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 x 후지필름 전시 'home'
안녕 여러분 에디터M이다. 부산에 다녀왔다. 얼마 전 디에디트에 올라간 김도훈 편집장의 부산 산북도로에 대한 글을 보고 무작정 기차표를 끊었다. 이렇게 쓰면 참으로 낭만적이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하지만! 내 이유도 나쁘지 않다. 부산에서 후지필름과 함께 16명의 매그넘 포토그래퍼가 ‘HOME’이란 주제를 가지고 그려낸 전시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세 여자가 깔깔대는 브이로그 영상도 찍어왔으니 일단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HOME은 사전적 의미는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을 말한다. 집, 가정, 가족, 고향을 말한다. 누군가는 그리워하고 다른 누군가는 지긋지긋하겠지. 난 두 가지 감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쪽이다.
오랜만에 기차여행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들떠있다. 딱 두 시간이면 한반도의 끝 부산에 도착한다. 부산역 앞에서 택시를 잡은 서울 촌년들이 호기를 부린다. “아저씨 돌아서 가도 괜찮아요. 바다가 보이는 도로로 가주세요” 아저씨는 익숙한 듯 운전대를 잡는다. 거대한 동물의 흰 뼈대처럼 보이는 광안대교를 따라 택시가 내달린다.
오늘의 목적지, 고은미술사진관에 도착했다. 해운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이다. 이곳엔 매그넘 작가 16명이 “당신의 HOME은 어디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가장 거친 모습을 담는 매그넘 작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각자가 생각하는 집에 대한 사진을 찍게 하다니, 정말 멋진 기획이 아닌가. 평생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매그넘 포토그래퍼들이기에 어쩌면 집에 대해 더 애틋한 마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직 오픈 전이라 전시장 전체를 디에디트가 전세 냈다. 난 사실 사진에 대해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전혀 어려운 게 아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집이, 고향이 그리고 가정이 있으니까. 네모난 사진들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사진의 크기도 배열도 심지어는 액자 프레임까지 하나같이 제각각이다. 각각의 사진들이 마치 독립된 생명체처럼 모였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진가는 테이블 아래 숨겨둔 비상금을 찍고, 누구는 집으로 날아든 고지서를 찍었다. 흰 벽에 덩그러니 놓인 콘센트를 찍은 작가도 있었다. 우리는 이 작가는 에디터H처럼 충전에 집착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깔깔댔다. 세 명의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자기만의 해석을 더한다. 사실 맞는지 틀린 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정말 마음에 드는 사진은 인증샷을 찍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담는다.
에디터H는 위트있는 엘리엇 어윗의 사진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작업실이 곧 집이라는 그는 시가를 물고 있는 대형 물고기 사진 아래 앉아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에게 똑같은 시가를 권한다. “카넬로(작가가 쿠바에서 데려온 반려견 이름이다) 봐봐 이게 시가라는 거야 멋지지?”
이제 막 19살이 되어 대학으로 떠나는 딸과의 아이폰 메시지 화면을 찍은 작가도 보인다. 사진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디에디트를 하면서 벌써 3년째 300만 원짜리 미러리스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제일 자주 사용하는 건 아이폰이다. 내 아이폰 사진첩은 내 기억을 얇게 떠서 모아둔 그림일기에 가깝다. 스마트폰부터 DSLR까지 요즘은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평생 사진을 찍는 것을 업으로 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속살을 여과 없이 까발린 사진을 보니 묘한 친밀감이 든다.
천천히 전시회를 둘러본다. 어디서 들었는데 전시회를 감상하는 평균 시간이 48초란다. 누군가가 생을 바쳐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니 충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렀다. 고향과 집 가족 그리고 자신을 담은 사진가들과 함께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떠들었다. 전 세계 가장 험한 곳을 돌아다니는 매그넘 포토그래퍼들에게 HOME이란 주제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근간이 되는 걸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테니까.
사실 부산이 끝이 아니다. 이번 후지필름 HOME은 부산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이어진다. 부산 전시가 매그넘 포토그래퍼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라면, 서울 X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는 우리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는 사랑방에 가깝다.
킁킁. 지하에 있는 전시장으로 내려가는데 독특한 향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혹시 여러분은 각각의 집마다 고유한 향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어렸을 적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 집의 독특한 향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했다. 신기하게 그 향은 하나같이 달랐다. 나도 가끔 외박을 하고 현관으로 들어설 때 우리 집의 냄새를 맡고 나서야, ‘아 내가 집에 왔구나’란 생각을 한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의도적으로 이곳의 향을 한 가지 향수로 채웠다고 한다. 무슨 향인지는 여러분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여기선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향까지 신경 쓰다니 정말 단단히 작정을 한 게 틀림없다.
전시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기자기했다. 부산 전시회에서 자주 등장하던 반려견처럼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강아지 모형이 우리를 반기고, 낙서를 할 수 있는 책상, 어렸을 적에 썼던 그림일기, 종이딱지와 팽이까지. 어렸을 적 신나게 놀던 것들로 가득했다. 이곳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그 누구든 간에 HOME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한 물건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도서관에 가까웠다.
도서관이란 말이 나온 김에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사진집도 빼놓을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여기 눌러앉아있고 싶을 정도.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멋진 자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부산도 그랬지만, 이곳 서울 전시도 역시 무료니까. 여러분도 모두 들러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 귀하고 멋진 사진집을 탐독했으면 좋겠다.
멋진 취향을 가진 친구 집에 초대된 것처럼 자꾸만 이것저것 들춰보고 감탄한다.
다른 반대편엔 한 쪽 벽을 다 차치하는 벽에 영상이 흘러나온다. 16명의 사진가의 이야기를 담은 1시간 짜리 영상이다. 이건 칸 광고제 그리고 20개의 다른 영화제에도 출품됐을 정도란다. 세 명의 에디터가 모두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영상을 감상한다. 우리가 보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들 진심으로 이 프로젝트를 사랑하는 게 느껴져서 더욱더.
그중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사진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글로벌 언어라는 문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영어든 한국어든 심지어 언어를 몰라도 사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다. 그리고 집 또한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집은 있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멋진 1박 2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단 한 번이라도 집에 대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여러분에겐 HOME이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봄이 오고 있다. 전시회를 핑계로 부산행 기차에 몸을 맡기는 일도 멋진 일이겠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진가도, 우리에도 모두 각각의 홈이 있다. 그리우면서도 지긋지긋하고 떠나고 싶으면서도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 감히 한 단어로 말할 수 없는 여러분의 HOME이 어디인지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전시는 5월 8일까지다.
HOME 전시
고은사진미술관 in 부산 ~5/8
후지필름 X갤러리 in 서울 ~5/8
http://home-magnum.com/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