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5일의 기록
사는 게 참 쉽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누구 하나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이 없다.
'이 시기를 견뎌내야 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와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요즘, 많은 말보다 정말로 힘든 한때를 보낸 후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다른 사람도 힘들다고 지금 당장 나의 힘듦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순간만큼은 짊어지고 있는 생각의 무게가 잠시라도 가벼워지길 바라본다.
Q. 언제 다시 대전에 내려왔어?
작년 8월에 졸업하자마자 바로 내려왔어. 졸업하고 나니 더 이상 서울에 있을 필요도 없었고, 서울에 있는 게 돈이 많이 들기도 했고.
Q. 지금 카이스트 연구실에 있는 걸로 아는데, 들어 간지는 얼마나 됐어?
올해 4월에 들어갔으니까 8개월 정도 됐네. 그전까지는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지냈어.
Q.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공식 질문.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유쾌한 사람인 것 같아.
- 혹시 별명 있어?
요즘에는 없는데 중고등학생 때 '술 취한 토끼'라는 별명이 있었어. 술 취한 것처럼 엉뚱해서 그랬나? 그 별명이 좀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Q. 전공을 생명과학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는?
가족이 연관되어 있어. 유전적인 이유로 아빠 눈이 좀 안 좋으시거든. 그래서 처음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 근데 어차피 의사가 되어도 그 병의 치료법이 없는 상태여서, 생명 과학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중학교 때부터 그걸 알게 된 후로 필연적으로 나는 생명 과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 효녀 같은 동기였지.(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삶의 배경을 이유로 들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다른 것을 충분히 선택했을 것 같아.
Q. 그럼 지금 있는 연구실에서 그 주제를 연구하는 거야?
아니. 지금 있는 생체방어연구실은 조금 달라. 바이러스 같은 게 우리 몸에 있는 점막을 통해 감염이 되면 우리 몸은 거기에 어떻게 대항하는지를 연구하는 실험실이거든. 그래도 다행히 교수님께서 내가 눈에 대한 연구에 관심 있는 걸 아셔서 비슷한 주제를 찾아주려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해.
Q. 원하는 주제를 다루는 연구실은 없었던 거야?
사실 내가 원하는 주제를 다루는 연구실이 있어서, 처음에는 그곳에 지원했었어. 지금 있는 곳보다는 더 눈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곳이었지. 그런데 여러 사정으로 지금 있는 생체방어연구실에 다시 지원하게 된 거야. 덕분에 좋은 연구실을 만나게 된 것 같아.
Q. 꼭 가고 싶었던 곳에서 한 번에 합격하지 못 했을 때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
너무나도 쉽게 될 거라고 믿어왔었고 합격만 보고 달려왔는데, 떨어지고 나니 갈 수 있는 길이 다 차단된 느낌이었어. 한 번 떨어진 사람은 계속 떨어진다는 소문도 있고.. 여러 이유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 같았어. 무엇보다도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에 힘들었던 것 같아.
Q. 그 시기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아무것도 안 했으면 더 힘들었을 텐데,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도움이 됐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다른 데 정신을 쏟으면서 자책하는 데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나를 지지해주고 나에게 본보기가 되어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어. 아무리 혼자 괜찮다고 되뇌어도 극복이 안 됐었거든. 그러다가 언니랑 보람이를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사소한 조언도 되게 마음을 울리더라고. 예전에는 혼자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이 낮을 때에는 자신을 못 믿을 수 있는데 그 때 타인이 나를 믿어주면 큰 감동인 것 같아.
Q.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
새롭지. 그리고 그때 절박했기 때문에 지금 버틸 수 있는 것 같아. 만약에 한 번에 쉽게 다 했으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 그냥 다른 거 할까?'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을 것 같아. 근데 준비하던 시간 동안 내가 왜 이런 시간을 투자해서 대학원 입학을 다시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어. 원하는 곳에 가지 못 해서 생긴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연구는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이야'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
Q. 원하던 곳에 실제로 들어가 보니,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지?
실제로 가보니 내 생각이 짧았어.(웃음)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고.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던 것 같아. 왜 그렇게 느꼈냐면 대학원에 들어가면 대학까지의 삶과 다르게 스스로 능동적으로 해야 되더라고. 그런데 나는 대학원에서도 대학처럼 과제를 내주고 공부하는 곳이라 생각했어. 실제로는 일일이 가르쳐주지도 않고 내가 얼마만큼 배우느냐는 내가 얼마나 적극적∙능동적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말이야. 때문에 항상 정신 차리고 어떤 일을 해내야 해. 아직도 많이 부족한 걸 느껴.
그리고 처음에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하는 말을 들었을 때와 교수님의 평가가 안 좋았을 때 좀 힘들었던 것 같아. 나는 중학교 때부터 연구하고 싶었고 동기도 충분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게 다 깨졌거든. 나는 평범 혹은 그 이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지.
