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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May 29. 2020

미국 럭셔리 의자의 아이콘, 임스 부부의 디자인 비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스타 디자이너 임스 부부에 관하여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저번 ‘내 맘대로 의자 FLEX ①’을 3만 명 넘게 읽었더라고. 갖고 싶은 거 갖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운 건데 읽어줘서 고마워. 글에 대한 피드백을 취합해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정말 시간이 많이 갔더라”, “자세한 설명에 놀라고 글 양에 놀랐다” 등등 분량에 대한 간증이 대부분이더라. 하긴 모바일 시대에 1만 2500자 쓴 건 내가 봐도 너무했지. 네, 그렇습니다. 첫 번째 글을 읽은 분은 무려 1만 2500자를 소화한 겁니다. 하하하하.


지난 의자 FLEX 기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왔던 유럽의 전설적인 의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욕망을 투영했다면 이번에는 전쟁 이후 미국에서 승천한 스타 디자이너의 디자인 비법을 소개하려 해.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굉장한 사건이었어.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혁신이 일어났지. 세계 최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으로 각 영역의 중심축이 이동하는 상황이 펼쳐졌어. 특히 가구의 경우, 기술의 진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재료와 형태의 작업이 출현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미국의 디자인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황금기를 만끽했어. 그런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가 바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스타 디자이너로 꼽히는 찰스 임스(Charles Eames)와 레이 임스(Ray Eames), 즉 임스 부부야.

[왼쪽부터 레이 임스, 찰스 임스 부부 © Eames Office, LLC]

근데 임스 부부에게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막강한 디자인 비법이 있었어. 그것도 두 개나. 그래서 두 번의 글로 나눠서 비법 하나씩 차근차근 씹어보려고. 임스 부부는 엄청나게 넓은 영역에서 활동한 창작자야. 가구뿐 아니라 전시, 광고, 영상, 그래픽 디자인, 건축 등 각종 창의 분야에서 동서남북 활약했거든. 그러면서 부와 명예, 행복을 동시에 성취한 굉장히 드문 경우이기도 해. 부럽다…


워낙 저명한 인물들이라 저인망으로 훑으면 책 한 권으로는 턱 없이 모자라니까 혹 내가 다루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많이 쓰면 12,500자가 넘거든…자, 그럼 20세기 중반 미국 라이프스타일 지형을 바꾸며 ‘20세기 최고의 디자이너’로 떠오른 임스 부부의 디자인 비법, 그 첫 번째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도록 할까.


“나무 의자를 자유케하리라, 성형합판"


임스 부부는 일률적인 면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창작자지만, 짧게 요약해보면 ‘저렴하고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실험을 지속하면서 그 활용법을 탐구했고, 독자적으로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크게 비싸지 않고도 기능적이면서 심미적으로 뛰어난 물건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했던 디자이너’라고 생각해.


그런 관점에서 첫 번째로 주목해야만 하는 부분이 바로 ‘성형합판(Molded Plywood)’이야. 그 원류를 따지자면 핀란드의 알바 알토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성형합판은 임스 부부에 이르러 급격하게 진화했고 이후 유럽의 다양한 디자이너에게 충격을 안기며 20세기 중반 가구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어. 즉 성형합판은 임스 부부의 전매특허라고 봐도 무방해.


임스 부부는 캠퍼스 커플이야. 학교에 오기 전에 남편 찰스는 건축을 전공하다 자퇴했고, 부인 임스는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지. 그래서 그들의 작업을 보면 구조적인 면은 찰스가 많이 담당하고, 심미적인 부분은 임스가 많이 커버하면서 서로에게 모자란 부분은 메워주고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엄청난 협동심을 발휘했어. 그런 그들의 눈길을 끈 게 바로 성형합판이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해. 합판이라는 저렴한 재료로 기존의 목제 가구로 표현할 수 없는 형태를 구현할 수 있었거든. 그것도 대량생산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말야.

