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에디트 Sep 02. 2019

당신을 마작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안녕, 나는 어떻게 노는 데 일가견이 있는 객원필자 김은아다. 오늘은 나의 새로운 취미마작에 발을 들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언젠가 도박으로 길거리에 나앉을 별자리 확률 1위에 빛나는사수자리여서일까나는 내기를 좋아하는 편이다데이트를 경마장에서 하는 사람회사에서 간식 시간이 되면 일단 사다리를 그리는 사람그리고 지금도 디에디트의 에디터B 모종의 내기를 진행 중인 사람이 나다그러니 SNS 타임라인에서 ‘마작교실이라는  글자를 봤을  쉽게 지나칠  없었으리라는  짐작할  있겠지.

마작교실은  회차에 3시간씩  3번의 수업으로 구성돼 있다. “마작 그거 도박 아니야?” “도박을  주고 배운다고?”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안다주변에 마작교실에 등록했다는 이야기를  때마다 들었던 반응이니까무엇보다  역시 이러한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수업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마작의 이미지는 도박에 가까웠으니까.

[선생님은 서양인에게 한자로 된 패로 마작을 가르친 분이다. 전적으로 믿으셔도 된다]


수업은 언제라도 단속반이   같은 침침하고 음습한 반지하가 아니라 볕이  들어오고 사대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정동길 근처의 쾌적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편집자 주: 초상권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마작은 건전한 스포츠이지만, 왠지 하우스 느낌이 나는 건 모자이크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블록들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화투보다는 심플하고, 장기말보다는 화려한 느낌이랄까. 도르륵, 도르륵– 도톰한 블록을 조물딱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마작패에 마음을 뺏긴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수업은 전 세계 보드게임을 마스터했다는 선생님의 지도 아래 진행된다. 규칙만 알려주고 다짜고짜 판을 벌리는 것이 아니라, 마작의 역사와 게임에 깃든 문화에 대해 배워나간다.


마작(麻雀)은 청나라 말기, 그러니까 대략 1800년대 후반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유서 깊은 전통문화인가 했는데, 생각보다는 역사가 길지 않은 편이다. 중국에서는 어떤 독재자도 금지시키지 못할 정도로 사랑받은 ‘국민 오락’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바다를 건너 전파된건 1920년대부터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으로까지 진출했는데, 현지에서 저마다 다른 성격과 규칙으로 발전했다고.


이를테면 한국에서는 소수의 상류층을 위한 놀이문화로, 일본에서는 서민들의 게임으로 자리 잡은 식이다. 이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마작이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가 아르바이트하던 곳이 마작장이었지만, 드라마 <밀회>에서 서한대학과 예술재단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정보를 주고받는 곳 또한 마작을 치는 자리였으니까.


[영화 <색, 계> 중 한 장면]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마작이 등장하는 가장 치명적인 장면은 <아닐까 싶다탕웨이에 대한 은밀한 감정을 게임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 버리던 양조위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을 기억할 것이다.

[프라다가 만든 마작패. 마작꾼은 프라다를 굴린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 미국에서 마작 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  손들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하나의 럭셔리한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하는데럭셔리 브랜드들은 직접 마작패를 제작하거나 마작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고.

[Louis Vuitton Limited Edition Mahjong Tile Gold Set. 출처=Opulent]

루이비통이 금으로 제작한 마작패는 2 달러 정도면 구입이 가능하니 요즘 ‘사는 재미 시들했던 분이라면 화끈하게 질러보는 것은 어떨지아무튼 헐리우드 셀럽들도 마작 열풍에 가세하고 있는데최근에는 <섹스   시티> 사라 제시카 파커가 마작에  빠져서 토크쇼에서도 마작 영업(?) 한창이라고.

휴, 잠시 너무 화려한 세상 이야기를 했더니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다시 수수하고 정다운 마작 교실로 돌아가 보자. 마작의 규칙은 단순하다. 적어도 초심자에게는.


탁자에 둘러앉은 네 명이 각자 13개의 패를 갖는다. 돌아가면서 탁자에 쌓인 공동의 패(마장성이라고 부른다)에서 하나를 가져오고, 동시에 자신의 패 중 하나를 버린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 손안에 있는 13가지 패가 모두 규칙에 따라 배열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본 규칙은 다소 심플해 보이지만, 파고들자면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 마작의 룰. 두 번째 수업부터는 이 기본 규칙을 바탕으로 승리의 공식과 상대방을 이기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와 공격법을 배울 수 있다.

[5·5·5/5·6·7/7·8·9/9·9·9/7·7로 조합된 패. 첫 수업에 만들 수 있는 완벽한 패다.]

가만있자왠지 규칙이 익숙하다고맞다요즘 모바일 게임으로도 흥하고 있는 보드게임 ‘루미큐브 비슷한 부분이 많다루미큐브에서 연속하는 숫자  개가  쌍이 되는 것처럼 마작에서도 같은 모양의 연속하는 패가  쌍을 이루는 것이  번째 규칙이다처음에는 패의 모양도 낯설고변주되는 규칙도 많아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기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간 동안 패를 조물딱 거리다 보면 금세 익숙해지니까중국 게임인데 한자는 몰라도 괜찮냐고당연히필수다동서남북(東西南北) 숫자 1부터 9까지는 … 외워 오시길

마작을 치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마작은 플레이어 마음대로 되는 게임이 아니다. 조합을 완성하겠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패를 가져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원하는 패가 뒤집히기를 기다리는 것뿐. 그래서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나 보다. “마작은 미니멀리즘의 게임”이라고.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진 패를 ‘잘 버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작에서의 승(勝)은 내가 원하는 패를 다 가졌을 때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 없는 패가 하나도 없을 때라고.


이렇듯 마작은 머리로 계산해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많은 부분은 탁자에서 내가 어떤 패를 가져올 것인지에 달렸다. 팔 할이 운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이 ‘어쩔 수 없음’에 바로 마작의 매력이 있다. 승부에 목숨을 거는 도박사 같은 마음을 오히려 내려놓게 만들었다고 할까. 주어진 패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정 안되는 판은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아는, 일종의 마음 내려놓기 수련은 마작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손과 손이 맞닿는 이런 따수운 게임 같으니라고]

승부에 대한 집착 대신 얻은 것은 이런 것들이다. 볼록한 패를 손끝으로 만지는 느낌, 참새의 지저귐을 닮은 패 섞을 때의 경쾌한 소리,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 스마트폰의 매끈한 화면을 통해 모든 것을 컨트롤하던 일상에서와는 머리와 감성 모두에서 전혀 다른 부분을 사용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잠시 내 안의 디지털 버튼은 꺼두고 아날로그의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랄까.


게임 하나 소개하는데 미니멀리즘부터 마음 내려놓기까지, 별 걸 다 붙이면서 영업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눈치가 빠른 편이군. 마작을 치기 위해서는 꼭 네 명의 파티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작계에는 이런 명언(?)이 있지. “마작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알아? 사람 네 명 모으는 거야.” 그러니까 당신, 내 (마작)동료가 돼라!

기사제보 및 제휴 문의 / hello@the-edit.co.kr
매거진의 이전글 LP 입문자를 위한 "베스트 앨범10" 추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