Q. 대학원에서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라고 느꼈다고 했었지?
우선 입시부터 거절당하는 입장으로 시작한 셈이지.(웃음) 자대에서는 목표로 삼은 것도 달성하고 대학원 입학 기회도 열려있어서 스스로가 특별한, 실험실에서 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타대에 가려니 상황이 다르더라고. 이공계 기피나 대학원 진학보다 약대나 의전원 가려던 친구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대학원생이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위 최상위 학교들은 전국에서 수재들이 모여들고 나는 그중 경쟁에서 살아남을 만한 필살기가 없었던 것 같아. 입학해서도 처음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하긴 한데, 그전에 내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욱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고 그게 자괴감으로도 느껴졌어.
Q. 앞으로 커리어적으로 어떤 모습을 꿈꾸는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저 사람의 가설이랑 데이터는 믿을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헤쳐나갈 전략적인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교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다른 것도 찾아보고,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고,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 꾸준히 이 분야를 연구하고 싶은지?
죽을 만큼 힘들기 전까지는 시작을 했으니까 끝을 보고 싶어. 적어도 학위를 받을 최소 5년은 이 분야를 연구할 것 같고. 그 이후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추측을 해본다면 원래 관심 있던 것과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을 융합하고 있지 않을까? 여기서 재미를 찾으면 계속 이쪽 연구를 할 수도 있고.(웃음)
Q. 너의 삶을 나누어본다면, 크게 몇 개의 시기로 나뉘는 것 같아?
나는 그냥 학교 다녔던 순서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Q. 왜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아?
각 시기를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약간씩 달라서.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를 떠올리면 '아 그때는 진짜 힘들었었지', 중고등학생 때를 떠올리면 '어떻게든 성공해서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참 하나만 보고 달렸었지'하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학교가 바뀌는 시기마다 삶의 환경도 같이 달라졌던 것 같아. 예를 들어 대학 때 가족들과 떨어서 혼자 살아야 했던 것처럼.
Q. 그 시기들 중에 가장 좋았던 때와 힘들었던 때는?
좋았던 시기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년기.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부터 힘들기 시작했거든.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시긴 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왜 나만 이런 다른 환경에서 살아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Q. 어릴 때와 지금 너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아?
음.. 초등학생 때는 원망하기 바빴던 것 같아. 내가 원해서, 선택해서 혹은 내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닌데 왜 나에게는 이렇게 힘든 일이 일어나야 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뭔가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
Q. 심리적으로 많이 강해졌구나.
응. 그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었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말 안 하면 모를 만큼 강해진 것 같아. 그 일이 '사람이 되는 것'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야?
좀 추상적이긴 한데, 우울하거나 사람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아닌, 무기력하지도 않은,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 건강한 한 인격체가 되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
Q. 우리가 만난 게 고등학생 때야. 시간이 정말 빠르다. 고등학생 때 내가 본 너는 굉장히 밝은 아이였는데, 그 이면에는 어떤 모습이 있었는지 궁금해.
일부러 더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 노력했었어. 사람들에게 감추고 싶어서. 그런데 사실 밝은 모습만 보여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나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힘들었어. 의도치 않게 나의 모습이 왜곡되어 가는 것 같았거든.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건 아니지만,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시선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충격이었어. 나는 나름대로 내 안의 슬픔을 이겨내려는 것이었는데 그걸 사람들은 모르니까 과도한 밝음을 단점으로 취급하더라.
Q. 고등학생 때, 대학 가면 뭘 제일 해보고 싶었어?
자유롭고 싶었어. 대학에 가면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었어. 동아리도 연애도 내 마음대로.
Q. 너의 대학 생활은 어땠어? 자유로웠어?
그 자유를 찾는 데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아. 대학에 갔다고, 부모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동안 얽매여 왔던 것들을 거스르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자유를 얻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그때 소소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했어.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는 것들 말고. 예를 들면 환경 동아리, 연애, 듣고 싶은 수업을 들었던 것 등등.
Q. 다시 대전으로 내려오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
적어도 '대학원은 대전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확고했어.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먼저 대전에서 살고 싶었고 카이스트라는 학교가 좋았고 고등학교 때 카이스트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게 미련으로 남아있었고 카이스트에 좋은 교수님도 계셨고. 게다가 부모님의 지원 없이 대학원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곳을 따져보니 최적의 선택이 카이스트였어. 똑똑한 사람들 틈에서 공부를 한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많은 걸 배울 거라고 생각했지.
