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행 마친 웹툰 리스트 5
안녕, 여러분. 웹툰 골라주는 여자 에디터H다. <디에디툰> 코너에 오랫동안 소홀했다. 넷플릭스로 시작해 유튜브, 왓챠 플레이까지 무제한으로 영상물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모든 콘텐츠에 골고루 마음을 쏟기란 어려운 일이다. 최근 반년을 넷플릭스의 노예로 살았다. 그러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한 번쯤 겪는다는 넷플릭스 권태기에 봉착했다. 그래서 웹툰으로 돌아왔다.
4월 들어 밤잠을 설치며 웹툰에 매진했다. 거의 매일 자정에 퇴근하는 나날인데도 포기하지 않고 새벽 3시까지 웹툰을 봤다. 이미 완결된 만화를 한 화, 한 화 스크롤을 내리며 보는 맛은 정말 각별하다. 정신을 차리면 방금 충전한 코인이 떨어져 있다. 거의 마약 수준이다. 하긴, 요즘 뉴스를 보면 나 빼곤 다 마약을 하는 것 같던데 웹툰 중독 정도야… 금, 토, 일 3일 동안 10만 원어치 코인을 충전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지금 에디터H가 푹 빠져있는 곳은 저스툰. 나만 당할 순 없지. 지나치게 재밌어서 완결까지 단숨에 정주행을 마친 리스트만 선정했다.
PTSD
TYPE : 저스툰 / 완결
GENRE : 스릴러
사실 내가 저스툰에 회원가입을 한 것 자체가 꼬마비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함이다. 대표작은 ‘살인자ㅇ난감’, ‘ S라인’. 그림체를 보면 장난스런 일상 코믹툰으로 착각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꼬마비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잔혹하며, 문제작이다. 오늘 소개할 PTSD 역시 파격적인 설정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뜻하는 용어다. 시작은 평화롭다. 대마도로 여행 온 한국인 관광객들. 그러나 1화가 끝나기도 전에 시뻘건 글씨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밤사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초토화된 한국 땅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졸지에 관광객들은 전쟁 난민이 된다.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건만 보는 내내 소름이 돋는다. 실제의 지명과 장소를 무대로 한 가상의 사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상해보는 최악의 시나리오. 그때부터 대마도에 갇힌 다양한 인간 군상 안에서 온갖 일이 벌어진다. 이후는 직접 확인하시길. 재밌는 건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한국 땅의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가슴 속 공포로 상상할 뿐이다. 미사일이 떨어지고 전쟁이 시작돼 시뻘겋게 죽음의 땅이 된 조국의 모습을 말이다. 상상 속의 일이건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사람 냄새
TYPE : 저스툰 / 완결
GENRE : 스릴러
김숭늉 작가는 일상이 무너지고 극한의 상황으로 몰렸을 때,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 공포와 심리를 아주 잘 포착해낸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됐던 전작 ‘유쾌한 왕따’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세상이 멸망하고 학교 건물이란는 좁은 사회에 갇힌 왕따 소년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를 담은 내용이다. 사실 문명을 벗어나 고립된 사회에서 인간의 광기가 발휘되는 설정은 언제나 잘 먹히는 흥행 불패의 키워드다. 1954년에 발표된 소설 ‘파리 대왕’부터 2019년까지 한결같이 말이다. 지구 멸망, 고립, 생존… 여기에 좀비가 추가되면 정점을 찍을 수 있다. 그렇다. 김숭늉 작가의 신작에는 좀비가 추가됐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고, 고시원 건물에 갇힌 사람들은 좀비로부터 목숨을 지키고 식량을 지키기 위해 잔인해지기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라고? 맞다. 수많은 콘텐츠에서 봤음직 한 설정이다. 하지만 풀어내는 사람의 재주에 따라 그 재미와 몰입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건 김숭늉 작가가 아주 잘하는 영역이다. 잔혹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뻔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완벽한 교실
TYPE : 저스툰 / 완결
GENRE : 학원물
내가 또 학원물을 아주 좋아한다. 학교는 묘한 공간이다.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규칙을 따르고, 같은 시간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금만 튀어도 두드러진다. 좁은 사회에 고여 있기 때문에 계급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완벽한 교실은 쌍둥이 남매가 학교에 전학을 오며 생기는 이상한 일들을 담았다. 친절하고 상냥한 얼굴을 하고 친구들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주인공을 보면, 너무 소름 끼쳐서 매력적이다. 교실 안에서 끝없는 음모와 왕따, 계략이 교차한다. 이 내용 그대로 배경만 바꾸면 정치 스릴러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하는 행동이나 스케일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고등학생이라는 걸 믿을 수 없지만, 만화적 과정으로 받아들이자. 다양한 캐릭터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것.
