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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Mar 08. 2017

사랑이 가득한 '흥' 부자, 최민선

2015년 3월 8일의 기록

사회에 나가면 진정한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재작년 가을, 그 말을 깨고 회사에서 어떤 친구보다 잘 통하는 언니를 만났고, 항상 주위 사람들을 밝고 따뜻하게 대하는 언니가 참 신기했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언니가 어렸을 때는 밝지 않은 성격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제야 그동안 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사소한 인터뷰> 68번째 주인공, 최민선

 



Q.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줘서 정말 고마워. 요즘 뭐 하고 지내?


이제 막 다시 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드라마 데이터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 원래는 드라마 연출부 일을 했었는데, 그 일이 너무 힘들어서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아는 동생이 데이터 매니저로 같이 일해 보지 않겠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전에 같이 일했던 스텝들도 있기 때문에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기로 결정했어. 더불어 용돈도 벌고, 인맥도 넓힐 겸..^^

 

Q. 우리가 인터뷰를 시작할 때마다 '매번 하는 질문'이 있어. 본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 그냥 흥이 많은 사람 (흐흐흐흐흐흥)


오 맞는 것 같아. 웃음소리를 들으니 그 이유를 안 들어봐도 될 것 같아.(ㅎㅎ) 


Q. 사실 이 질문을 언니와 내가 공유하는 친구들에게도 물어봤어. 언니에 대한 친구들의 한마디를 보니 어때?


- 친구1: '러블리의 종결자' 세상에서 가장 신 난 사람처럼 웃으며 리액션 해줄 때 특히 러블리함

- 친구2: '흥정소녀' 흥 많고 정 많은 소녀

- 친구3: '엄마 같은 친구' 따뜻하고 잘 챙겨줌

- 친구4: '사랑이 가득가득한 사람'


감동이다. 나를 이렇게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정말 감사한 것 같아. 나는 사실 가깝고 친한 사이에는 당연히 주고받아야 할 정이 있다 친구들이 이렇게 생각해준다는 게 지금 되게 감동이야...

 

Q. 전에 언니의 밝은 성격이 원래 타고난 게 아니라, 호주에서 바뀐 거라고 했었잖아. 그럼 어렸을 때는 어떤 성격이었어?  


어렸을 땐 사람도 많이 가리고 낯도 많이 가렸지. 되게 소극적이었어. 남들 앞에서 쭈뼛쭈뼛 말도 잘 못했어. 예를 들어 학원에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시키면, 내가 답을 아는데도 선생님이 정답이 아니라고 혼낼까 봐 대답을 제대로 못 하는 그런 성격이었어.

 

- 그럼 그땐 하고 싶었던 말을 잘 못하고 지냈던 거야?


응. 겁이 많았던 것 같아. 내가 뭔가 틀리고 잘못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혼내거나,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날까 봐 두렵고 불안했어.

 

Q. 지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왜 그런 성격을 가지게 된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아버지께서 연세도 많으시고 보수적이시다 보니까, 언니·오빠·나를 많이 엄하게 대하셨어. 아버지 나름대로는 노력하셨지만 조금 서투르셔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부드럽게 대해주시기보다는 다그치고 혼 내신 적이 많았어. 그런 것 때문에 어렸을 때 내가 위축되어 있었던 것 같아.

 

Q. 3남매라면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역할 구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언니는 어떤 역할이었어?


내 위로 5살 터울인 언니, 3살 터울인 오빠,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인데 어렸을 때 나는 그렇게 큰 역할을 맡진 않았어. 그냥 언니, 오빠가 시키면 하는 막내. 우리 집이 막내는 언니, 오빠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거든.

 

- 집 안에서도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많이 참는 스타일이었어?


응. 많이 참았었어 어렸을 때. 우리 언니가 되게 직설적이고 할 말을 다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땐 별로 친하지 않았어.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고 꿍해있는 나를 되게 답답해했었어. 내가 생각해도 그땐 내가 정말 어두웠던 것 같아. 그래서 밝은 언니, 오빠와 안 맞는 부분이 많았었지. 언니, 오빠는 나와 다르게 활동적이고 나가서 노는 것도 좋아했는데, 나는 소심하고 겁도 많아서 엄마랑 떨어지면 무서워하기도 했어.

