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말 많고 고독한 평론가 차우진이다. 다들 무사한가? 좀 답답하고 약간 우울하고 미래가 어두운 거 말고는 뭐, 괜찮게 지내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집콕도 아니고 방콕이다, Bangkok(응?).
사실 방콕 근처에도 못 가봤지만 방콕의 음악에 대해선 써보기로 한다. (마! 이게 바로 프로다!) 얼마 전 내가 <디에디트>에 썼던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한 유러피안 팝송’에 대한 글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동남아 음악도 조만간 소개하겠다고 했는데 농담이 아니었거든. 요새 태국 팝을 진짜 자주 듣는다. 어, 네? 그런 글은 처음 들어본다고? 음… 괜찮다. 뭐, 익숙… 하니까…
태국 음악이 뭐 얼마나 좋겠냐고 의심하기 전에 미리 말해줄 게 있다. 태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여기서 잠깐. 음악 산업에서는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가 ‘아시아’다. 일본은 그냥 세계 2위의 시장일 뿐) 가장 큰 시장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우리가 그걸 빼앗았지, BTS 만세!) 전 세계 백패커들이 방콕에 모이듯 동남아시아의 음악이 모두 태국으로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라이브 클럽도 많고 레이블도 많고 뮤지션도 많은 태국에는 장르적으로도 매우 다양한 음악이 분포되어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히 ‘힙한 음악들’을 간추려서 소개할 거다. 몇 년 전에 히트한 품 비프릿은 없으니 딴 데 가서 아는 체 하도록.
거의 다 올해 발매된 싱글이고, 듣다 보면 한국 노래와도, 캐나다나 뉴질랜드나 영국의 팝과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이건 분명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서프록이나 챔버팝, 드림팝 계열의 리듬, 80년대의 특징을 재현하는 빈티지 튠, 그리고 영어 가사와 ‘베이퍼 웨이브’ 스타일의 비주얼이라는 것은 이제 세계 인디 팝의 공용어가 된 것 같다.
그게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는,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같은 글로벌 플랫폼이 지역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로컬리티’가 희석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자연스레 동시대의 지구촌 사람들로 일체화되는 걸 텐데, 특히 MZ 세대에게 이 글로벌이란 저 멀리 어딘가가 아니라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개념일 것이다. 나 같은 아저씨나 뭐 글로벌하면 왠지 아득하고 머나먼 정글 같은 느낌이겠지.
아무튼, 글의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듣자마자 너무 힙해서 깜놀하는 태국 음악> 믹스 테잎도 제공하니 끝까지 읽어… 주세요. (내가 말 많은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잖아?) 사실 추천하고 싶은 곡은 많은데 너무 너무 길어질까봐 곡 소개는 대거 생략했다. 아, 그리고 스페셜 땡쓰 투 구글 번역기, 참말로 애썼다.
2019년 말에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눔차는 태국뿐 아니라 싱가폴, 인도네시아, 일본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7월 31일에 공개된 ‘Kryptonite’는 발매된 지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신곡으로 21만 조회 수를 찍었는데, 매우 매력적인 음색과 스타일로 글로벌 스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발렌티나 플로이는 이탈리아 혼혈로 <2018 미스 유니버스 타이>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고, <보이스 타이>에도 출전한 경력이 있다. 작년에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는데, 4곡의 싱글과 1장의 EP를 발표했음에도 스포티파이의 인기 플레이리스트에 소개되면서 이미 1천만 명의 팬을 확보했다. 영어 발음도 좋고, 음색도 좋고 외모도 좀 멋있게 예쁜 데다가 곡 스타일도 요즘 유행하는 팝이라서 보고 듣는 재미가 있다.
란독마이는 ‘탠트’와 ‘우펌’ 두 명으로 구성된 듀엣이다. 대학생 시절에 유튜브로 음악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은 스몰룸(SMALL ROOM)이라는 방콕의 인디 레이블과 함께 활동한다. 이 곡은 올 초에 발표한 곡으로, 상냥하고 느긋한 포크 팝에 빈티지 영상이 매우 잘 어울린다.
욘라파는 2018년, 치앙마이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로 한국에도 조금 알려져 있다. 사이키델릭을 기반으로 빈티지 튠을 자유롭게 구사하는데, 이 매혹적인 기타 튠은 같은 레이블 소속의 밴드 솔리튜드 이즈 블리스(Solitude Is Bliss)의 기타리스트인 세타킷 싯히(Setthakit Sitthi)를 프로듀서로 초빙한 결과다. 뮤직비디오는 마치 12월에 한라산 1100도로를 따라 상고대로 올라가는 길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 제주도 가고 싶네. (응?)
서프 록을 기반으로 매우 경쾌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4인조 밴드다. 딱 듣자마자 아도이가 떠오르는데, 데뷔했던 2018년 태국 인디 씬에서도 화제였던 팀이다. 슈게이징, 드림 팝, 인디 록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숙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위트 있고 좋다.
