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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r 17. 2020

재택근무자의 하루

이건 집에서 일하려다 실패한 이야기

안녕, 인내심의 아이콘 에디터B다. 나는 집에 오래 있어도 좀이 쑤시지 않는다. 날이 좋으면 밖에 나가고 싶어서 방방 뛰지도 않는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아도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H가 24시간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도 일할 수 있냐는 미션을 줬을 때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일종의 자가격리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건 인간이 할 수 없는 미션이었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금세 우울감을 느끼고 마음이 답답해진다. 안 나가는 것과 못 나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재택근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참고로 이 24시간 자가격리 체험기에 등장하는 모든 물건은 ‘내돈내산’… 1%의 PPL도 포함되어있지 않다.


현재 시각 [10시 30분]
눈을 뜨니 출근이다

디에디트의 출근 시간은 10시 반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우왕 역시 잘나가는 스타트업!”이라는 반응을 하는데 그만큼 퇴근 시간도 늦기 때문에 근로시간은 같은 셈이다.


자가격리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사무실로 가지 않기 때문에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말리는 준비 과정과 이동 시간이 생략된다. 이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올라간다. 아침에 한 시간 반을 더 빈둥댈 수 있다는 걸 축복이 아니면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커피가 없다. 커피가 없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 않겠지만,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례상엔 홍동백서와 조율이시가 법칙이라면 워크스테이션에는 커피가 있어야 한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배달 앱을 쓰면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하루에 세네 잔씩 마시는데 배달 앱으로 주문하면 이거 너무 비효율적인데..? 그렇다고 한 번에 네 잔씩 시키면 커피가 맛이 없잖아.’


나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다. 얼음이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은 최악이기 때문에 배달 앱을 쓰지 않았다. 대신 맥심 모카골드 심플라떼를 마셨다.

심플라떼를 종종 마신다. 심플라떼는 기존의 커피믹스에서 설탕만 뺀 버전이다. 단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심심하다고 느끼겠지만 내 입맛에는 고소하다. 두 봉씩 뜯어서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부스터 모드를 켠 것 같다.

하지만 30분쯤 지났을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집 밖에서 소음이 너무 많이 들린다. 옆집에서는 갑자기 공사를 하질 않나, 이웃 간에 분쟁이 들리지 않나. 그래서 유튜브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장작이 타는 소리를 틀었다. 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현재 시각 [13시 00분]
점심은 알아서


몇 주 전에도 재택근무를 했었는데 그때는 만족스러웠다. 맛집을 갈 수 있어서 좋았다. 회사 근처에서는 웬만한 음식을 다 먹어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데, 아직 집 주변에는 발굴할 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는 자가격리는 달랐다. 일단 맛집에 갈 수가 없다. 배달 앱을 쓰면 될 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 심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음…입맛이 떨어져서 밥 생각이 없다. 집 안에 꽁꽁 묶인다는 게 심리적으로 이렇게 답답한 일인 줄 몰랐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제 잠자리에 누웠을 때만 해도 안동찜닭과 고추장 찜닭 중 무얼 시켜 먹을까 고민했지만 그 계획은 접었다. 대신 어제 마켓컬리에서 주문했던 콤부차를 마시기로 했다.

콤부차는 발효음료다. 녹차나 홍차에 설탕과 유익균을 넣고 발효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바이오틱스가 만들어져 소화도 돕고, 면역력도 높여 준다고 한다.


콤부차의 정확한 유래를 알 수는 없지만 중국의 시황제가 불로장생을 꿈꾸며 먹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런 유래들 중에는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많아서 쉽게 믿지는 못하겠다. 나는 할리우드의 셀럽들이 먹는 건강음료라는 소문을 듣고 구입하게 되었다. 불로장생은 필요 없다.

식초 향이 나는 에이드 같은 맛이다. 시큼한 식초의 향이 강하고 설탕을 넣었으니 단맛도 있다. 오리지널 맛 말고 애플베리나 진저레몬 같은 다른 맛도 있는데 그렇다고 시큼한 맛이 안 나는 건 아니다. 건강음료치고는 맛있는 편이고,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탄산까지 있으니 만족스럽다. 되게 맛있지는 않지만 중독성 있는 맛? 굳이 마켓컬리로 시키지 않아도 이마트24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이마트24에서 사 먹어봐야겠다.


현재 시각 [13시 30분]
원한다면 게임을 한다


식사를 음료로 대체한 덕분에 점심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하다 애플 아케이드를 켰다. 작년에 애플 아케이드가 출시하자마자 가입했었는데 한 달 무료 이용이 끝나자 바로 해지했었다. 그땐 재미있는 게임이 정말 없었으니까. 최근에 다시 들어가 보니 할 만한 아케이드 게임이 많이 생겼더라. 그중 최고는 이거다.

