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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Mar 08. 2017

탬파 샌드위치 바 싸장님, 강근민

2016년 3월 6일의 기록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알게 된 것은 아니다.

68번째 인터뷰이였던 흥 부자, 민선언니를 기억하실는지 모르겠다. 나의 소울메이트인 언니는 본인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회사 사람들 뒷담화, 애인 뒷담화, 친구 뒷담화... 뒷담화로만 가득 찰 것 같은 대화 속에서, 언니의 ‘맑은’ 뒷담화는 대화를 조금은 희망차게 만들어주는 한 줄기 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맑은 뒷담화에 거의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몇 명 있다. 그중 가장 쿨하고 호탕한 성격의 샌드위치 가게 싸장님이 한 분 있으니, 바로 오늘의 인터뷰이다.

언니는 본인의 인터뷰(2015년 3월 인터뷰)를 마친 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들 중에 <사소한 인터뷰>에 딱 어울릴 만한 친구가 있어. 다음엔 이 친구 꼭 인터뷰해봐.”, “진짜 추진력 있고 말도 야무지게 잘해.”, “그 친구가 얼마 전에 샌드위치 가게를 오픈했어.” 소울메이트의 적극적이고 주기적인 추천으로, 어느샌가 ‘그 친구분’을 인터뷰하는 것은 나에게 숙원사업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이 드디어 그 숙원사업을 끝내는 날이자, 맑은 뒷담화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만나게 된 인터뷰이의 쿨한 인터뷰를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사소한 인터뷰> 119번째 주인공, 강근민

 



#안녕하세요 강싸장님 :)


Q. 오늘(인터뷰 당일)은 월요일, 샌드위치 가게가 쉬는 날이라고 들었어요. 쉬는 날엔 주로 뭘 하시나요?


보통 저희가 쉬는 날에 장을 봐요. 오늘도 오전부터 동업자 분과 같이 장을 보고, 연남동에 있는 저희 가게에 짐을 갖다 놓고 왔어요. 바꿔야 하는 조명이 있어서 손도 좀 봤고요. 동업자분이 남자라서 조명이나 인테리어 같은 부분을 손볼 때 참 든든해요.(웃음) 그런 일들을 처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저희와 비슷한 업종의 가게들에 방문해서 이것저것 먹어보며 배우기도 해요.


Q. 맛보러 갔던 곳 중에 가장 맛있거나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였어요?


아무래도 가장 맛있었던 곳은 저희 가게죠.(웃음)
(아하 우문현답이네요.. 우문 조심하겠습니다.)


Q.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저희 인터뷰의 공식 질문부터 드릴게요.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되게 어렵네요.. 요즘의 저를 표현한다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중’이요. 사업을 하면서 인생에 대해 엄청나게 많이 배우고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직장과는 또 다른 판이더라고요. 일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 화를 억누르는 법, 기다리는 법 등을 배우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 많이 드는 것 같아요.



#오랜 관심, 사회복지


Q. 지금은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지만, 원래 사회복지를 전공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근데 사실 대학 입학할 때 전공은 경영이었어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중학생 때 CA 활동으로 진로탐색 반을 들었는데, 당시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후 사회복지사 꿈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고3 때 원서를 쓰려니 사회복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였고, 경영학과가 여러 방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변 분들의 권유로 '경영학과'로 전공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Q. 그러면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전공을 사회복지로 바꾸신 건가요?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경영학 공부를 하다가, 문득 그동안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사회복지 공부를 한 번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를 복수전공하게 됐고, 결국 진로도 그쪽으로 잡게 됐어요.


Q. 사회복지에 대한 사명감이나 애정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쪽 일을 선택하신 건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게 없으면 시작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보수가 높은 것도 아니고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인 시작이 일반 기업이랑은 다르거든요. 물론 사회복지 안에서도 천차만별이긴 하지만요.


Q. 사회복지 안에서도 천차만별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쉽게 급여 수준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큰 재단은 재정이 있어서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급여 수준이 있어요. 하지만 지역아동센터, 요양보호사와 같은 쪽은 일이 좀 더 많고 힘든 편이지만 보수는 큰 재단과 차이가 많이 나요. 복지관의 경우도 속한 재단/법인이 어디냐에 따라서 지원금이 다르고요.


사랑의 열매에서 일할 당시, 나눔대축제 행사 부스에서 찍은 사진


Q.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사랑의 열매에 들어가셨으면 첫 직장이었네요. 회사 생활은 어떠셨어요?


