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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r 11. 2019

덜컥 다도 세트를 구입했다.

힛더티의 슈퍼 말차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마시는 것도 참 좋아한다. 하루종일 무언가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힘을 정도다. 지금도 겨우 두 문장을 타이핑하면서 물을 두 번이나 마셨다. 330mL 짜리 에비앙 페트병에 백산수를 담아서 꿀꺽 꿀꺽(기왕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재사용하려는 의도로 봐주시길).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낮에는 카페인을 주로 마시고 밤에는 알코올을 주로 마실 뿐.


[실제 상황 에디터H 자리]

집중해서 원고라도 쓰는 날에는 마시는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을 섭취해 글로 만들어내는 신묘한 능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물 하(河)자를 쓰는 내 성씨에 물의 기운이 도사리는 것인가. 표독스러운 나의 동업자 에디터M은 내가 탄산수를 너무 많이 마시며, 화장실을 너무 자주 간다고 구박하기 바쁘다. 하지만 ‘음용’을 즐기는 건 꽤 즐거운 취미다. 이 세상엔 무한한 마실거리가 있고, 좋은 음료수는 일상을 즐겁게 만들어주니까. 



최근엔 ‘말차’라고 부르는 진한 가루 녹차에 빠져있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말차라떼를 마시다 입에 붙어버린 것. 그러다 와디즈에서 엄청나게 펀딩을 받았다는 슈퍼 말차가 생각나서 구입해보기로 했다. 티 전문 브랜드인 힛더티가 내놓은 제품인데, 고작 말차 하나로 펀딩 일주일 만에 1억원을 돌파했다고. 나도 글을 쓸고 있을 게 아니라 절구로 차를 찧어 팔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초조해진다. 하지만 난 파는데는 소질이 없고 사는데만 소질이 있으니 안될 일이다.



슈퍼 말차라고 검색하니 말차만 판매하는 상품도 있고, 다도 세트와 함께 파는 것도 있었다. 상품 페이지에 ‘한 땀 한 땀 장인이 만든 수제품’이라고 쓰여 있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저런 말에 현혹되지 않았겠지만, 나는 호구이기 때문에 덜컥 다도 세트를 구입하고 만다. 집에서 말차라떼를 해먹고 싶다는 생각에 무려 6만 8,000원을 쓰고 말았다.


신속하게 택배가 도착했다. 받기 전엔 돈X랄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패키지가 아주 야무지고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금방 납득하고 말았다.



구성품부터 살펴보자. 100g의 슈퍼말차 오리지널 1캔. 까만 그릇은 국내 도예가와 만들었다는 전용 차완이다. 그리고 바로 문제의 그것. 귀하다는 국내산 오죽을 사용해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차선 100본이 함께 들어있다. 차선은 말차를 섞을 때 쓰는 용도다.



슈퍼말차가 유명해진 이유는 달콤한 맛을 내면서도 0칼로리이기 때문이다. 본래 카페에서 파는 녹차라떼(비슷한 라떼류는 몽땅)는 사실 설탕 맛이다. 입에서 기분 좋을 정도의 단맛이 느껴진다면, 설탕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칼로리가 치솟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힛더티는 설탕말고 다른 걸 넣었다. 바로 스테비아. 천연 설탕이라고도 부르는 단맛을 내는 허브인데, 설탕에 비해 칼로리는 100배 낮고, 당도는 300배 이상 높다고. 덕분에 극소량만 넣어도 설탕보다 강한 단맛을 낼 수 있다. 당뇨 환자들이 설탕 대신 섭취한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물론 과다섭취시 부작용이 있다고는 하는데 이 말차 안에 든 스테비아는 말그대로 극소량이다.



차완은 생각보다 예쁘지 않다. 그냥 밥그릇 같다.



다도 문외한인 내겐 신문물인 차선이 더욱 매력적이다.



100갈래의 가느다란 대나무 가닥이 곱게 입을 벌리고 있다. 쪼개진 대나무의 수가 많을 수록 더 뽀얀 거품을 만들 수 있다더라. 이걸 손에 쥐고 있으려니, 되게 우아하게 차를 즐기는 사람 같고, 전문가 같고, 뭐 그렇다.



봉지를 뜯어 통에 탈탈 털어 넣어 보았다. 뽀얗고 고운 말차 가루가 미세먼지처럼 잠시 안개를 만든다. 잎차와는 확실히 다른 진한 녹차 향이 풍긴다. 색깔도 너무 예쁘다.


말차는 찻잎을 쪄서 맷돌에 곱게 갈아 분말 형태로 만드는 차를 말한다. 새싹이 올라온 햇차를 20일 정도 햇빛을 차단해 재배한 뒤 증기로 찌기 때문에, 이렇게 선명한 녹색이 나오는 거라고.



다도 세트에 들어있는 작은 스푼으로 한 스푼이면 10g 정도다. 차완에 10g의 슈퍼 녹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두 스푼 정도 넣어준다. 그리고 대나무 차선으로 빠르게 저어준다. 이 과정을 격불이라고 한다더라. 격!! 불!! 정말 뽀얀 거품이 몽글몽글 생길 때까지 격하게 저어줬다. 역시 도구를 쓰면 다르다. 티스푼으로 저은 것과는 완전 다른 텍스쳐다.



이 상태로 마셔도 나쁘지 않다. 다만, 스테비아의 단맛이 생각보다 강하다. 설탕의 단맛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인데, 입에 착 붙는 감칠맛은 아니었다. 말차 자체의 풍미와 씁쓸함은 아주 훌륭하다고 평가하겠다. 대신 스테비아의 단맛과 겉돈다는 느낌이 있었다. 클래식 말차로 마신다면 단맛이 없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클래식 말차에 실패하고 말차 라떼 제조에 들어갔다. 격불한 말차를 차가운 우유 위에 사르르 얹어준다. 참고로 찬 우유에서는 말차 가루가 잘 섞이지 않는다, 차선으로 잘 섞어준 뒤 우유 위에 뿌려줘야 곱고 뽀얀 말차를 맛볼 수 있다.



금세 어여쁜 연둣빛의 아이스 말차 라떼가 완성됐다.


어머어머, 이건 꽤 맛있다. 레시피에는 슈퍼 말차를 한 스푼만 넣어서 라떼를 만들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진한 게 좋아서 한 스푼 반을 넣었다. 적당히 달고 기분 좋게 씁쓸하다. 클래식보단 라떼다! 그래 이건 슈퍼 말차 라떼 패키지가 틀림 없다.



에디터M과 에디터 기은에게 강제로 라떼를 권했다. 꺼림칙한 표정으로 내가 제조한 라떼를 마신 두 사람은 “어? 맛있네?”라며 솔직한 리액션을 들려줬다. 진짜다, 이거 맛있다. 사 먹는 맛이다.



시원하게 핸드 메이드 말차 타임을 즐기고 나니 현자 타임이 몰려온다. 말차를 격불한다고 흰 테이블 위에 묻은 초록 핏자국을 닦아내고, 차완과 차선을 설거지한 뒤 말려준다. 즐겁고 맛있는 시간이었지만 사 먹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에디터H의 즐거운 취미 생활은 여기까지. 다음엔 또 무엇을 마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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