면 되는 안전 면도기의 날보다는 환경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물론, 금속날을 모으는 건 위험하고, 신경쓰이긴 하지만, 어쨌건 환경에는 조금 더 긍정적이라는 거다.
추천은 머큐어(Merkur)의 34c HD다. 안전 면도기는 공격적인 면도기와 순한 면도기로 나누어지는데, 공격적인 면도기일수록 다칠 확률이 높다. 문제는 순해질 수록 면도가 개운하질 못하다는 점. 그런 점에서 머큐어 34c HD는 가장 스탠다드한 안전 면도기다. 입문용으로 딱이다.
면도따위에 너무 정성들이는 거 아니냐고? 면도를 한다는 게, 매일 시간을 써야하는 귀찮은 일일 수 밖에 없다. 대체 왜 수염이란 녀석은 아침에 밀어줘도 저녁이 되면 까슬까슬하게 자라나는지. 내 몸중에서 가장 성실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면도에 더 신경을 써주는 걸 추천한다. 어차피 매일 해야하는 일, 재밌고 설레고 기대되면 더 좋지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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