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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디트 Jun 01. 2020

유리섬유 의자는 왜 만들어졌을까?

안녕. 디자인·건축 글을 쓰는 전종현이야.  지난 확실히 ‘내 맘대로 의자 FLEX’ 편 보단 양이 적어서 읽기 수월했을 걸. 하하하하하하하. 나도 리서치를 계속 하면서 느끼는 건데 임스 부부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력, 그리고 끈기와 상상력은 임스 부부가 창작자를 넘어 대중매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셀러브리티로 미국인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은 이유지. 이들이 만든 다양한 가구는 미국 중산층의 일상 공간에 스며들어 ‘임스 룩(Eames Look)’이란 용어까지 남겼거든. 개인적으로 임스 부부만큼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당대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한 디자이너는 유례가 없다고 생각해.

[여행자여, 2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Eames Office, LLC]

근데 이런 성공은 절대 날로 먹은 게 아니야. 그들의 왕성한 상상력과 탐구력, 호기심과 생산성이 만든 결과지. 일주일 중 6-7일은 작업을 했는데, 하루 평균 13시간 정도를 창작 활동에 쏟아 부었다고 해.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데, 이 부부를 보면 그냥 할 말이 없어져. 게다가 당시만 해도 부부가 활동하면 남편 이름만 알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임스 부부는 그런 면에서도 공개적으로 서로를 동등한 창작자로 인정하고 격려했어. 정말 최고의 파트너십을 발휘했던 거지. 그래서 그런지 임스 부부의 사진을 보기만 해도 해맑고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다이렉트로 마음을 저격하는 것 같아. 자, 그럼 이제 임스 부부의 두 번째 디자인 비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

[이제 출발해 볼까~~ ©Eames Office, LLC]

의자 상판에 올인원을 허하라, 유리섬유


자, 임스 부부 다시 시작이야. 근데 놀랍지 않아? 저번 성형합판만 해도 엄청난데 또 다른 비법이 있다니. 바로 그 정체는 ‘유리섬유(Fiberglass)’랍니다. 룰루. 유리섬유는 유리를 미세한 섬유질로 뽑은 후 플라스틱을 섞어 만든 유리 강화 섬유 플라스틱이야.

[상판을 찍어내는 몰드 © Eames Office, LLC]

원하는 형태를 구현하는 몰드(틀)를 준비하고 유리섬유를 부은 후 기계로 강하게 찍어내면 제품을 대량생산할 수 있어. 유리의 특성 덕분에 열에 강하고 견고하면서도 동시에 플라스틱의 가벼움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각광받던 신소재였어. 부지런하고 모험심 강한 임스 부부는 성형합판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유리섬유로 의자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지.

[대량생산된 유리섬유 의자 풍경. 어찌 보면 산업시대의 장관이야. © Eames Office, LLC]

①DAR 시리즈

[임스 부부의 유리성형 의자를 대표하는 DAR ©Vitra]

1950년 발표한 유리성형 의자, DAR 시리즈는 임스 부부의 두 번째 초히트작이야. 이것 역시 허먼 밀러와 비트라가 함께 권리를 공유하고 있어. 근데 아니나 다를까 허먼 밀러는 간단하게 ‘쉘 의자(Shell Chair)’라고 퉁치는 데 반해 비트라는 앞서 나온 이니셜 법칙에 따라 하나하나 다루고 있거든. 이번에도 비트라의 분류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유리섬유 의자 시리즈의 가족 사진이랄까나… ©Vitra]

유리섬유 의자 시리즈를 이해하려면 DAR부터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가장 기본형이거든. DAR은 ‘Dining Height Armchair Rod Base’의 약자야. 다이닝용 높이의 암체어인데 다리가 로드 베이스 형태네,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어. 그런데 갖고 싶은 의자 치고는 너무 흔한 느낌이지 않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의자랑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잖아. 바로 그게 포인트야. 우리에게 흔하게 다가오는 이 의자의 나이는 70살이야. 즉, 다시 말하면 이런 형태 의자의 원조격인 거지.