 

Q. 언니의 성격이 호주에서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기 전에, 호주에는 어떻게 가게 됐는지 먼저 듣고 싶어. 


정말 단순한데 그냥 수능을 망쳐서… 재수를 준비하자라는 생각이었는데, 그때 언니가 마침 호주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었고 사촌 언니도 호주에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재수보다는 호주에서 대학을 준비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어. 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단순하게 '그래, 그럼 가보자'하고 간 거야.

 

Q. 평소 선택을 할 때 오랜 시간 깊이 고민하는 편은 아니야? 


쓸데없는 자잘한 문제는 굉장히 오래 고민하는데, 큰 건 오히려 대담하게 결정하는 편이야. 어차피 잘 될 확률과 못 될 확률이 반반이잖아. 그래서 '그래 뭐 해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이번에 데이터 매니저 일을 하게 된 것도 그렇고. 사실 조금의 고민이 있긴 있지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더 강해.

 

Q. 큰 문제를 대담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뭘까?  


나는 계획을 해도 일이 내가 계획하고 예상한 대로 절대 안 되더라고. 그래서 오히려 더 쿨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것 같아. 어차피 내 식대로 안 될 거 되는대로 해보자, 이런 마인드야. 사실 힘들 때는 '내가 왜 그랬지'하는 생각은 드는데, 어쨌든 내가 한 선택이니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 노력해.


- 흘러가는 대로,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고 볼 수 있겠다. 본인을 흐름에 맡길 수 있는 건 여유가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선택에 있어서 최대한 여유를 가지려고 해. 솔직히 여유가 없을 때는 흐름에 맡기기가 힘들거든. 집에 하루 정도 곰곰이 생각하며 일기장에 내 생각 쓰거나, 강아지랑 놀며 여유를 찾는 편이야. 그런데 작년에 드라마 연출팀 일이 끝나고 쉴 때는 '내가 일을 할 때 너무 여유가 없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서 이해를 못 했던 것 같아.

 

Q. 여유로운 생활을 좋아하는 언니인데, 어떻게 호주에서 '미디어'를 전공하게 됐어? 미디어 쪽은 여유와 거리가 있는 직업일 수 있잖아.


그것도 되게 단순한데(웃음) 원래 호주 가기 전에는 유아교육이나 사회복지 쪽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때 찾아갔던 호주 유학원에서 그 분야는 모두 전문대에서만 가르치고, 호주 유학의 기회를 전문대를 가는 데 쓰는 건 좀 아깝지 않겠냐는 조언을 해주더라고. 그 대신 비즈니스, 마케팅 쪽을 추천해줬지. 근데 내가 수학은 정.말. 싫어했거든.(ㅎㅎ) 또 싫은 건 죽어도 못 하는 스타일이라서..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야. 그러다 마침 비슷한 상황에 있는 언니를 우연히 알게 됐고, 미디어학과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됐어. 생각해보니까 나름 괜찮은 학과인 것 같아서 '나도 이거 한 번 해볼까?' 했지. 이번에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냥 '아 그래 이거다. 이거 하자!'하고 흐름에 맡겼어. 고민이 짧아. 고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복잡해지고, 후회도 더 커지는 것 같아서. 내가 이만큼 고민해서 결정한 건데 그게 잘 안되면 싫잖아. 그래서 그냥 빨리빨리 결정해버리는 것 같아.


Q. 호주에서 공부 외엔 뭘 하면서 지냈어?


과제가 되게 많아서 과제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긴 했는데. 그래도 과제가 없을 땐 친구들이랑 바닷가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랬어. 그게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 그리고 한국 친구들, 그땐 내가 막내여서 주로 언니들이긴 했지만, 집으로 불러서 같이 영화도 보고 요리해서 먹이고 재우고.(웃음) 그 사람들 덕분에 힐링이 많이 됐고 내가 많이 변하게 된 거지.


 


Q.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두 사람을 꼽자면?