많이 배웠죠. 제가 처음에 있었던 팀은 고액기부자를 관리/배분하는 팀이었어요. 재단 내에 1억 원 이상 기부한 분들을 위한 그룹이 있는데, 그 그룹의 행사도 진행하고요. 그리고 기부자 본인이 기부하기를 원하는 기관들과 연계해주는 일도 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아동청소년을 위해 얼마를 쓰고 싶어요.”라고 하시면 맞는 기관과 연계해주고, 배분해주고, 해당 기관이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지금은 제 사업을 하고 있지만, 돌아보면 이런 직장생활도 해볼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아요.


Q. 직장 3년 차(약 4년 재직)에 대학원에 진학하셨다고 들었는데, 대학원에 가서 사회복지를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일했던 사랑의 열매는 사회복지 기관들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 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기로 했죠. 대학원에 가면 아무래도 다양한 사회복지 현장에 계신 분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고 이론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요. 


Q. 사업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사회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여쭤볼게요. 혹시 개인적으로 이쪽 일을 하면서, 사회복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곤란했거나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있었죠. 사회복지 관련 일은 다 봉사직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인식도 있고요. 사람들이 사회복지라고 하면 비리와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곳이 있으니까 그런 인식들이 생긴 걸 수도 있지만, 무조건적인 불신은 좀 아쉬운 것 같아요.


Q. 반대로 기억에 남는 기부자나 따뜻했던 경험들도 들어보고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기부자분은 거제도에 사시는 할머님이신데요. 아드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 사망보험금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거기에 폐지를 주우며 모으신 돈을 보태서, 저희 모금에 기부해주셨어요. 거의 1억 원이 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또 한 분은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님이신데 장애학생을 위해 썼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1억 원 정도를 기부하셨어요. 

그 두 분의 기부금을 ‘나눔 보리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모아 장애대학생들의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어요. 취지에 공감하시는 고액기부자분들도 사업에 동참해주셨고요.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님은 정말 이 사업에 대한 애정이 깊으셔서 매 행사마다 와주세요. 장학생을 선발하는 자리, 장학금 전달식 등 조촐한 행사부터 큰 행사까지 모두 참여해주셨어요. 그리고 행사 때마다 손수 쓰신 편지를 읽어주시는데 가끔 울컥하셔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어요...


Q. 박인: 그런 감동적인 기부자분들을 직접 뵈면 느낌이 어때요?


‘아 내가 이런 것 때문에 사회복지를 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복지는 결국 전달하는 일이잖아요. 기부자가 가장 기부하기를 원하는 곳,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등 적재적소에 전달하는 것이 사회 복지사의 역할 중 하나죠. 그래서 그렇게 된 순간에 되게 보람돼요.


Q. 순간순간 보람된 사회 복지 쪽 일(게다가 꽤 규모도 있고 ‘준 공무원’스러운 직장)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뭐였어요?


사실 그만두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도 퇴사한다고 하면 왜 그러냐고 정신 나갔다고 했고요.(웃음) 그런데 저는 그만 두기 1년 전부터 ‘일단 버텨보면서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아보자.’라는 생각을 계속 해왔던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사업에 대한 플랜이 확실해지고, 함께 할 사람을 만나 실제로 준비를 하게 되면서 ‘지금이다. 이제 그만 둘 때다.’라는 결심이 들었어요.



#동업자를 우연히 만나다


가게 오픈 당일, 가게 앞에서 동업자 분과 찍은 사진


Q. 탬파 샌드위치 바에 가보니, 함께 운영하시는 동업자분이 계시더라고요. 두 분은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셨나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알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2015년 초 대학원 다닐 때 알게 됐으니까요. 각 단과 대학원의 원우들이 모두 모이는 큰 커뮤니티(연합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알게 된 분이었어요.


Q. 서로 안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사업을 함께 할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게 저희도 신기해요.(웃음)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냥 쉽게 같이 술 먹다가 “같이 사업하자!!ㅎㅎㅎ”고 됐었어요. 제가 사업이 되게 하고 싶었나 봐요. 원래는 푸드 트럭에서 체코 빵을 팔고 싶었어요. 그래서 2014년부터 회사 사람들에게 “저는 이게 너무 팔고 싶어요. 돈도 안 들고 너무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그럼 주변 사람들은 또 다 좋은 아이템이라고 괜찮다고 해줬고요. 그때부터 친한 지인들에게 같이 사업하자고 항상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 술자리에서는 다 하고 싶다고 하던데, 그때뿐이더라고요.