[DAR ©Vitra]

그럼 ‘이런 형태’란 대체 어떤 걸까? 의자엔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있어. 시트, 등받이, 다리, 그리고 팔걸이의 유무 정도? 그런 관점에서 DAR을 보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왜냐면 네 가지 요소가 아니라 두 개에 불과하거든. 시트, 등받이, 팔걸이가 하나로 합쳐진 유리섬유 상판, 그리고 다리 부분.

[임스 부부의 유리섬유 의자 스케치 ©Eames Office, LLC]

유리섬유로 만든 상판은 앞서 설명한 몰드를 이용해 한 번에 만든 거야. 이렇게 이음새 없이 굴곡만으로 시트, 등받이, 팔걸이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충족하면서도 그 형상은 조각처럼 입체적이고 아름다워. 고급지게 표현하면, ‘유기적이고 총체적으로 연결된 곡면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 점점 색감이 다채로워지는 것도 포인트야©Herman Miller]
[이제 야외 가족 사진까지…. ©Vitra]

이 의자가 가진 의미는  이거야. 대량 생산이 될 수 있도록 상판의 기능을 하나의 형태에 집약한 첫 번째 성공 사례거든. 성형합판이 나무에 형태의 유연성과 자유를 선물했다면, 유리섬유는 의자 상판의 올인원(All-in-One)을 가능케 했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형태의 평범한 의자지만 실은 뿌리 깊은 성골로 다시 보이는 순간이지.

[유리섬유 의자는 고유의 텍스쳐가 매력 포인트지. ©Vitra]

근데 유리섬유 의자에는 약간 복잡한 사연이 있어. 1980년대부터 환경 문제가 세계적으로 대두되면서 유리섬유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됐거든. 그래서 1990년 초반부터는 제작을 중단했고 대신 재활용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플라스틱 버전으로 출시하게 됐지. 그렇다고 유리섬유 제품이 완전히 망했느냐, 또 그건 아니야.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친환경 생산 방식이 검증된 유리섬유 제품으로 재생산되고 있거든. 그래서 허먼 밀러와 비트라 웹사이트에 가보면 유리섬유 버전과 플라스틱 버전을 함께 다루고 있어.

[DSW. 에펠 의자의 전형이야. ©Vitra]

아, 맞다. 잠시만. DAR의자 가족 중에 DSW라는 것도 있거든. 나는 ‘다이닝 공간에서 쓰는 사이드용 의자인데 다리가 목재다’ 정도로 직역되는데, 갑자기 얘를 왜 호출했냐면 우리에게 유리섬유 의자가 너무나도 익숙해 보이는 직접적인 까닭이라서 그래. 이 의자의 별명이 바로 ‘에펠 의자’거든.

[플라스틱 DSW는 공간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는 마력을 지녔어. ©Vitra]

정확히 말하자면 ‘rod base’라는 다리 형식을 쓴 건 모두 에펠 의자에 들어갈 거야. 금속 지지대를 이리저리 엇갈리게 배치해 무게를 버티게 하는 형상이 딱 에펠탑이니까. 하지만 목재와 금속을 함께 사용한 DSW이 에펠 의자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어. 왜냐면 엄청 팔렸으니까. 특히나 플라스틱 생산으로 바뀐 후 세계 곳곳에서 출몰한 짝퉁들이 우리 일상을 가득 채우면서 상판 색깔만 바꾸면 집, 사무실, 카페, 공공공간 등등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마법 의자가 됐어. 고백하건대 나도 에펠 의자 짝퉁을 산 적이 있어. 단단해 보이면서 예쁘고 구조도 간단하고 가격까지 저렴해서 안 살 수가 없더라고. 암튼 이 슈퍼 베스트 셀러 에펠 의자의 원조가 바로  DAR에서 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RAR ©Vitra]

몇 년 전에 어떤 디자이너 작업실에 갔는데 1950년대에 나온 빈티지 RAR이 있더라? 군데군데 변색이 된 모습을 보니 세월이 느껴졌어. 분명 공장에서 만든 대량생산제품인데도 나이가 벌써 60대 할아버지 뻘이니까 나도 모르게 행동도 조심하게 되고. RAR에 수줍게 앉아서 흔들흔들 해보는데 내가 가구 역사의 가운데 자리 잡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두근거리더라. 이런 기분 한 번 경험하면 그때부터 주변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걸!