한 명은 사촌 언니, 다른 한 명은 같이 쭉 공부를 해온 한국인 언니. 그 둘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지. 난 원래 내성적이고 소심했는데 이 둘로 인해 내가 흥이 많아졌고, 감정 표현에 솔직해졌어. 사촌 언니는 옆에서 이야기를 정말 잘 들어주고, 별것도 아닌 건데 날 되게 칭찬해주고 예뻐해 줬어. 다른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흥이 제일 많아. 정말 넘쳐.(ㅎㅎㅎㅎㅎㅎ) 사교성도 좋고, 심지어 처음 본 날 나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줬어. 처음 딱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지. 나는 그런 말을 해본 적도 없고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해준 적도 없었거든. 그래도 어쨌든 대답은 해야 되니까 “저도..”라고 했지.(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언니랑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도 그렇게 변하게 된 것 같아. 사랑에 대한 표현을 옛날엔 부끄러워하고 인색했는데, 이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좋은 표현을 주변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 그래서 지금은 너밖에 없다, 너뿐이다,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같은 표현을 많이 해.


Q. 호주에서 친해진 언니들 외에 '친언니'와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본인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쳤어?


응!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 학창시절엔 내 방에 누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해서 언니랑 대화도 별로 없고 싸우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호주에서 같이 살을 부딪히면서 살고 맞춰가다 보니까 금세 친해지게 되더라고. 지금은 언니랑 정말 다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됐어. 어렸을 때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언니가 장난으로 던진 말들에 상처도 많이 받았어. 근데 호주에 같이 살 때 언니가 우스갯소리로 "내가 너 이런 말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강하게 키울 거야"라고 하면서 장난을 더 많이 쳤어. 그렇게 장난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새 나도 같이 장난치게 되더라. 이제는 언니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라고 할 정도로 장난기도 많고 흥도 많고 표현에 자유로워졌어.

 

Q. 호주에서 사람들도 좋았지만, 호주 문화와 교육은 어땠어?

 

나랑 잘 맞았던 것 같아. 우리나라의 Yes or No 주입식 교육과 다르게, 호주는 모든 생각을 존중해줬어. 예를 들어 교수님이 생각했을 때 아니라는 부분이 있다면 “이렇게 바꿔 보지 않겠니? 그럼 좋을 것 같은데”라고 말씀해주셨어. 그 말을 듣고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원래 의견을 고집하면, 그 부분에 있어서도 학생의 생각을 존중해주셨지. 또 어떤 교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해주시기도 했어. 본인은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존경한다고. 본인은 영어밖에 구사할 줄 모르는데, 유학생들이 외국어로 대학교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셨어. 그때 감동을 많이 받았고, '그래, 내가 여기서 움츠러들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호주에서 만난 사람들도, 학교생활도 모든 것이 나와 조화롭게 딱 맞았던 것 같아.

 

Q. 친구들 중 호주 유학을 가겠다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어?


외국 유학이라는 것 자체가 혼자 가족들과 떨어지는 거잖아. 경제적으로 능력이 되고 외국에 나가서 경험하고 싶다면 가라고는 할 수는 있는데, 지금의 나는 좀 더 생각해보라고 얘기할 것 같아. 난 좋긴 했지만 많이 외롭기도 했거든. 5년 정도 호주에서 지내면서 사촌 언니랑 같이 산 적도 있지만 혼자 산 시간이 더 길었어. 처음에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배우다 보니까(웃음) 가족들 빈자리가 너무 크게 다가왔어. 주변에 혼자 사는 친구들을 신경 써서 챙기는 이유 중 하나도, 그때 내가 혼자 지내며 외로웠기 때문인 것 같아.

 

Q. 호주 유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어?


외로움은 정말 조그마한 부분이라고 느껴질 만큼 다른 것들을 많이 배웠어. 나를 호주에 다녀오기 전/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호주 유학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이 배우고, 내 성격도 스스로 느껴질 만큼 밝아졌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

 

Q. 대학 졸업 후에 호주에서 더 일해볼 생각은 없었어?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려는 일이 방송 쪽이잖아.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일단 방송 쪽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많아. 게다가 외국인을 채용하려면 돈을 주고 비자를 내줘야 하는데 고용주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거지. 아예 시민권, 영주권이 없는 애들은 뽑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일찍 포기하고, 어차피 외로운 거 '그냥 한국 가서 일하자' 이렇게 마음먹었던 것 같아.

 

Q. 한국에 돌아온 후 처음 했던 일이 뭐였어?


우선 한국에는 3년 전쯤 들어왔는데, 그때 처음 하게 된 일이 카툰네트워크라는 만화채널 인턴이었어. 거기서 인터랙티브팀이라고 인터넷 웹사이트랑 디자인 관련된 부서에 있었어. 미디어 쪽과는 거리가 있는 사무직이었지. 그 회사에서 좋았던 것은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까 분위기도 자유분방하고 복장 규정도 없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고, 선후배 관계도 경직되어 있지 않았어. 방송 쪽에서 일하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참 편하고 걱정 없었던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단순 업무하고 6시 되면 칼퇴근하고. 몸도 마음도 편하긴 했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니 재미가 없더라. 괜히 다른 거 하고 싶고.


