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부터 태국, 샌프란시스코, 더블린까지
안녕, 말 많은 평론가 차우진이야. 얼마 전에 오랜 친구들을 만났어. 다들 여행을 좋아하는데 요즘엔 아무 데도 못 가니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홍대 전철역 앞의 ‘세계 과자 백화점’에 가서 대만 과자랑 일본 과자를 좀 사다 줬어.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이야.
공항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해. 비행기 탈 일이 없어도 굳이 인천 공항까지 달려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곤 했어. 비행기 타는 것도 너무 좋아하지. 내가 소싯적에는 육군항공대에서 헬기도 타고… (아, 쏘리) 지금은 시간 많고 지갑이 저렴한 프리랜서 처지인 데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바다 건너는 일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 되어버려서 조금 우울해. 언제 다시 비행기를, 아니 국제선을 탈 수 있을까. 그래서 준비했어. 공항에 가봤자 갈데없는 시대의 음악들. 일단 영화 장면을 좀 보고 시작하자.
유튜브에서 ‘AIRPORT SCENE’을 검색하면 온갖 영화들의 공항 장면들이 나와. 그걸 틀어놓고 멍 때리는 요즘이야. 그 중 최고의 공항 씬은 조지 클루니와 안나 켄드릭이 나온 <인 디 에어>의 이 장면이지. “편견이 뭐가 나쁜데?”라는 명대사를 남긴 작품이고, 나는 힘들고 지칠 때면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보곤 했어. 그런데 사실 ‘공항에 대한 음악’이 실제로 있어.
‘앰비언트 뮤직’이라는 장르를 만든 장본인이자 록시 뮤직으로 80년대의 팝을 정의하다시피 한 브라이언 이노가 만들었지. U2, 토킹헤즈, 데이빗 보위, 콜드플레이의 프로듀서였고 무엇보다 윈도우95와 윈도우98의 시작음, 그리고 XP의 인스톨 음악을 만든 어르신이셔.
그런 그가 1978년에 발표한 6번째 정규 앨범 <Ambient 1: Music for Airports>는 쾰른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경험과 음악에 대한 철학이 반영된 사운드야. 긴장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공항과 안락하고 영적인 음악의 충돌이 매우 흥미로운데, 실제로 1980년엔 뉴욕의 라구아디아 공항에서 이 음악을 공식적으로 틀기도 했어. 음반 발매 40주년이던 2018년에는 런던 공항을 비롯한 다수의 공항에서 무한반복되기도 했지. 매우 안락하고 차근한 음악이야.
돌아오면 사진이 남겠지만, 여행지에서는 정작 냄새에 예민해지더라고. 냄새뿐 아니라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 자체가 다르지. 그래서 비행기 근처에도 못 가는 요즘엔 그 감각이 너무나 그리워. 위도와 경도가 달라진 곳에서 경험하는 풍경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면 이런 뮤직비디오가 약간의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어.
포크 밴드 루미니어스의 컨셉트 앨범이야. 클레오파트라라는 인물의 삶을 여러 단계로 나누고, 각각에 테마곡을 만들었어. 그리고 다양한 스토리가 담긴 뮤직비디오를 여러 개 제작했는데, 동일한 인물을 모두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기쁨과 슬픔, 상실과 고독이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는 구조가 너무 좋아. 특히 이 영상에서는 자동차가 매우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걸 보고 있으면 별 생각 없이 미국의 기나긴 도로를 자동차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
드라이빙 비디오라면 또 이 영상을 빼놓을 순 없지. 시드니에서 활동하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선 라이의 유튜브 히트곡. (추천 많이 받았지?)
머나먼 타국 땅에서의 여행이라면 당연히 건물이나 공원 같은 거리의 풍경들도 매우 중요하지? 사라 배럴리스와 제이슨 므라즈가 출연한 뮤지컬 <웨이트리스>의 홍보용 뮤직비디오도 그런 분위기로 충만해. 버스킹 라이브 같은 분위기랄까. <라라랜드>가 좀 작위적이라면 이 영상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분위기야.
아니면, 아예 버스킹 다큐멘터리는 어때? 프랑스의 음악 콘텐츠 프로덕션 <라 블로그데끄>가 2006년부터 시작한 ‘테이크 어웨이 쇼’는 유튜브에만 올라가는 음악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야. 파리에 투어를 온 음악가들과 버스킹을 진행하는 동안 거리에서 우연히 벌어지는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덕분에 매우 참신한 장면이 가득해. 주로 파리 근교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들과 함께 산책하는 기분도 들어. 맥 드마르코의 이 영상처럼 말야.