[성형합판 기법을 이용한 임스 부부의 조형 실험 © Eames Office, LLC]

1930년 대부터 성형합판을 실험하던 임스 부부에게 2차 세계대전은 일종의 기회가 됐어. 미국 해군을 위해서 군인용 부목을 만들어 10만 개 넘게 납품했거든. 환자의 다리나 팔에 대는 부목은 보통 직선에 평면적이라 불편할 수 밖에 없어. 근데 임스 부부는 합판을 둥그렇게 굽혀 입체적으로 신체를 지지할 수 있는 형태를 고안한 거야. 더불어 접착력 높은 수지로 합판의 강도를 높이고, 다양한 곡면으로 가공하는 실험을 한 덕분에, 종전 이듬해인 1946년 그들은 첫 성공작인 성형합판 의자 시리즈를 발표할 수 있었어.

[성형합판 기법을 통해 입체적으로 만든 군용 부목 © Brooklyn Museum]


[임스 부부의 부목을 대는 모습 © Eames Office, LLC]

여기서 잠깐만. 임스 부부의 성형합판 의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가구 회사 중 하나인 허먼 밀러(Herman Miller)를 통해 출시했어. 우리에게는 에어론 의자로 잘 알려진 곳이야. 초록창 기업에서 전 직원에게 나눠준다는 200만 원 상당의 초고가 사무용 의자지. 비싼 이유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서 척추 건강에도 좋고 엄청나게 편해서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나. 암튼 이 허먼 밀러가 미국에서 활동한 임스 부부의 가구 작업 저작권을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 동시에 대서양 건너 스위스에 있는 가구 회사, 비트라(Vitra)도 허먼 밀러랑 동일하게 임스 부부 작업의 저작권을 공유하고 있어.

이게 무슨 상도덕 씹어먹은 상황인가 할 텐데 허먼 밀러가 자초한 일이야. 임스 부부의 가구를 만들어 유통할 수 있는 권리 중 미국 지역은 허먼 밀러가 계속 보유하고, 유럽과 중동 지역은 비트라에게 팔았거든. 그래서 각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동일한 제품이 나와있는데 분류법은 완전히 달라. 지금 소개할 의자만 해도, 허먼 밀러는 그냥 ‘임스 성형합판 의자들(Eames Molded Plywood Chairs)’이라고 퉁쳐서 말하는데, 비트라는 모델 별로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분류하고 있거든. 여기에서는 비트라의 정리법으로 이야기를 끌어가 볼게.


① LCW 시리즈

[1945년 발표한 히트작 LCW의 귀엽고 늠름한 모습 © Herman Miller]
[성형합판 의자 구조 스케치 © Vitra]

LCW, LCM, DCW, DCM. 이게 무슨 이해하기 쉬운 이름이냐 의문이 들지? 처음 들으면 암호 같다는 생각이 들거야. 나도 늘 헷갈려. 하지만 보는 법을 익히면 엄청나게 직관적인 이름이란 걸 이해할 거야. 왜냐하면 용도와 다리 재질에 따라서 붙인 이름의 이니셜만 딴 결과거든. 예컨대 L은 라운지(Lounge), D는 다이닝(Dining)의 준말이야. C는 의자(Chair)를 말하고, W는 나무(Wood), M은 금속(Metal)이지. 이제 다시 이름을 풀어보면 LCW, LCM은 라운지용 의자인데 다리가 나무인 것과 금속인 것을 뜻하고 DCW, DCM은 주방용 의자인데 다리 재료가 나무, 금속인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이런 직관적인 이름도 드물어.

[LCW ©Vitra]
[DCM © Vitra]
[LCM ©Herman Miller]

개인적으로 LCW(Lounge Chair Wood)를 갖고 싶은데 사실 보다시피 기본적인 DNA는 동일해서 큰 차이는 없어. 그래도 성형합판만으로 만든 의자 중 L형이 제일 예쁘고 비율이 좋더라. 내가 요 작업들을 애정하는 이유는 간단해.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무나 혁신적이야. 자, 어떤 면에서?