Q. 다시 대전에 오니 마음이 편한지?
응. 편안하고 포근하고 안정감을 좀 찾았어. 일단 사람 많고 복잡한 서울에서의 생활이 나랑은 좀 맞지 않았던 것 같아. 그리고 다시 대전에 돌아왔을 땐, 대학 가기 전의 상황과는 또 달라져 있어서 집에 가도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 우선 엄마가 나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해주기 시작하면서 엄마와의 관계도 많이 좋아졌고. 이전과 달라졌고, 대신 강아지도 생겼고. 지금은 집이 대전임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엄마랑 점심을 함께 하거나 집에 다녀오는 날엔 에너지를 많이 받는 것 같아. 엄마 사랑해요. 우리 강아지도.(웃음)
Q. 앞으로도 계속 대전에서 지내고 싶은지? 카이스트를 졸업하면?
아니. 이제 더 이상 장소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졸업 이후라면 더더욱. 그때쯤이면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아. 해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고, 어디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갈 거야.
Q. 지금까지 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언제 만나게 된 거야?
- 지희: 스무 살,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만났어. 방학 때 오랜만에 동아리에 갔는데, 동아리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하고 친해지라고 모르는 사람과 번호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었거든. 그때 처음 만났어.
- 남자친구: 지희가 먼저 다가와서 물어봐 준 게 고마웠어요. 그때 저는 동아리에 처음 갔던 거여서 정말 아무도 몰랐거든요. 그리고 사귀게 된 건, 같이 대전에서 영화를 보고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데려다줄 때 제가 고백했죠. 그때가 지희가 다시 서울로 돌아갈 시기여서 이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Q. 어떤 점이 좋은지? 처음에 좋았던 점과 지금 좋은 점.
- 남자친구: 처음엔 털털한 면이 좋았어요. 동아리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걸 보면 정말 털털하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쉽지 않은 건데, 저에게 먼저 다가와 줬던 것도 좋았어요. 그런데 만나보니 오히려 여린 면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그 점까지도 좋은 것 같아요.
- 지희: 사실 처음엔 그게 못마땅했어. 관심은 누구든지 가져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아무튼 내가 처음에 좋아했던 이유는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평판이 좋았고 성실하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만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만나보니 남자친구가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더라고. 회복탄력성이 강해서 심적인 스트레스나 어려움에 잘 흔들리지 않아. 그런 안정적인 성격 덕분에 같이 있으면 나도 안정이 돼. 이해심도 많고 너그럽고 따뜻하고.. 그리고 얘한테는 그런 믿음이 있어. 내가 망해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Q. 오랫동안 연애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 지희: be willing to. 기꺼이 그렇게 할 만한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것 같아. 기꺼이 내 시간을 할애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 기꺼이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은 사람. 그리고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했어.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너무 헤어져야 할 이유가 많은데, 그냥 '내가 얘랑 같이 있을 때 행복한가?'라는 질문만 생각했어. 재고 따지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
- 남자친구: 먼저 장거리 연애가 한몫했던 것 같아요. 멀리 있다 보니까 만나면 애틋하고 그랬죠. 그리고 받아 줄줄 아는 것. 한 명이 화나면 한 명이 보듬어 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서로 좋아하는 거겠죠.
Q.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진지한 질문?
- 지희: "나를 책임질 수 있어?" 생활력이 강해 보이진 않아서,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믿음이 부족한 것 같아. 나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 큰데, 남자친구와의 미래를 그려보면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모습과 굉장히 달라져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얘랑 살면 소박하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까 백화점을 다녀오니 마음이 싱숭생숭 하긴 하지만.(웃음)
- 남자친구: "언제까지 화낼 거야?" 화를 억누르라는 게 아니라 가끔은 이해해줬으면 해요. 너무 작은 일로 화낼 땐 좀 힘들어요.
- 지희: 그래 그건 내가 잘못했어.(웃음)
Q. 지희가 화를 내거나 본인을 못 믿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땐 어때요?
- 남자친구: 어차피 그건 지희 생각이니까 상관없어요. 저는 남의 생각을 건드리는 게 싫어서, 철저히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줘요. 저랑 다르다고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하고 넘겨요.
Q. 인터뷰를 마친 후, 다시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해보면?
지금 드는 기분은 얘(남자친구)랑 같이 있어서 참 좋다. 남자친구 덕분에 내가 계속 유쾌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Q. 죽고 나서 묘비명에 어떤 말을 남기고 싶어?
인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자, 행복했던 사람.
언젠가 한 선배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이 일을 계속하려면 미치도록 ‘행복’하거나 ‘간절’해야 한다고. 그리고 본인은 정말 간절해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이도 같은 말을 한다. “그때 절박했기 때문에 지금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언젠가 꼭 배우고 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지금 힘들고 잔뜩 웅크려야만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자신에게 간절함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행복했던 한때가 지난 후 반복되는 오랜 시간들을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간절함이. 나처럼 내일을 위해 간절한 오늘을 보내는 사람들과, 인터뷰이처럼 어제의 간절함으로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