②라 셰즈

[디자인은 1948년에 했지만 생산은 실제 1996년에 가능해진 La Chaise ©Vitra]

임스 부부가 유리섬유 의자로 히트를 치기까지 많은 실험을 거쳤다는 건 다들 짐작하겠지? 모든 게 다 가능한 슈퍼맨, 원더우먼 같은 임스 부부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어. 바로 지금 소개하는 라 셰즈야.

[라 셰즈의 프로토 타입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임스 부부의 모습 © Eames Office, LLC]

라 셰즈의 디자인은 1948년에 끝냈는데 프로토 타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생을 엄청 많았어. 부피가 크다보니 원래 한 판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판을 두 부분으로 나눠서 제작한 후 붙여야 했거든. 딱 봐도 비효율적이고 온전하게 제품화하는 게 힘든 게 눈에 보이잖아. 결국 임스 부부가 살아있을 땐 프로토 타입 하나만 존재했지. 그런데 1996년 비트라가 라 셰즈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한거야.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임스 부부의 심미안을 잘 보여주는 독특한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지. 잊혀진 유산을 부활시키다니 비트라의 영리함이란! 그런데 말야, 어쩌면 지금 소개하는 라 셰즈는 임스 부부의 디자인 철학에 위배되는 ‘작품’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어. 그들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아름답고 실용적인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거든. 그에 비해 라 셰즈는 하나의 조각상처럼 럭셔리함이 넘치지.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어.

[Floating Figure, Gaston Lachaise, 1927 © Wikipedia]

라 셰즈는 조각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거든. 지금 보이는 게 바로 프랑스계 조각가인 가스통 라셰즈(Gaston Lachaise)가 1927년에 제작한 ‘플로팅 피겨(Floating Figure)’라는 조각상이야.  풍성한 몸매의 여인이 신기한 자세로 공중부양하고 있지. 임스 부부가 만약 조각상의 여자가 취한 포즈와 비슷한 자세로 의자에 기댄다면 어떤 형태의 의자가 필요할까 상상하며 디자인을 했다고 해. 그러니까 유려하고 풍성한 곡선과 유기적인 연결성이 돋보일 수밖에! 게다가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 강조된 상태에서 그 색깔까지 하얀색이라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전해져오는 걸지도.

[Le Rêve, Pablo Picasso, 1932 © Succession Picasso/ DACS London]

나는 라 셰즈를 보면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이 떠오르더라. 1932년 작품인 ‘꿈(Le Rêve)’이야. 눈을 감고 명상하듯 고개를 젖힌 여인의 모습은 보면, 가스통의 조각상이 실제 라 셰즈에 누우면 딱 저런 표정으로 바뀌지 않을까 상상해 보는 거지. 이하 불문, 라 셰즈는 의자 역할도 하는 아트 워크 같아. 그만큼 특별하고 아름답게 다가와.


[유리섬유 의자 투어는 잘 했니…? © Eames Office, LLC]

지금까지 읽느라 너무나도 고생했어. 임스 부부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인터넷, 책, 다큐멘터리 등 자료가 무한하니까 용기만 내면 될 거야.


마지막 굿바이 하는 김에 내가 꼭 소개하고 싶은 영상이 있어. 바로 임스 부부가 만든 수많은 단편 영상 중 하나인 <Powers of Ten>이야. 1977년 발표된 이래 과학에 근거해 호기심과 상상력 등 창조성에 관련된 영감을 듬뿍 주는 대표적인 ‘필청 영상’으로 꼽히고 있지. 이번 글에서는 임스 부부가 만든 몇 가지 의자만 소개했지만 총체적 크리에이터로서 평생을 살아온 그들의 열정을 공유하면 좋겠어. 결국 좋은 물건은 창의력의 산물이니까. 그럼 다음에 또 봐!


<1편 보러 가기>


첫째가 디테일입니다. 디테일이 제품을 탄생시키죠.
서로가 모두 연결, 연결, 연결되어 있어요.
그 종착점에는 디테일이 제품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찰스 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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