Q. 맞아요. 진짜 하는 사람은 드물죠. 근데 지금 동업자분은 좀 달랐나요?


어느 날 제가 또 술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우리 사업하기로 했잖아요. 진짜 사업하실 거예요? 전 진짜 할 거예요.”라고 얘기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 자리에 지금의 동업자 분도 계셨던 거예요. 그래서 가볍게 또 던졌죠. “오빠도 하실래요?”(웃음) 근데 좋다고 하시길래 약속을 받고 또 받았어요. 그리고 며칠 뒤에 제가 우연히 본 컵밥 관련 기사의 링크를 동업자 분한테 보내줬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카톡방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Q. 처음부터 두 분이서 시작하신 거예요?


원래 카톡방에는 지금 동업자분 말고 한 분이 더 계셨어요. 근데 그분은 사는 곳도 멀었고 너무 바쁘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자꾸 진도를 나가지도 못하고 안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결국은 하고 싶은 사람 둘이서 시작하게 됐어요.


사업에 관심이 많은 한 팀원은 사업 자금, 부동산, 인테리어 등 사업 컨설팅 수준의 디테일한 자문을 구했다. 그 팀원의 어깨와 팔만 살짝 공개한다.


Q. 사업 자금을 위해 그동안 모은 돈을 올인 하셨다고 했는데, 그렇게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어요?


돈이 없어서 두렵지만(웃음) 그래도 재밌어요. 아직 오래 안 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크고요. 주위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세요. 근데 저는 선택하기까지가 되게 힘들지, 선택을 한 이후에는 별로 후회한다고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어쨌든 내가 결정한 일이니까 그 안에서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너무 힘드니까.


Q. 동업자를 만나서 가게를 오픈하기까지 준비 기간이 5개월 정도밖에 안 걸렸다고 들었어요. 원래 추진력, 행동력이 강하신 편이신가요?


네. 저는 한번 해야겠다고 결정하면 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근데 가끔 저도 제가 신기해요. 어떻게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어떻게 지금 이걸 하고 있는지. 주변 친구들도 네가 사업을 할 줄은 몰랐다면서 놀라고요.


- 은지: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업 아이템을 이야기해도 안 뺏기는 이유가 실제로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 같고요.


정말 해야, 하는 거지 말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Q. 동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고 할 때부터, 주변에서 진짜 말이 많았어요. 특히 남자랑 동업을 한다고 하니까 더 말이 많았죠. 그중 대부분은 “사업/동업이 쉬운 게 아니야.”, “안지도 얼마 안 됐는데 그 사람의 뭘 믿고 해? 오래된 친구랑 해도 힘든 게 동업인데...”하는 걱정들이었어요.

특히 부모님께서 걱정이 많으셨는데, 그때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어차피 오랜 친구랑 같이 한다고 해도 그 친구가 저를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오래된 친구랑 동업하면, 틀어졌을 때 상처도 더 클 것 같고 더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친하면 규칙이나 룰을 어기기 쉬운데, 지금 동업자와는 그런 것들이 더 잘 지켜질 것 같아요.”


Q. 동업자가 없었더라도, 혼자서라도 창업을 하셨을 것 같나요?


동업자가 없었으면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어요. 일단 같이 할 사람이 있었던 것이 제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들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성실하시고 저보다 더 깔끔한 스타일이셔서, 함께 운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탬파(TAMPA) 샌드위치 바 [2015년 10월 오픈]


싸장님이 강조했던 ‘미큭’(미국) 느낌의 연남동 샌드위치 바, 탬파

*사진 출처 - http://seoulsearching.net/2015/12/08/tampa-cuban-sandwich-bar/


Q. 원래 요리나 요식업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사실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그냥 하면 다 하게 되어있더라고요. 일단 단순하게 푸드 트럭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처음에는 푸드 트럭에서 디저트를 팔고 싶었거든요. 근데 조사를 하다 보니 디저트를 만드는 게 더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동업자분이 체코 빵 파는 걸 반대하시기도 했고요. 강력히 주장했는데 거절당했어요.(웃음) 그러면 디저트 말고 어떤 걸 팔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비교적 간편하게 만들고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를 생각하게 됐어요.