그러던 중에 마침 회사 안에 OAP(On Air Promotion) 팀이라고 주로 영상 작업을 하는 팀을 따로 알게 됐어. 그 팀이 그동안 내가 배웠던 편집, 녹음 등의 작업을 하는 걸 보면서 '지금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거기서 자극을 받았던 것 같아. 거기 계신 음향 감독님께서도 내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그럼 왜 지금 여기서 이 일을 하고 있느냐"고 하시기도 했고.


Q. 그럼 그 회사에서 더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던 거야?


음.. 그때 아쉬웠던 게 3-4개월 정도의 인턴이 끝난 후에 더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과 함께 내가 미디어에 관심이 있으니 그쪽에 대해 배울 기회도 준다고 했었어. 그런데 계약 바로 전 날에 바로 위 선배가 날 부르더니, 미안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당분간 인턴을 쓰지 못하게 됐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됐지. 그래도 그 인연으로 이후에 SBS Mtv(이하 Mtv)에서 인턴 일을 하게 됐어. Mtv에 계신 적이 있었던 OAP팀 팀장님께서 그 일을 소개해주셨거든. 

 

Q.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 같아. 비결이 뭐야?


내가 은근히 인복이 많은 것 같아. 요즘 느끼는 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나는 여태껏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고 배웠다는 거야. 그리고 나도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참 감사하게도 딱히 잘한 것도 없고 잘 보이려고 노력한 것 아닌데.. 그냥 내가 진심으로 좋아서, 내 식대로 표현한 것들을 되게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 그런데 원래 언니가 있던 부서가 아니라 OAP 팀에 인맥이 생긴 거잖아. 그런 것을 알게 모르게 혹은 언니도 모르는 사이에 노력한 거 아닐까?


그런가? 되게 자연스러웠어. 그 팀에 여자들도 많고 다들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친해지고 싶었던 건 있었지. 그리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해서 나도 도시락 싸와서 같이 먹고 그랬어. 그런 것 빼고는 내가 따로 노력했던 건 없어.


왠지 언니 성격이라면 "흐흐흐흐흥 팀장니히히히힘"하면서 밝게 웃으며 다가갔을 것 같아. 그런 걸 예쁘게 봐주셨을지도 몰라.(웃음)


나도 내가 잘 웃기는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나는 진짜 웃겨서 웃는 데 왜 웃냐고 묻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 그걸 좀 좋게 봐주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웃음이 많은 언니 덕분에, 함께 웃느라 바쁜 인터뷰 팀원들ㅎㅎㅎ


Q. 그렇게 가게 된 Mtv(SBS Mtv)에서는 어떤 일을 했어?


진짜 연출부 일을 했어. Mtv가 엠넷 같은 음악 채널인데 예능 프로그램도 하거든. 나는 거기서 '타다 잇츠 원더보이즈(Ta-Dah! It's Wonder Boyz)'라는 아이돌 가수 리얼리티 쇼를 했었어. 촬영 쫓아다니면서 보조도 하고 싱크도 맞추고 자막도 넣고 잡일을 했지. 재밌었어. 처음 해보는 방송일이었고 배우는 것도 많았고. 일도 생각했던 것과 비슷해서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어. 또 인턴이다 보니까 그렇게 힘든 일은 많이 안 시켰지. 사람들도 다 좋았고 편하게 대해줘서 잘 버텼던 것 같아. 그때까지는 정말 이 일이 잘 맞는 줄 알고 있었지. 그런데 항상 남자 선배들이 그런 이야기는 했었어. 이 일이 재밌으면 안된다고, 빨리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왜 하필 이 일이냐고.(웃음) 나는 또 대쪽같이 재밌다고, 이 일 할 거라고 대답했지. 처음으로 어떤 일을 배우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Q. Mtv 인턴이 끝난 후에는?


