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2020에서 본 자율주행차, 어디까지 왔을까?
방금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저는 문서 이름에 날짜를 붙여서 정리하곤 합니다. 제 손가락은 아직도 김유신의 말처럼 2019라는 숫자를 먼저 쳐놓고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백스페이스를 찾고 있습니다. 아직은 낯선 2020년. 그나마 해가 바뀌었다는 게 체감되는 현장이 바로 매년 1월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지요.
올해도 ‘어어어…’하는 사이에 정신을 차려보니 비행기 안이었고, 덜컥 걱정이 됐습니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전시회는 늘 볼거리에 대한 걱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어쨌든 십 단위 숫자가 바뀌는, 그것도 ‘먼 미래’로 대표되는 2020년이 아닙니까.
저는 결단코 잘 모르지만 주변의 많은 ‘삼촌’들이 오래전 2020을 배경으로 한 KBS의 <원더키디>를 이야기합니다. 세기말의 황폐한 분위기에서 우주개발과 기계문명 속에서 인류의 무력함과 고민이 담겨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네요. 다른 것보다 등장인물들이 타고 다니는 1인용 이동수단에 눈이 갑니다. 당시에는 2020년이 되면 전동 스쿠터처럼 하늘을 나는 개인용 이동 수단이 대중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빌리티 기술은 얼마나 와 있을까요? 이번 CES 2019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 있는 주제는 ‘이동’에 대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썼네요. 한 마디로 전기차, 자율주행, 에어택시 등 이미 오래 전부터 CES를 지배해 온 주제들은 2020년을 어떻게 맞이할까 하는 기대, 혹은 걱정이 태평양을 건너는 내내 머릿속을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 차량은 여전히 CES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차량이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은 아직도 놀라운 일이지요. 하지만 자율주행은 거의 10년 가까이 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언급됐던 주제고, 이제는 단순한 ‘신기함’을 넘어야 하는 때입니다. 이미 우리가 도로에서 만나는 차들 중 상당수가 사람 손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구글이 만든 웨이모를 비롯해 기업들 내부적으로는 지금 당장 도로를 달려도 이상하지 않은 자율주행 차량들이 개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CES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자동차 회사들이 자율주행 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기술의 생각처럼 완성 단계에 올라서지 않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주행이 그 자체로 당연한 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굉장히 역설처럼 들리지만 지금 닥친 현실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자율주행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이 단순한 실험실 이야기에서 진짜 도로로 뛰쳐나온 건 2016년 즈음입니다. 그러니까 CES를 찾은 관람객들이 직접 타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게 바로 이때였습니다. 누군가를 태울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이야기지요.
이때 기업들은 엄청나게 신이 나 있었습니다. 너무 빨리 가는 기술보다 관련 법과 규제, 보험 등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걱정도 나왔지요. 그리고 앞다투어 미래를 이야기했는데, 그게 그렇게 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측했던게 바로 2020년이었지요. 기업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2020~2022년이면 도로에 완전한 자율주행 차량이 다닐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지요. 우버의 무단횡단 보행자 추돌 사고 이후로 자율주행 차량의 안전에 대해서는 더 높은 기준이 제시됐습니다. 지금 수준으로도 자율주행차량은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고가 적지만 세상은 한 건의 사고에 커다란 공포를 느꼈고, 마치 ‘인공지능이 사람을 죽인다’는 분위기까지 만들어졌지요. 그리고 ‘그 만약의 하나’인 순간을 해소하는 마지막 한 걸음은 더 조심스럽게 마련입니다.
자연스레 상용화는 미뤄지는 듯합니다. 자율주행 기술을 갖고 있는 인텔의 모빌아이는 운전대를 완전히 내어줄 수 있는 시기를 2022년으로 언급했고,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예 그 시기를 단정 짓지 않았습니다. 기술 개발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는 않은 듯합니다. 다만 인공지능 기술, 또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해 세상의 불편한 시선은 생각 이상이었고, 기업들도 급하게 갈 이유가 없습니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자, 그럼 두 번째, ‘자율주행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해볼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동차 업체들을 비롯해 여러 회사들이 D데이로 잡은 시기는 2020~2022년입니다. 관련 기술 자체는 누가 앞서고 뒤처졌다고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상당 수준에 올랐습니다.
이제 신기한 수준,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왜’의 문제입니다. 자율주행차량이 왜 필요할까요? 그저 운전을 안 해도 된다는 점 때문에요? 운전이 더 안전해진다는 것 때문일까요? 이 이유들도 분명히 있지만 아직 절대적인 당위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게 바로 자율주행입니다. 신기하다는 이유로 적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노력이 들어간 기술일 뿐 아니라 굉장히 비싼 ‘옵션’이기도 합니다. 아마 현실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율주행을 빼고 저렴한 차량’을 더 원할지도 모릅니다.
(일본 기업 이야기라서 예민하지만 기술 관점에서 봐주세요) 토요타는 e팔렛이라는 자율주행차량 콘셉트를 3년 전 CES에서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거의 양산 단계의 차량이 공개됐습니다. 꽤 큼직한 미니버스 형태인데, 이 차량 안에는 온전히 네모반듯한 공간이 있습니다. ‘움직이는 방’인 셈입니다.
이 안에 둘만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이동식 음식점을 꾸릴 수도 있고, 작은 옷가게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예 의료장비를 실어 이동식 병원을 만들고, 1인용 무인 호텔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간에 바퀴가 붙은 셈입니다. 이런 콘셉트의 밑바탕에는 아주 당연하게 자율주행이 있습니다.
안전과 편안함을 전제로 자동차가 목적지까지 알아서 움직여준다면 그 안에 타 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차가 굴러가는 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공간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이 더 주목받는다는 것이지요.
현대자동차는 전시관에 우리 머릿속에 있는 전통적인 차량을 한 대도 전시하지 않았습니다. 토요타 e-팔렛을 빼닮은 자율주행 이동수단의 콘셉이 몇 개 전시됐을 뿐입니다. 주인공은 바로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드론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바라보는 미래는 단순히 빠르고 성능 좋은 자동차가 아니라 이동, 즉 모빌리티에 있다는 것일까요? 꽤나 과감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이 에어택시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우버와 손잡았습니다. 우버는 이미 여러가지 전기 수직이착륙기 설계를 해 왔지만 플랫폼 서비스의 특성상 직접 비행기를 생산, 운영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디자인을 계속해서 공개해 왔는데 그게 단순한 콘셉트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의아하기도 했는데 이번 현대차의 항공기를 보고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우버는 마치 구글의 안드로이드처럼 드론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설계를 준비해 두었다가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다면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기술과 노하우를 전해주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더 많은 드론 사업자들이 우버의 에어택시 서비스인 우버에어에 진입하게 되면 이용자도 늘어나고 요금도 안정화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버와 현대자동차의 제휴도 더 쉽게 많은 항공기를 만들어 대중화를 앞당기겠다는 것이죠. 우버는 2023년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고, 수년 내로 거리당 요금을 일반 택시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는 이번 현대자동차의 파트너십 같은 대중화와 보급에 대한 전략도 있는 듯합니다.
이제 이동은 기술의 가장 큰 혁신 분야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 가능성과 위험성, 커다란 변화에 따른 불투명성까지 다양한 걱정거리가 남아 있긴 하지만 기술들은 꾸준히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몇 년 뒤에는 스스로 움직이는 차와 에어 택시가 일상이 될 겁니다. 먼 미래의 일 같다고요? 당장 코앞의 이야기는 아닐지 몰라도 CES를 다녀올 때마다 그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건 확실히 피부로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