합판을 사용해 아름다움과 기능성을 모두 잡았거든. 그 때만 하더라도 목재 의자라고 하면 나무를 깎아서 요소 별로 조립해야 했어. 그런데 합판을 곡면으로 가공하는 게 자유자재로 가능해지자 마치 조각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었지.

[DCW ©Vitra]

보면 넓은 시트가 마치 포테이토칩처럼 자유롭게 굴곡지잖아. 이건 전에 결코 가능하지 않은 거였어. 물론 하려고 했으면 했겠지. 장인이 그 정도 크기의 목재를 구해서 정교하게 곡선을 잡을 수 있다면 말야. 근데 그렇게 해서 1년에 몇 개 만들겠냐고. 게다가 가격은 어찌 책정하고…

[성형합판 의자들이 배치된 임스 하우스 내부 모습 © Herman Miller]

임스 부부의 성형합판 의자가 시장에 충격을 준 게 바로 이런 이유야. 그때나 지금이나 중심 재료인 합판은 비싸지 않아. 이걸 기계의 힘으로 굽혀서 만든다? 한마디로 산업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거지. 그럼 가격도 저렴해지고 생산능력도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시트와 등받이는 합판으로 연결했는데 그 이음새에 고무를 사용해서 물리적인 충격이 왔을 때 완충 효과를 꾀했어. 즉 의자가 부러지지 않고 유연한 뼈대를 갖게 됐다는 말이야.


그래서 그럴까. 발표 당시 한 비평가는 ‘세기의 의자가 탄생했다’고 극찬을 보냈어. 성형합판이 만들어 낸 독특한 곡면 디자인에 고무를 활용해 기능성까지 높인 이 의자들은  미국 중산층에게 생활 속 멋진 경험을 선사한거야. 한 집 건너 하나씩 가지는 ‘국민 의자’로 등극하는 건 시간문제였지. 무엇보다 지금 봐도 과감한 곡선과 아래로 축 처진 무게중심이 도발하는 디자인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와!


②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

[1956년에 만든 럭셔리 체어의 최강자,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 ©Herman Miller]

다들 읽느라 수고들이 많아요. 럭셔리라는 단어로 임스 부부를 설명하는 건 적당하기도 하고 동시에 난감하기도 한 일이야. 보통 럭셔리의 사전적 의미가 사치품, 비싼 것을 의미잖아. 그런데 임스 부부의 작업은 결코 초고가를 지향하지 않거든. 물론 럭셔리를 조금 더 넓게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 장인의 노력과 좋은 재료가 만난 정성의 산물로 넓어지며 가격으로 산정할 수 없는 여러 물건들과 움직임까지 포함한다면 임스 부부의 디자인 작업과 철학도 충분히 럭셔리하다고 말할 수 있어.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이 미국에서 럭셔리 의자 리스트를 작성할때 꼭 빠지지 않는게 바로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Eames Lounge Chair and Ottoman)일 거야. 이 의자야말로 임스 부부의 성형합판 노하우가 응집된 걸작이거든.


의자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이 의자만큼은 굉장히 눈에 익을걸. 외국 영화나 드라마의 회장님 혹은 높은 연봉을 받는 능력 있는 비즈니스맨의 사무실에는 어김없이 이 의자가 등장하곤 해. 임스 부부의 디자인은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지만 이번 건 좀 달라. 애초에 태생부터 한 남성을 위해 만들어졌어. 임스 부부는 디자인 셀러브리티답게 친구들도 엄청 많았는데, 그중 한 명이 유명한 영화감독인 빌리 와일더(Billy Wilder)야.

[불세출의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 ©LIFE]

빌리 와일더는 영화광 가슴을 설레게 할 이름이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 겸 명각본가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는 8번, 각본상 후보에는 12번 올랐어.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마디로 기가 차. 할리우드 역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선셋 대로>를 비롯해, 오드리 헵번과 험프리 보가트가 나온 <사브리나>를 만들었고, <7년 만의 외출>에서 주인공 마릴린 먼로가 환풍구 바람에 펄럭거리는 드레스를 잡는 장면은 사람들 머리에 영원히 각인됐지. 미국 영화연구소에서 최고의 코미디 영화로 뽑은 <뜨거운 것이 좋아>도 이 사람 작품이야. 남들은 한 편만 만들어도 칭송받는 영화들을 쏟아낸 할리우드 레전드지. 근데 천재는 다들 독특한 건지 이 감독님은 하도 정신이 산만하고 집중을 못 하던 사람이었다나. 그래서 보다 못한 임스 부부가 진득하니 앉아서 쉬라고 우정을 담아 만든 편안한 의자가 바로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이라고 해.

