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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Sep 05. 2019

미니멀리스트가 못 되는 이유

29CM라는 개미지옥에 빠진 에디터

안녕,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맥시멀리스트 에디터B다. 윤동주 시인이 썼던 ‘쉽게 씌여진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여기서 육첩방은 다다미 여섯 장 반을 의미하고, 다다미 한 장은 반 평 정도이니 윤동주는 3평짜리 방에 산 셈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싱크대, 화장실 이런 것만 빼면 비슷하다. 하지만 정말 다른 게 하나 있다. 그와 달리 나는 수집욕이 있어서 내 방은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는 것.


최근에 특히 많이 샀는데, 모조리 29CM에서만 샀다. 계기는 VIP가 되면서부터다. 옷을 몇 벌 샀더니 VIP가 되었고, 축하한다며 18% 쿠폰을 한 달에 두 번씩 줬다. 그 쿠폰을 쓰느라 또 소비를 했고, 또 VIP가 되고…


세 달 동안 29CM라는 개미지옥에서 살다가 지금은 가까스로 벗어난 상태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지만, 내게서 미니멀한 건 통장밖에 없는 것 같아서 슬프다. 오늘은 29CM에서 뭘 샀는지 고백하려고 한다. 대량 소비한 계기는 VIP쿠폰 때문이었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크루 추천과 수요입점회 때문이었다. 그 두 가지가 날 어떻게 유혹했는지는 아래에서 언급하려고 한다. 맹세컨대 29CM 광고가 아니다. 차라리 광고였다면 덜 서글펐을텐데. 흠흠. 그럼 첫 번째 제품을 소개한다.


1.Kakao mini C speaker


“그거 좋아?”
“왜 샀어?”

카카오 스피커를 쓰고 있다고 말하면 듣는 말이다. 그렇다고 구매한 이유를 요목조목 설명하지는 않는다. 왜 샀는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넌 그런 것도 사냐는 의미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튼 나는 카카오 스피커를 쓴다. 다들 알다시피 카카오 스피커는 카카오i가 들어있는 AI스피커다. 이번이 첫 구매는 아니다. 2년 전에 첫 런칭했을 때도 산 적이 있으니 두 번째 구매. 1년 넘게 꽤 만족스럽게 쓰고 있었지만 나의 불찰로 기기가 고장 났고, 29CM를 통해 재구매를 하게 된 것이다. 카카오 스피커가 좋다는 건 네이버 클로바를 쓰면서 알게 됐다. 두 스피커를 모두 써 본 사람으로서 카카오를 더 추천하고 싶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클로바는 바이브(네이버의 서비스다)와 연동이 되며 카카오 스피커는 멜론과 연동이 된다는 것. 두 번째, 클로바는 알림음을 음악으로 바꾸지 못하지만, 카카오 스피커는 가능하다는 것. 세 번째, 클로바의 조작 버튼은 후면부에 있어서 누르기 불편하지만, 카카오 스피커는 기기 윗면에 있어서 편하다는 것. 네 번째, 카카오는 한 마디 대화를 마치면 자동으로 활성화되며 다음 질문을 기다리지만, 클로바는 대화가 끝나면 다시 “클로바!”하고 불러야 한다는 것. 오늘은 스피커 리뷰가 아니니 여기까지만 말해야겠다.


29CM에 대해 안 좋은 인식 중에 하나는 비싸다는 게 있는데, 난 카카오 스피커를 4만 8,900원에 구입했다. 지금은 5만 9,000원으로 다시 가격이 올랐다. 할인율은 계속 달라질 수 있으니 싸다 싶을 때 구매하길 바란다. 29CM는 가끔 하루 동안 특별 세일을 하는데, 한번은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를 50% 할인해서 13만 9,500원에 팔더라. 와우.


2.LIFE T-shirts


몇 달 전에 라이프 티셔츠를 소개한 적이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매거진 라이프가 패션브랜드로 탄생했다!’ 이렇게. 그때는 정식 출시 전이어서 직접 써본 건 아니었다. 브랜드 히스토리가 멋있어서 소개를 했던 거였지. 그리고 며칠 뒤, 29CM에 입점한 라이프 제품을 봤다. 이때다 싶어 VIP 쿠폰으로 할인받아 티셔츠 1장을 구매했다.

결과적으로 만족한다. 헤비코튼을 사용해 면이 두꺼운데, 이건 사람에 따라 너무 무겁다거나 여름에 입기엔 덥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옷이 안정감있고 짱짱하다는 느낌. 이제는 다른 얇은 티셔츠는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나는 의미 부여를 좋아하는 인간이라 촬영이 있는 날이면 라이프 티셔츠를 입었다(아무도 몰랐겠지만). 뭐랄까, 라이프 매거진의 사진 기자의 정신으로 제품을 멋지게 찍어보자는 마음가짐이랄까. 티셔츠 한 장으로 시작으로 시작했던 나의 라이프 사랑은 지금 티셔츠 7장, 힙색 1개, 토트백 1개로 늘어났다. 제니가 인간 구찌가 된 것처럼, 나는 인간 라이프가 되고 가고 있는 것만 같다. 가격은 3만 9,000원이다.