사실 인턴이 끝나고 Mtv 메인 피디님이 나에게 또 제안을 했었어.(웃음) 그때 달달한 조건, 인턴이 아니라 본인의 바로 아래 조연출로 들어간다는 조건을 이야기하셨는데 나는 뭔가 부담스러웠어. 좋은 조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더 차근차근 배워가고 싶었고 오히려 더 힘들 것 같아서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지. 


- 다른 대안이 있었어? 주위 사람들을 보면 본인에게 어떤 제안이 왔을 때, 더 나은 대안이 없다면 그냥 가더라고.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되게 단순해서 싫으면 싫은 거고 좋으면 좋은 거야. 그래서 '일이야 많겠지, 또 생기겠지'라고 생각했어.


Q. 그런 믿음을 갖게 되는 배경이 있다면?


물론 아빠가 도와주는 부분도 있긴 있었겠지만, 그냥 나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것 같아. '난 뭐든 할 수 있겠지', '어디 내던져놔도 잘 할 거야'하고 나를 되게 믿었었어. 


- 그런데 언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언니를 믿어준 적이 많았잖아. 그런 것들이 심리적인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응! 맞아 그런 것 같아.(웃음) 다들 잘 될 거라고. 친구들이며 주변 사람들이며 나를 되게 많이 믿어줬어. 쓴소리도 해줬지만 그래도 잘 될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다들 밀어주고 옆에서 위로해주고. 그런 게 되게 컸던 것 같아.

 

Q. 문득 궁금한 건데, 성격이 다소 어두웠던 어렸을 때도 인복이 많았었어?


그때는 내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았던 것 같아. 친구가 한정적이었어. 학교에서 친한 친구 몇 명이랑만 지냈지. 내가 먼저 다가가서 감정 표현을 하며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적은 많이 없었어. 학교에서도 조용하고 선생님께도 말 잘 안 하고. 그래서 학교 다닐 때부터 쭉 친했던 친구들은 2-3명? 그 친구들이 묵묵하게 옆에서 자리를 지켜줬어.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안 떠나고 (웃음) 옆에서 챙겨주고 있는 게 정말 고마워.


Q. 그 친구들은 호주 갔다 와서 밝아진 언니를 보고 반응이 어땠어?


내 친구들이 묵묵한, 남자 같은 애들이라서 다들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데 내가 막 사랑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당황하더라고. 그런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그래, 고맙다"하고 다 받아줘. 그리고 요즘에는 동창들 만나는 재미가 있어. 이제는 내가 사람들 만날 여유가 있으니까, 전에는 많이 친하게 지내지 못 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

 

Q. Mtv에서의 제안을 사양한 후에는 어떤 일을 했어?


사실 그때 조금 힘들었던 게 나는 잘 될 거라고 믿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많이 안 잡히는 거야.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연출하고 싶다니까 공채를 준비하라고 하는데, 내 성격 자체가 진득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냥 빨리 일을 하면서 배우고 싶었어. 그런데 우리나라가 나이를 많이 보는 데다가 계약직은 더 어린 사람을 선호해서 일이 잘 안 구해지더라고.


그러던 중에 tvN '식샤를 합시다' 프로그램 조연출 모집 글을 보고 예능인 줄 알고 지원했어. 왜냐면 주위 사람들에게 드라마 PD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드라마는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했었거든. 그래서 음식과 관련된 예능이라 생각하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자리에 나 같은 사람들이 몇 있었던 거야. 면접장에서 드라마라고 알려주시더라고.(웃음) 그래도 최대한 밝고 겸손하게 면접을 보는데 "왜 드라마를 지원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딱 하시는거야. 그래서 "드라마든 예능이든 상관없이 지원하려고 했는데 마침 이 모집 글이 떴길래 운명이다 싶어서 지원했다."라고 잘 대답했지. 그리고 장점을 이야기해보라는 질문에는 어렸을 때 할머니, 친척들과 같이 살아서 '어른들에게 잘 한다'라고 했더니 그걸 좋게 봐주셔서 뽑으셨더라고.(웃음)

 

Q. 막상 되고 나니, 하고 싶던 예능이 아니어서 혼란스럽지는 않았어?

 