Q. 탬파의 주메뉴가 쿠바 샌드위치라고 들었어요. 쿠바 샌드위치가 정확히 뭔가요?


쿠바에서 먹는 샌드위치가 아니고, 미국 플로리다에서 쿠바 노동자들이 간편하게 먹던 샌드위치라고 하더라고요. 저희 매장명인 탬파(TAMPA)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도시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사실 저희 목표가 돈을 많이 벌어서 탬파로 출장을 가는 거예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바라요. 


Q. 어떻게 ‘쿠바’ 샌드위치를 파실 생각을 하셨나요?


동업자분이 미국 여행을 많이 다니셔서 그 영향을 좀 받았어요.


- 은지: 오늘 동업자분 이야기가 엄청 많이 나오네요. 동반 인터뷰 같아요.ㅎㅎ


그러게요. 여기 옆에 계신 것 같아요.


동업자 분이 미국 여행 중 찍은 사진

*관련 사진 더보기 >> https://www.instagram.com/tampa_sandwichbar/

오픈 당시 하나뿐이었던 기본 메뉴, 쿠바 샌드위치
시간이 지나, 지금은 메뉴 개발을 통해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Q. 한국에 쿠바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 흔하지는 않은데, 먹어 본 손님들의 반응은 어때요?


외국인 손님들은 좋아하시는데, 한국인 손님들은 약간 호불호가 갈려요. 돼지고기 목살을 사용하는데, 하루 동안 숙성을 시키고 오븐에도 굽기 때문에 기름이 싹 빠지거든요. 그래서 되게 담백한 맛이에요.


- 박인: 외국인 손님들이 먹고 THIS IS AMERICAN! 해주면 좋으시겠다.


안 그래도 저희 단골손님들 중에 매주 오시는 외국인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개인 블로그에 긴 글을 올려주신 거예요. 또 그 글이 페이스북에 공유가 많이 돼서 그걸 보고 찾아오신 외국인 분들이 꽤 있었어요.


*외국인 단골손님의 감사한 블로그 글 >> http://seoulsearching.net/2015/12/08/tampa-cuban-sandwich-bar/


Q. 요즘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 나만의 카페,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건데요. 막상 나만의 가게를 가져보니 어떤지?


좋죠. 직장에선 일이 많으면 싫잖아요. 근데 제 가게는 일이 많으면 좋아요. 그리고 직장은 나가기 싫잖아요. 근데 제 가게는 빨리 나가고 싶어요.(웃음) 물론 지칠 때도 있긴 한데 아직까지 쉬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연휴에 쉴 때도 그냥 가게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불안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싶어요. 손님이 많지 않아도 나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니까.


Q. 다른 인터뷰 기사를 보니 ‘실패할 수도 있다는 넉넉한 마음과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하셨더라고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고 계시는지?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동업자 분과 둘이 있을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잘 안 되면 다른 거하면 되지.’라고 해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근데 우린 잘 될 거야. 실패하지 않아. 여름 성수기에 너무 바빠지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죠. 사실 그냥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땐 별의별 생각이 다 들거든요. 그래서 서로 으쌰 으쌰 해주는 거죠.


Q. 한희: 근데 이러다가 서로 좋아지는 거 아니에요?(웃음)

(박인: 사실 저도 되게 궁금했는데 참고 있었어요.)


아니, 이런 질문이 너무 많이 들어와요. 저희가 부부인 줄 아시는 손님들도 많으시고,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둘 사이를 자꾸 궁금해하시고요. 사실 동업자로서 되게 든든하긴 해요. 그런데 서로의 모든 면을 알아서 그런지 이성적인 애정이 생기기가 쉽지 않아요...


Q.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아직까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은 없었어요. 그래도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오픈 전에 공사, 페인트칠 할 때요. 그때 공사하시는 분들이 오시는 아침 8시에 맞춰서 저희도 출근을 했어요. 하루 종일 작업하시는 걸 보고 있다가, 저녁 6시에 가시면 저희는 남아서 먼지를 다 청소하고 새벽 1시까지 페인트칠을 하는 거죠. 공사가 늘어지는 바람에 그 생활을 한 달 정도 했는데, 그때 대학원 공부도 병행하고 있어서 진짜 힘들었어요.