3.body trimmer by Blak


나는 아무거나 잘사는 편이다. 필요 없어 보이는 것도 쉽게 장바구니에 넣는다. 왜냐하면, 그땐 필요할 줄 알았으니까. 현명한 소비는 힘들다. 어떻게 하면 현명한 소비자가 될 수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꼭 현명한 소비자가 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소비하는 원칙은 이거 하나다. 모험 없이는 신세계가 열리지 않는다. 난 현명한 소비보다는 새로운 취향을 알려주는 소비를 선호한다.


뭐든 처음 사는 제품은 날 긴장시킨다. 29CM를 통해 바디트리머라는 아이템을 처음으로 샀다. 다리털을 제모하는 제품이다. 에디터M은 왜 지금 그걸 샀냐고 묻더라. 내가 생각해도 여름이 다 지난 마당에 왜 산 걸까 의아하긴 하지만,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나는 이 제품을 크루 추천을 통해서 알게 됐다. 크루 추천이란 모바일 앱으로 접속했을 때 가장 오른쪽에 있는 탭인데, 29CM 직원들이 일기처럼 상품 소개를 해놓은 카테고리를 말한다.

[감성적인 카피로 나를 현혹한다]

쇼핑몰에 이런 잡지 같은 구성이 있다는 게 신기한데, 사실 29CM의 의미를 알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C는 커머스, M은 미디어를 뜻한다. 애초부터 29CM는 미디어 같은 성격과 쇼핑몰의 성격을 버무리며 탄생한 곳이라는 의미다. 아무튼 나는 29CM 직원에게 영업 당해 바디트리머를 샀고, 긴 바지를 입은 지금도 가끔 다리털을 다듬는다.

[내 다리 사진은 부끄러우니 이걸로 대체한다. 출처=29CM]

상품 소개에서 이런 말을 봤다. ‘다리털이 많은 건 싫지만, 아예 없는 것도 싫어요’ 그리고 내 다리를 봤다. 어? 정말 그런가? 정말 지저분한가? 블락의 바디트리머에는 Long, Short 두 가지 날이 달려있다. 길이를 유지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으면 Long, 길이까지 다듬고 싶으면 Short으로 다듬으면 된다. 사각거리며 제모하는 기분이 시원하다. 가격은 9,900원.


4.얼룩약

나는 꽤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조심스럽냐면 홍대 같은 번화가를 걸을 때는 뒤로 돌 일이 있으면, 제자리에서 휙 돌지 않고 U턴을 한다. 뒤에 걷는 사람과 부딪칠까 봐. 또, 지하철에서 내릴 땐 폰을 꼭 쥔다. 혹시 떨어뜨릴까 봐. 이렇게 조심성 많은 사람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 옷에 남는 음식물의 흔적.


면을 먹을 땐 아무리 조심스레 먹어도 어떻게든 국물이 튀고, 앞치마를 입어도 한정된 공간만 가려주니 완벽히 방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청춘세탁연구소의 얼룩약을 샀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얼룩이 묻은 부위에 4-5회 분사하고 2분 정도 기다린 뒤 물티슈로 슥슥 닦아주면 끝. 우선 H와 M의 흰옷에 묻은 짬뽕 국물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봤다. 둘 다 완벽하게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희미하게 지워지기는 했다. 밥을 먹은 뒤 시간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 점심 떡볶이 국물을 고의적으로 에코백에 묻혀 상품설명서에서 시키는 대로 테스트를 해봤다. 결과는 아쉬었다. 지워지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붉은 색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29CM에서는 매주 수요일, 수요입점회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새롭게 입점한 브랜드의 제품을 최소 29%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인데, 얼룩약도 그걸 통해 알게 되었다. 29CM이 다른 쇼핑몰과 다른 차이가 있다면 다양한 카테고리의 브랜드를 알게 해준다는 건데, 나도 수요입점회가 아니었다면 얼룩약이라는 걸 몰랐겠지. 그리고 사지도 않았겠지. 어쩌면 그게 나았을지도. 가격은 8,900원.


5.언파 차차 치약

나는 에디터M처럼 치약성애자가 아니라 치약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치약 브랜드에 관심이 있거나 성분에도 큰 관심이 없다. 언파 차차 치약을 산 건 순전히 디자인 때문이었다. 이미 여기까지 기사를 읽었으면 짐작했겠지만, 내가 물건을 사는 데에는 대단한 이유라는 게 없다. 그래서 맥시멀리스트가 된 것이다.


이번에 산 차차 치약도 디자인이 예뻐서 샀다. 치약을 디자인이 예뻐서 사다니, 우리 엄마가 들으면 등짝을 때리고도 남을 일이다. 저 블랙을 보라. 치약 디자인에 검은색으로 쓰다니! 그 실험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치약으로 양치를 하면 이가 하얗게 될 거예요!’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하얗디 하얀 색으로 디자인을 해야 할 텐데 검은색이라니 말이야.


괜히 멋있으려고 검은색을 쓴 건 아니다. 이 안에는 숯 성분이 들어가 있는데, 구치 제거에 좋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나 그건 내게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어떤 치약이든 구취는 제거가 될 테니까. 난 이 제품을 총 4개 구입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생각이다. 임팩트 있는 선물이 될 것 같다. 차차 치약 역시 수요입점회를 해서 알게 되었고 구매했다. 지금은 29CM라는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온 상태지만, 수요입점회는 꾸준히 살펴보려고 한다. 낯선 브랜드를 보면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 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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