우먼 인 트러블
TYPE : 저스툰 / 완결
GENRE : 로맨스 스릴러
이 웹툰을 보기 시작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앞서 소개한 <완벽한 교실>을 마지막 화인 52화까지 달린 직후였다. 워낙 감정 라인이 치열한 웹툰이라 숨이 차고, 술에 취한 기분이었다. 뭔가 가벼운 웹툰으로 해장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썸네일을 아무거나 클릭했다. 뺨이 발그레한 여성이 웃고 있는 그림. 가벼운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다. 하! 천만의 말씀이었다. 난 결국 그날 새벽 4시까지 자지 못했고, 코인을 충전해야 했다. 서른 중반의 기간제 교사인 주인공 노민혜는, 어느 날 한 통의 러브레터를 받는다. 뜻밖에도 그 편지를 보낸 건 연우라는 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은밀하게 편지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운다. 노민혜는 학생과 비밀스러운 연애를 하고 있다는 환상에 푹 빠져버린다. 그런데 어느 날 연우로부터 이 관계를 그만두자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때부터 이 작품은 걷잡을 수 없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마치 작가의 손을 벗어나 캐릭터들이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온갖 일들이 일어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스포가 될 것 같아서,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다. 확실한 건 이 웹툰은 단순히 학생과 사랑에 빠졌다는 망상에 빠진 교사의 로맨스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요 인물은 크게 세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 8부에 걸쳐 진행되는 우먼 인 트러블은 이들이 왜 이런 행동을 했고, 어쩌다 이런 성격을 갖게 됐는지 공을 들여 설명한다. 단 한 명의 캐릭터로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한번 시작해보시길. 묘하고, 이상한데, 멈출 수가 없다.
그녀의 심청
TYPE : 저스툰 / 완결
GENRE : 시대극
저스툰이 꽤나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했던 작품이다. 썸네일을 광고에서 봤던 게 기억나 무심코 보기 시작했다. 묘한 분위기의 작화를 보고 야시시한 만화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제목처럼 심청전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일단 1화를 보는 순간 놀라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우리가 상상했던 심청이가 아니니까. 작가도 의도적으로 참하고 고운 ‘전형적인 효녀 심청’을 연상케 했다가 진짜를 보여주며 낚시질한다. 음, 얘가 심청이구나… 하고 심드렁하게 스크롤을 내리다 깜짝 놀랐다. 헝클어지고 떡진 머리카락. 성별도 구분할 수 없는 행색. 거지라고 놀림 받으며 구걸을 하거나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사는 심청이. 어쩔 수 없이 맹인인 아버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딱히 효녀도 아니다. 그리고 여기 한 명의 캐릭터가 더 등장한다. 뽀얀 피부에 인형 같은 얼굴, 언제나 미소짓는 표정과 상냥한 언사. 아버지뻘인 장 승상에게 지참금도 없이 팔려오듯 시집 온 어린 신부. 장 승상 부인이다. 이 웹툰의 서사는 거렁뱅이 신세인 심청과 귀족인 장 승상 부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상류층인 장 승상 부인이 심청을 일방적으로 거두어주는 것 같지만, 계속 보면 오히려 반대라는 게 느껴진다. 뺑덕 어멈, 심봉사, 장 승상 부인까지. 심청전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를 재해석한 솜씨가 대단하다. 극적인 재미로도 엄지를 ‘척’ 들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작품 전반에 깔린 여성의 삶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섬세하고 설득력 있다. 누군가의 ‘부인’으로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 밖에는 삶의 의미가 없었던 장 승상 부인이 자아를 찾아나가는 과정에 박수를 보낸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