미니 모터웨이스(mini motorways)라는 게임이다. 화면만 보면 심시티 같이 건설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낭만적인 게임이 아니다.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달리 이 게임은 긴박감이 넘친다.


게임 방식은 단순하다. 작은 건물과 큰 건물을 ‘교통 체증’ 없도록 연결하면 되는 건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집은 계속 늘어나고 차는 막힐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 시작할 때는 도시도 선택할 수 있는데, 내가 선택했던 건 도쿄. 벚꽃이 만개한 것처럼 산과 들이 분홍으로 가득 찬 이미지가 펼쳐졌다.


애플 아케이드의 게임에는 저마다 어울리는 디바이스가 있다. 어떤 게임은 게임패드를 연결하는 게 좋은가 하면 어떤 게임은 맥북으로 플레이하는 게 나은 것도 있다. 미니 모터웨이스는 터치 방식으로 게임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터치로 도로를 건설하는 게 더 직관적이다. 오후 2시,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났다. 다시 업무로 복귀할 시간이다.


현재 시각 [16시 30분]
나는 고립되었다


다른 기사에서 이미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사는 방은 3평 남짓이라고. 원래는 5평인 줄 알았는데 최근에 재계약을 하면서 3평인 걸 알게 되었다.


좁긴 하지만 못 살만한 집은 아니다. 게다가 어렵게 구한 전세니까 월세 부담도 없다. 하지만 자가격리를 할 만한 집은 아니다. 이게 내 결론이다.

집에 있기를 권장하는 것과 집에 있도록 강제하는 것은 다르다. 정말 많이 다르다. 심리적으로 답답하다. 만약 집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대화라도 할 텐데, 내겐 카카오미니밖에 없어서 얘깃거리도 없다. “카카오야 오늘 날씨 뭐야?” 이거 말고는 할 말이 없다.


3주 전쯤이었다. 일본으로 입항하는 크루즈선에 갇힌 한국인을 인터뷰한 뉴스를 봤다. 그 한국인은 선실 밖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고 그 사람들이 막 돌아다니고 있으며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무서워했다. 선실 안에만 갇혀있으니 답답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얘기했다. 그 땐 그분이 느꼈을 만한 공포감이 와 닿지 않았는데, 스스로 갇혀보니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조금은 알 거 같다. 공포의 크기가 생각보다 컸을 것 같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시각 [19시 30분]
맥북을 닫으니 퇴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근무 효율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효율과 무관하게 퇴근 시간이 되었으니 퇴근을 할 수 있다. 퇴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5초. 맥북을 닫으면 바로 퇴근이다.


출근 시간이 짧은 건 좋았는데 퇴근 시간이 짧은 건 잘 모르겠더라.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이 구분되지 않으니 왠지 계속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퇴근을 해도 퇴근을 하지 않은 기분. 이럴 땐 뭐라도 먹어야 한다. 이게 내 결론이다.

1인 가구를 위한 배달 앱 B마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애피타이저로 먹을 꿀호떡, 메인 메뉴로 먹을 진짬뽕 그리고 제로 콜라를 주문했다.

B마트는 이날 처음 써봤는데, 주문을 넣고 30분 이내에 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더라. 배달 팁은 주문금액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대 2,500원부터 시작한다. 2만 원어치 넘게 주문하면 배달 팁이 없다. 나 같은 경우엔 집 근처에 큰 규모의 GS편의점이 있어서 자주 사용하진 않을 것 같지만, 편의점이 멀리 있다면 쓸만하지 않을까.

때마침 집에 쟁여둔 공화춘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저녁 메뉴는 공화춘과 진짬뽕을 섞은 ‘공짬뽕’으로 정했다.

짜파구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맛이 확실히 다르다. 공화춘과 진짬뽕은 둘 다 액상스프를 쓰기 때문에 소스의 맛이 더 걸쭉하게 느껴진다. 공화춘이 없다면 팔도짜장면을 사용해도 된다. 짜파구리의 뒤를 이은 메가 히트작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찾아보니 공화춘과 간짬뽕을 섞은 레시피가 떠돌더라. 역시 사람 생각은 다 비슷비슷하다.


현재 시각 [20시 40분]
유튜브엔 다 있더라


어렸을 때부터 TV를 많이 봤다. 특히 토크쇼나 리얼버라이어티 같은 예능을 많이 봤다. 요즘엔 TV를 잘 안 본다. 드라마도 예능도 잘 안 본다. 출연자는 비슷비슷하고, 포맷도 비슷비슷한 것 같다. 내 인생 최고의 예능은 <무한도전>에서 멈춘 것 같다. 이제는 거의 유튜브만 본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다가 유튜브가 토크 주제가 되면 대화가 활발해진다. 그때 알게 되는 게 두 가지 있다. 사람들은 모두 유튜브를 보는구나, 취향과 웃음 코드가 이렇게 다르구나. 이제는 혈액형이나 별자리보다는 유튜브 구독목록을 돌아보는 게 자아탐구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취향은 예능 프로그램 같은 유튜브다. 너무 날 것 같지 않고 너무 아마추어 같지 않은 그런 것들. 오늘 볼 영상으로 ‘민음사TV’, ‘금요힙합’ 그리고 ‘신비한 과학나라’를 자가 편성했다.