운명이겠거니라고 생각했어. 같은 방송일이고, 그전에 일이 잘 안 잡혔으니까 '이거라도 한 번 잘해보자'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사실 잘 몰라서 그랬던 걸 수도 있어.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웃음) 드라마 시스템에 대해 잘 몰라서 들어간 것도 있는 것 같아. 어쨌든 날 좋게 봐서 뽑아주셨는데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메인 PD님의 인상도 좋으시고 젠틀하셔서 이 PD 님과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결정했어. 나 너무 단순한 것 같아.(흐흐흐흐흥)


Q. 드라마 조연출 일은 어땠어?


간단히 이야기하면 예능보다 힘들다. 정말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인턴과는 차원이 달랐어. 그리고 돈을 보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밤새 일한 대가에 대해서는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사실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촬영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쉬는 날이 거의 없었어. 그러다 보니 밝은 모습이 점점 사라지더라고. 중간에는 그만둬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 그냥 같이 일했던 너(막내 조연출)랑 둘이 의지하며 버틴 것 같아.


Q. 혹시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


같이 붙었던 계약직 선배 한 분이 힘들어서 갑자기 촬영장에서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때 '아 뭔가 아쉽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몇 개월만 참으면 드라마가 끝나는데 싶더라고. '나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이게 아쉬울 수 있겠구나', '그래도 내가 여태까지 버텨 온 게 있으니까 참아보자' 그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 동시에 선배들에게도 꽁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더 웃고 더 죄송하다고 했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잘해보자는 마음이었어. 


그리고 생각해보면 분명히 일적으로 많이 배웠어. 기본적인 연출팀 일을 알게 됐으니까. 그냥 그땐 너무 잠도 잘 못 자고, 잘 먹지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못 벌고, 선배들도 힘드셔서 여유가 없었던 게 아쉬운 거지. 근데 지금은 그때 힘들었던 모든 일들이 왜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 회사에서 사람들을 대할 때 언니가 감정을 컨트롤하려는 게 보였어.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뭐야?

 

그때는 누구 하나라도 참고 가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될 것 같았어. 그래야 진행도 되고 정리도 될 것 같았어. 그리고 모두 힘든 상황에서 내가 힘들다고 몸을 사리는 건 아닌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참고 가야지 하고 갔어. 대신에 흥을 잃었지. 그때는 내가 진짜 많이 어두웠던 것 같아.

 

Q. 세 회사의 업무 강도를 10점 만점으로 매겨본다면?

 

첫 번째 회사가 1점, 두 번째 회사가 5점, 마지막 회사가 10점. 아니다 옆에 의지할 막내 조연출이 있어서 9.5점! 같이 일을 나누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

 

- 그 정도로 힘든데 방송일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 나의 경우엔 너무 힘들어서 분야를 떠났는데, 분야를 바꿀 생각은 없었어?

 

조금 미련이 남았어. 내가 꿈꿔왔던 일인데 이번 일 하나로 접기는 애매했어. 아니라는 확신이 든 건 아니라서 접기는 싫더라고. 진짜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그만두고 싶다는 확신이 들 때 그만둘 것 같아. 사실 지금은 방송보다는 영화 연출 쪽으로 가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 않아서.. 정 안되면 방송 쪽도 다시 해볼까 생각 중이야.

 

Q. 언니가 평소 나른한 오후를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일상을 접어둬야 하는 것이 아쉽지 않아?

 

아쉽다? 그런데 되게 신기한 게, 그래서 더 소중히 여기게 돼. 주어진 일상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지고. 일하기 전에는 평범한 내 일상이었는데 일하면서부터는 항상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돼서 더 뜻깊게, 소중하게 보내고 싶더라. 더 웃고 싶고, 더 즐기고 싶고, 그래서 흥도 더 많아지고.


- 그중 가장 접어두기 아까운 것이 있다면?

 

강아지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것. 지금 강아지가 많이 늙어서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다 보니까 나한테 되게 의지를 많이 하는데, 내가 집을 비운 며칠 동안 밥을 안 먹고 잠만 잤다는 거야. 그런 게 아쉬워. 내가 호주에 있을 때도 얘가 많이 외로워했는데, 이제 괜찮아지려 하니까 또 내가 일을 하게 돼서 옆에 못 있어주는 게 마음이 쓰여. 얘는 애교도 많아서 나를 항상 즐겁게 해주고 위로해주는데, 나는 받은 만큼 못 해주는 것 같아서...

 

언니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홍이


Q.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꼽자면?

 

가족(강아지도), 책임, 행복.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일에 책임을 지고 싶어. 그리고 모두들 행복해서 잘 됐으면 좋겠어.