여행지에서는 종종 스트리트 뮤지션들을 만나기도 하지.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데, 길거리에서 케이팝이 아니라 레게, 블루스, 재즈, 혹은 그 지역의 민속음악을 듣게 되면 ‘아 정말로 내가 여행을 왔네’하는 감정에 흠뻑 젖어. 지금 소개하는 이 영상은 그 순간의 에너지를 인류애로 전환하는 프로젝트야. <Playing For Change>라는 국제 연대 재단이 진행하는 Song Around The World 프로젝트는 음악으로 세상을 연결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2010년부터 수많은 나라, 다양한 정체성의 음악가들과 연대하고 있어. 좋은 곡들이 너무 많지만, 9년 전에 밥 말리의 ‘Redemption Song’을 스티븐 말리(밥 말리의 아들)와 함께 부른 버전은 그 의미가 특히 남달랐던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올해는 이런 연대 의식을 음악과 이으려는 시도들이 특히 많았어.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많은 음악가들이 팬들과 함께 비디오를 찍으면서 다 함께 용기를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남겼지. 톰 워커도 그중하나일 거야. 지난주에 업로드된 이 비디오에는 런던, 베이루트, 벨라루스, 브뤼셀, 시드니, 파리, 도쿄, 멕시코, 델리, 서울 등 세계 각지에서 춤추는 34명의 댄서가 출연해. 음악과 함께 그들이 춤추는 장소를 하나씩 살피는 재미도 있어.
물론 유튜브를 떠돌다 보면 정말로 버스킹의 ‘어메이징 모멘트’와 마주칠 때도 있지. 앨리 셜록은 더블린의 버스커로 5살 때부터 기타를 쳤어. 올해 16살이 된 그는 2017년 <앨런 쇼>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는데, 최근엔 자작곡으로 만든 EP도 발표했어. 유튜브 275만 명, 페이스북 260만 명, 인스타그램 120만 명의 팔로워가 있어. 끝까지 들어봐, 당장 더블린으로 가고 싶어지거든.
더블린 거리를 살짝 구경한 다음엔 글래스고로 가볼까? 2017년 겨울,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매거진으로 유명한 <빅이슈>의 캠페인에 참여한 킨의 버스킹이야. 응, 그냥 ‘킨’처럼 들려.
그런데, 버스킹도 싫고 음악도 싫을 수 있잖아? 그래서 그냥 거리만 나오는 걸 찾아왔어. 그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업데이트된 시부야 걷기 영상인데, 특히 시부야와 하라주쿠를 연결하는 캣 스트릿의 영상이야. 여기엔 작은 편집샵, 아트북 서점, 근사한 카페가 틈틈이 숨어 있어. 그나저나 지난주에는 레코판(시부야의 대형 중고 레코드 가게)의 폐업 소식을 들었는데, 결국 다시 못 가보는 곳이 되었네…
태국 최초의 인디 팝 스타, 품 비프릿의 뮤비에 나온 태국의 파타야 리조트도 향수를 자극해. 저런 리조트에 갈 수 있을까? 낯선 사람들과 저렇게 가깝게 앉을 수 있을까? 저렇게 습한 데서 마스크를 끼고 걸으면 질식할지도 몰라 등등…
습한 건 홍콩도 만만찮은데, 홍콩 야시장에서 촬영한 몬도 그로소의 ‘라비린스’를 보면 문득 저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이제는 무리 무리‘라는 생각을 하게 돼. 그건 좀 슬픈 느낌이고. 참고로 이 곡의 자유롭고 우아한 안무는 <라라랜드>의 안무 총괄이자 소녀시대의 ‘I GOT A BOY’, ‘Mr.Mr.’ 그리고 f(x)의 ‘일렉트릭 쇼크’, ‘첫사랑니’의 댄스를 설계한 질리언 메이어스의 작품이야.
이렇게 갑갑한 판데믹 상황은 뜬금없이 4년 전 시규어 로스 채널에 업로드되었던 아이슬란드 1번 국도(이 큰 섬을 감싸는 유일한 도로)의 드라이빙 영상을 찾아보게 만들어. 총 3개로 나눠진 이 영상은 각각 9시간, 1시간, 6시간 분량이야. 두 번째 영상은 360도 카메라로 촬영했으니 마우스를 돌려보는 재미도 있어. 이야 저 구름 좀 봐봐… 더해서 2007년에 발매된 시규어 로스의 다큐멘터리 <Heima>의 ‘Hoppipolla’ 클립도 추천해.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 자연, 음악이 나오거든.
사실 앞으로는 글래스톤베리 같은 대형 음악 페스티벌에 가는 것 자체가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시대가 올지 모르겠어. 물론 이런 대형 페스티벌의 위기는 판데믹 때문만은 아니야. 이미 수년 전부터 공연 산업의 헤게모니는 대형 페스티벌에서 단독 공연으로 이동했는데 코로나19는 이 흐름에 쐐기를 박은 계기가 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아 정말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페스티벌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스펙터클은 대체 불가능하잖아.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아. 작년 글래스톤베리에 모인 수많은 인파를 보면 특히 그렇지.
자, 이제 마지막 영상이야. 공항에서 시작했으니 공항으로 마무리. 다들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 이 험난한 시기가 무사히 끝나고, 그렇게 안전한 때가 오면 어디로든 멀리 떠나는 비행기를 타러 가야지. 물론 세계 일주를 할 만큼 여유롭지 않겠지만, 적어도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될 건 분명해. 그때까지 모두 조심하고 또 건강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