6명이나 되는 멤버로 구성된 인디 밴드로 슈게이징과 챔버 팝이 섞인 러브 송을 들려준다. 본인들은 ‘바보 같은 러브 송’이라고 부르는데, 이 곡의 경우는 도시 감성이 물씬 흐르는 뮤직비디오가 매우 인상적이다(다른 곡들은 좀 귀엽다).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밴드로 확장되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매우 큰 주목을 받으며 올 초부터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는 신인’으로 활발하게 소개되는 중이다.
위사누 리킷삿다퐁(Wissanu Likitsathaporn)의 1인 프로젝트로 ‘เศร้าอยู่’은 ‘애절하다’는 뜻이다. 일단 편안하고 안락한 무드가 무척 듣기 좋은 곡이다. 참고로 그는 인디펜던트 음악가로서 타이의 사운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페이스북에 여러 고민들이 올라오는데 ‘한국적 사운드’나 ‘탈-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공감된다.
펑키한 R&B를 선보이는 4인조 팀으로, H3F는 ‘Happy Three Friends’란 뜻이다. 살짝 느슨해진 혁오 느낌…?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영어 가사를 쓴다고 하는데, 그 결과가 이 기사일지도… 사실 태국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도이, 세이수미 같은 밴드들도 떠오르는데, 새삼 방탄소년단은 정말 예외적인 사례라는 생각도 든다.
슬러는 15년 차 인디 밴드로, 당장 연주에서 그 연륜이 느껴진다. 리드미컬한 드럼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멜로디 라인이 시원하게 쭉 뻗어 나가다가 멈칫거리면서 특유의 그루브를 만든다. 실연에 대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특이하게 SF 컨셉인데, 흥미롭게도 외계인에게 납치당했다가 귀환한 남자가 임신하는 내용이다!
미르는 치앙마이의 2인조 밴드로, 80년대 신스팝을 기반으로 꿈꾸듯 아름다운 멜로디를 구사한다. 2018년 데뷔 당시에는 특정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 굳이 ‘장르 없음’이라고 얘길 했지만 요즘엔 그냥 ‘신스팝’이라고 부르(게 놔두)는 듯.
자오나이는 태국의 셀럽으로 본명은 진제트 와타나신(Jinjett Wattanasin)이다. 아버지는 태국의 유명 음악가이자 프로듀서, 배우인 제트린 와타나신으로 미국 대도시 투어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거물이고 어머니인 케마니 와타나신 역시 태국의 인기 배우다. 3년 전, 16살에 데뷔해 배우와 가수로 활동 중인데, 2017년의 인기 태국 영화 <배드 지니어스>를 2020년에 드라마로 바꾼 버전의 주인공을 맡고 있다.
스스로 ‘오타쿠 밴드’라고 소개하는 팀으로, 듣기 편한 챔버 팝 스타일에 칩튠을 살짝 섞어 그루브를 만드는 요즘 노래를 들려준다. 선생님을 뜻하는 일본어 제목은 ‘그 사람 덕분에 안 해본 걸 시도하는 내게는 그가 바로 인생의 선생님’이라는 뜻(어째서인지 오타쿠!). 그나저나, 방콕의 구석구석을 1인칭 데이트 시점으로 끌고 다니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이솜 배우와 무척 닮아서 너무 놀랐… 아니 기뻤다. 이 배우는 아농낫 유사난다(Anongnart Yusananda)로 ‘cute’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데, 최근에는 ‘기다리지 않아(ไม่ได้รอนะ)‘ 라는 솔로 곡을 발표하고 가수로도 데뷔했다.
틸리 버즈는 2010년에 결성된 3인조 밴드로 태국에서 상당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케이드 파이어, 악틱 멍키스, 테임 임팔라 등이 연상되는 선명하고 굵은 기타 톤이 특징이다. 영화처럼 내러티브가 뚜렷한 뮤직비디오를 직접 제작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이번 비디오는 특히 어둡고 기괴하지만 계속 보게 된다. 1960년과 2010년에 제작된 한국 영화 <하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태국판 <쇼 미 더 머니>인 <더 랩퍼>의 우승자로 화려하게 데뷔한 래퍼 밀리는 올해 17살이다. 니키 미나즈를 모델로 삼은 듯한 스타일이 특징인데, 무엇보다 태국의 힙합, 페미니즘, 10대 여성의 라이프스타일, LGBTQ 커뮤니티의 경계에서 거침없이 발언하며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논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곡의 제목은 ‘슈팡’이고 니키 미나즈에 블랙핑크를 끼얹었다는 인상을 준다.
*편집자주: 마지막으로 차우진님의 지금까지 소개한 음악을 한 번에 쭉 묶은 유튜브 재생목록도 첨부한다. 링크도 첨부하니까 해피 집콕 되시길!
듣자마자 너무 힙해서 깜놀하는 태국 음악 [믹스테잎] for 디에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