나는 힙합을 싫어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물어본다. “힙합을 왜 싫어하세요?” 그냥 취향이 아니라는 분도 있다. 그런 이유라면 그 취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힙합을 하는 애들이 싫다, 힙합의 가사가 싫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힙합도 있어요” 하며 더 소개해주고 싶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힙합을 듣기 시작했는데 가사가 좋아서였다. 그때 힙합은 사회를 비판하거나 자신의 꿈을 말하거나 문학적인 가사가 많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 래퍼가 많은 것 같다. 돈이 어쩌고, 여자가 어쩌고, 롤렉스가 어쩌고 하는 래퍼들은 나도 싫다. 그래서 그런 허세 넘치는 래퍼가 힙합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금요힙합’은 프로듀서나 래퍼를 초대해서 요즘 무슨 노래를 듣는지,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지 들어보는 음악토크 프로그램이다. 음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추천리스트에는 처음 듣지만 좋은 곡도 꽤 많다.

요즘은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무알콜 맥주를 한 병 꺼냈다. 라거보다는 바이젠을 좋아해서 마이셀 바이스를 꺼냈다. 많은 종류의 무알콜 맥주를 마셔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셀 바이스가 어느 정도로 훌륭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몇 병씩 사서 냉장고에 쌓아두고 싶을 정도로 내 취향이기는 했다. 마켓컬리에서 구매했다.

‘신비한 과학나라’는 tvN <금요일 금요일 밤에>의 한 코너다. 여섯 개의 짧은 예능을 한 프로그램 안에 넣어둔 옴니버스 예능으로 나영석 PD가 제작했다. ‘연이연이 장도연이 설날에는 방패연이’ 장도연과 함께 은지원, 송민호가 과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출연하고 김상욱 박사가 과학을 쉽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으로 나온다. 되게 어려운 걸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다들 한 번씩 해봤을 드레스 색깔 논쟁처럼 흥미 있는 이야깃거리를 들려준다.

‘민음사TV’는 요즘 계속 들어가게 되는 유튜브다.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인데 나는 많은 영상 중 오직 ‘말줄임표’라는 시리즈만 본다. 주된 내용은 책의 디자인이나, 인생 책은 무엇인지 등 결국 책에 대해 떠드는데 나는 콘텐츠가 아니라 두 편집자의 케미 때문에 본다.


어떤 네티즌이 두 사람을 보고 ‘이런 무해한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평을 남겼더라. 무해한 웃음, 무해한 매력, 무해한 말투, 두 사람에 꼭 어울리는 표현 같다. 두 사람을 보면서 유튜브에서의 맹활약이 연봉협상에 꼭 반영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유튜브가 슬슬 지겨워지자 마샬 헤드폰을 끼고 ‘금요힙합’에서 기리보이가 추천한 음악을 쭉 들었다. 스텔라 장의 ‘일산화탄소’, 양희은의 ‘당신 생각’이 특히 좋았다. 유튜브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의 댓글에는 ‘금요힙합’보고 오신 분?’이라고 적혀있었다. 좋아요를 눌렀다.


현재 시각 [01시 00분]
또 이렇게 하루가 가고

술은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무알콜이니까. 하지만 마음은 살짝 젖어있는 상태. 직장, 연애, 돈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타로카드는 어떤 답을 줄까 궁금해졌다. 질문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연애에 대한 질문을 했다. 해석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좋은 의미다. 컵이 10개가 있는데 10은 완성을 의미한다. 그 아래에 아이들은 손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아이들이 기뻐하는 건 좋은 의미다. 이건 타로카드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좋은 것처럼 보이지 않나?

하루의 마지막 코스는 왓챠플레이로 정했다. 최근에 올라온 드라마 <베리 잉글리시 스캔들>을 봤다. 국회의원의 치정극을 다룬 작품이고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갖춘 작품이지만 20분쯤 보다가 졸려서 잠자리에 누웠다.


누운 채 생각했다. 빨리 코로나19가 사라지면 좋겠다고. 영화가 제때 개봉하면 좋겠고, 모임 약속이 연기되지 않으면 좋겠고, 길거리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고. 날씨는 따뜻한데 길거리 풍경은 아직도 겨울인 것처럼 우울하기만 하다. 봄이 왔으나 봄이 온 것 같지 않다. 이걸 사자성어로 춘래불사춘이라고 하던가. 최예근의 춘래불사춘을 들으며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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