[마릴린 먼로의 전설적인 화이트 드레스 장면 ©Sunset Boulevard/CORBIS]

근데 아까부터 이름에 ‘&오토만’은 왜 계속 붙는 걸까. 오토만은 앉는 용도가 아니라 다리를 걸치는 보조 의자를 뜻해. 라운지 의자의 경우 몸을 기대고 평온하게 쉴라 치면 각도가 뒤로 꺾여서 다리가 공중으로 붕 뜨는 경우가 생겨.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발을 올릴 수 있는 오토만을 함께 세트로 껴 넣는 거지. 특히 임스 라운지 의자에서 오토만과 함께 있는 풍경은 ‘맹렬히 일한 당신, 이제는 맘껏 쉬어라’처럼 남성이 발을 올리고 휴식을 취하는 풍요로운 순간을 암시하기에 오토만까지 함께 엮어서 다루는 게 보통이야.

[오토만의 정체는 바로… ©Herman Miller]
[세 덩어리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성형합판 의자의 최고봉 ©Herman Miller]

그럼 우리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은 무엇이 특별한 걸까. 일단 시각적으로 보면 첫인상이 무척 강렬해. 임스 부부의 디자인 중 유독 남성적인 느낌을 온전히 풍기고 장대한 맛이 있어. 안쪽으로 자연스럽게 합판을 휘어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느낌을 고조시키는 섬세함과 노련함은 임스 부부가 꾸준히 쌓은 성형합판 기술을 집약한 산물이지. 실제 디자인은 1940년대 완성했지만 제품으로 출시된 건 1956년이거든.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분해한 지도 ©Vitra]
[성형합판이 만드는 디테일의 아름다움 좀 봐… ©Vitra]

결이 아주 아름답고 색이 짙은 합판으로 곡면 구조를 짜고  여기에 검은색 가죽 커버의 쿠션을 얹었는데. 마치 건축물이 연달아 이어진 것처럼 머리, 상체, 엉덩이를 받치는 세 개의 덩어리가 조직적으로 연결돼있어. 각 신체 부분을 담당하는 받침대는 고무와 금속으로 만든 완충장치로 연결되어 사용자의 몸과 포즈, 움직임에 적절히 대처하는 거지.

[©Vitra]

세상에는 수많은 라운지 의자가 존재하고, 각각의 특성과 고유의 매력이 있지. 하지만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만큼 고전적이면서 동시에 현대적이고. 또 한 장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경우는 결코 흔치 않을 거야.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성공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암시하는 역할을 맡는 건 특히나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다는 의미니까. 남자의 야망, 그 이면에 있는 고뇌가 서로 충돌할 때 안식을 선사하는 일상의 공간이랄까. 임스 라운지 의자&오토만은 그렇게 가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며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어.

[안녕! 성형합판 의자 투어는 어땠어…? ©Eames Office, LLC]

자, 지금까지 임스 부부가 성형합판으로 만든 의자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어때. 그냥 볼 때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신기한 점이 참 많지? 이처럼 의자 하나에도 수많은 기술과 디자인, 노력이 숨어있어. 무엇보다 임스 부부의 성형합판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어. 당시 가구 디자인에서 늘 변방으로 치부되던 미국 입장에선 엄청난 사건이었지. 20세기 중반 이후 성형합판은 의자 디자인의 흐름을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했어. 임스 부부의 존재 가치가 더욱 빛나고, 미국의 국보로 소중히 사랑받는 것도 이해가는 점이야. 그럼 성형합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는 임스 부부의 두 번째 디자인 비법에 대해 다뤄볼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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