 

Q. 연애는 인생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

 

비중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특히 봄, 가을을 많이 타는 편이야. 지금은 외로울 때 그게 주변 사람들로 충족이 돼서 절실하진 않지만, 그래도 곧 봄이 오면 다시 절실해지겠지.(웃음)

 

- 그래도 이상형을 꼽자면?

 

박서준. 박서준의 느낌. 이승기, 지진희. 웃을 때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사람. 스타일도 좋고 재미도 있으면 더 좋겠지.

 

Q. 어떤 연애를 꿈꾸는지?

 

자유로운 연애. 서로 구속하지 않고 존중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보듬어줄 수 있는 연애. 그거면 된 것 같아. 아버지께서 날 너무 구속하셔서 그 영향이 커.

 

Q.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궁금해진 건데, 언니는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행복한 가정. 아버지께는 죄송하지만 지금의 가정 분위기는 앞으로 내가 꾸리고 싶은 가정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엄하고 혼내는 이미지가 강해서.. 아직도 엄마한테는 반말 쓰는데 아버지께는 존댓말을 쓰거든. 그래서 친구 같은 아빠를 둔 사람들을 보면 그게 너무 부럽더라고. 그건 내가 노력해도 잘 안 됐어. 그러다 보니 친구 같은 아빠, 친구 같은 남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하지. 그리고 형제가 좀 있었으면 좋겠어. 커서 보니 확실히 형제끼리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게 좋더라. 일 때문에 힘들 때도 서로 위로해주고 챙겨주고.

  

Q. 지금 일하기 전에 쉬는 기간이 있었잖아. 그때 "이제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지 않았어?

 

되게 신기하고 웃긴 게 아빠 빼고 아무도 그 질문을 안 했어. 오히려 쉴 만큼 쉬고 일할 때 되면 일하라고 했어. 가까운 지인들은 나를 잘 믿어 주는 것 같아. 그런데 아버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무엇을 할 것이냐 물어보셨지. 아빠도 내가 많이 고생한 것을 알기 때문에 이해는 해주셨지만, 대신 너무 오래 끌지 말라고 하셨어.


- "앞으로 뭐 할 거야?", "요즘 뭐 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류의 질문은 뭐야?


듣기 싫은 질문은 "뭐 할 계획이야?"라는 질문.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보고 따지는 질문은 안 좋아해. 워낙 내 인생 자체가 계획대로 흘러간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계획을 해도 그대로 되지 않았어. 반면에 좋아하는 질문은 "뭐 하는 거 좋아해?", "뭐 하고 싶어?" 이런 질문.

 

- 앞으로 뭐 하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것!(웃음) 그냥 일할 때는 일하고 여유 부릴 때는 여유 부리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들과 여유 부리면서 살고 싶어.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아.

 



Q. 매번 하는 질문. 죽고 난 후에 묘비명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어?

 

그냥 '잘 살다 간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안 좋아해서 단순하게 말하고 싶어.

 

Q.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시'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를 내려본다면?


'흥이 많은 주변 사람들을 둔' 흥이 많은 사람. 내가 흥이 많은데, 끼리끼리 논다고 주변 사람들도 흥이 많아.

 

Q. 언니가 받은 릴레이 질문,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선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잘 됐으면 좋겠고, 그게 정 내 일이 아니다 싶으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디자인, 무엇을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어.


Q. 다음 사람에게 남기는 릴레이 질문?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계십니까?", 짧게는 "행복하니?"

전 지금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에게 부탁한 손그림. 언니 품에 안긴 홍이의 눈빛이 참 따뜻하다*_*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만큼 힘들지만 간절히 원하는 게 없다. 물론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라는 것을 알지만, 내심 그냥 좋은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참고 혼자 속앓이를 하던 그때, 옆을 보니 힘든 일을 함께 하던 언니가 있었다. 마치 언니가 호주에서 우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처럼, 그렇게 감사하게도 나타나줬다.

인간관계에 지독한 회의감이 들더라도 그건 '순간'일 거라고, 누군가 나와 맞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가며 각자가 바라는 '좋은' 사람의 모습대로 나를 다듬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게 될 거라 믿어 본다.



Thanks to 혜랑. 그림 정말 고마워

(http://blog.naver.com/mintcook)

(Instagram @rangdorph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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