공사가 끝난 후 새벽까지 남아 페인트칠을 하던 모습


Q. 그럼 혹시 앞으로 사업을 하는데 원동력이 될 만한 경험이 있었나요?


작년 9월에 저희가 시식용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연남 공원에 가서 사람들에게 나눠드린 적이 있었어요. 근데 어떤 분이 그때 본인이 달라는 말을 못 해서 아쉽다고 저희 인스타에 댓글을 남겨주신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가게로 오시면 드리겠다고 답변을 드렸죠.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진짜 그분이 가게에 오셔서, 직접 쓴 캘리그래피를 주신 거예요. 되게 힘이 나는 문구였어요. 처음 뵌 분이 선의로 이렇게 선물을 해주시는 건 정말 특이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저희에게 이런 선물을 주시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저희가 예전에 샌드위치를 나눠드리는 것을 보면서, 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뿌듯했어요. 사실 10년을 일해도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처음 오신 손님분께 받은 캘리그래피


Q. 박인: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가게를 오픈하고 난 후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지 않았나요?


생각보다 정말 많이 오셨어요. 죄송할 정도로요. 저는 제가 사람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가게를 오픈할 때도 오픈이 자꾸 늦춰져서 오픈 소식을 많이 못 알렸어요. 그런 게 싫기도 했고요. 괜히 가게 열었다고 괜히 옛날 친구들한테 연락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페이스북에만 살짝 올렸는데, 못 본지 2~3년 된 친구들도 찾아오는 거예요. 집도 먼 데도 찾아오고, 저희 가게에서 동창회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가게에 와주고 이런 걸 떠나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이 생각해준다는 것이 진심으로 감사하더라고요.


- 한희: 제 지인도 가게를 하다가 접었는데, 접을 때 본인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했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이라도 갔어야 하는데' 하고요.


이젠 사람들이 “한 번 갈게”라고 말하고도 안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와야지 오는 거더라고요.(웃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야 오는 거죠. 이 일을 하면서 ‘기다림’에 대해 많이 배워요.


정말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준 지인들과 함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Q. 전전 인터뷰이, 윤수영님의 노골적인 릴레이 질문(트레바리 하실래요?)을 좀 부드럽게 풀어봤어요.


STEP 1) 책 읽는 거 좋아하시나요? 
책.. 지금은 잘 못 읽고 있어요.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서 항상 들고는 다녀요. 심지어 오늘도 들고는 왔어요.(웃음) 책 욕심이 있어서 언젠간 읽을 거라는 생각으로 들고 다니죠. 근데 자꾸 중간에 읽다 말고, 읽다 말고 해요.


STEP 2) 만약 책을 읽고 그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있다면, 함께 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네.


STEP3) 그 모임에 참가비가 있어도 함께 할 의향이 있으신가요?
참가비가 있으면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아요.


Q. 이제 다음 인터뷰이를 위해 릴레이 질문을 하나 남겨주실 수 있나요?


전전 인터뷰이 분도 사업 관련된 질문을 하셨으니, 저도 그럼...(웃음)

요즘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마케팅적 고민인데요. ‘어떻게 샌드위치가 고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저희 샌드위치가 고가잖아요. 근데 샌드위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저렴하고 간편한 느낌이라서요. 그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Q. 인터뷰를 마친 후, 자신을 다시 한 마디로 표현해보면?


저는 아직 즐겁게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성장 중. 앞으로도 더 잘 살 사람.


Q. 묘비명을 남긴다면? 죽고 난 후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괜찮은’ 사람.

본받을 만한 사람까진 아니더라도, 자기 삶에 충실하고 동시에 주변 사람들도 챙길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과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진 않아요. 제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으면 하는 거죠. 정도를 지키면서 살고 싶어요.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나는 이 사람과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

<사소한 인터뷰>를 통해 매주 다른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그저 그 자리에 나가서 묻고 듣기만 할 뿐이다. 그것으로 인연이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시작으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연인이 되기도 하며 동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우연히 알게 된 그 사람들을 통해 아주 좋은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오늘의 인터뷰이가 동업자를 만난 것도 그렇다. 인터뷰이는 그저 대학원 친목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같이 사업하실래요?’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는 그 사람이 있었고, 언니는 그렇게 동업자를 만났다.

인연이라는 게 꼭 특별하거나 대단한 기회에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예상치도 못한 곳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사소한, 어쩌면 내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기회도 소중히 여기기를.
사람을 만나는 데 너무 주저하지 말고 조금 더 기회를 너그럽게 열어 놓기를.
그리하여 자신의 좋은 인연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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