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9일의 기록
작년 여름, 빙수를 먹으며 A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많은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A는 말했었다. 그 이후로 1년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 그녀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까. 살면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보겠다는 꿈욕심쟁이 A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Q. 사소한 인터뷰의 공식 질문.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만의 속도로 사는 사람'이요.
- 본인의 속도는 남들의 속도와 어떻게 다른가요?
우선 제가 이야기하는 남의 속도는 ‘사회적인 통념’, 즉 이 나이쯤에는 이걸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의미하는데요. 저는 그 사회적인 통념과 다르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Q. 취업을 준비하는 이에게 자기소개란?
음.. 제일 어려운 거요.
Q.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질문을 하나 꼽자면?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던 질문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요. 그 당시 교장선생님께서 행동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셨어요. 평교사로 시작해서 교장 선생님이 되신 분이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새벽부터 나오셔서 교실의 냉난방기를 다 켜놓으실 정도로 학교에 대한 애정도 많으시고, 학생들한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셔서 먼저 밥 먹었냐고 물어봐 주시고, 학생들의 불이익에 먼저 나서 주시고 함께 슬퍼해 주시는 분이셨어요.
Q.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이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하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은?
대가족 속에서 어른들의 사랑을 정말 많이 받으며 컸어요. 어떤 말을 해도 예뻐해 주시고 잘 받아주셨죠. 그런 환경 덕분에 자신감 있는 성격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덧붙이자면, 예쁨받았다는 걸 느끼며 자란 게 아니라 대학 때 과제로 '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저의 성격의 근원을 찾다 보니 대가족 형태에서 연유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Q. 요즘 흔치 않은 가족 형태, 대가족 환경에서 자라며 가장 좋았던 점은?
그냥 일상이 시트콤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빠가 시골 출신의 7남매 중 장남이셨어요. 그런데 아빠가 서울에 직장을 잡으시면서 고모나 삼촌들을 하나둘씩 집으로 데려오게 되신 거죠. 33평짜리 아파트에 10명 넘게까지 살아봤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늘 복작거렸죠.
- 나중에 본인이 가정을 꾸리게 되어도 대가족으로 살고 싶은지?
꼭 그렇게까지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반전..ㅎㅎㅎ) 솔직히 저는 정말 좋았는데 엄마가 너무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가정을 꾸리면 엄마 입장이 되는 거잖아요.(웃음)
Q. 혹시 커가면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자신감이 무너질 위기는 없었나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누군가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처음 느꼈던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어쩌면 저 혼자 '모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동화 속에 살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어렸을 때 받았던 가족들의 사랑 덕분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비교적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래도 시선을 신경 쓸 때가 있다면?
주류와 반대되는 의견을 말할 때요. 그럴 땐 한 번 더 말을 다듬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돼요.
- 한희: 보통은 주류가 되는 의견을 내는 편인가요? 소수의 의견을 내는 편인가요?
비율로 따지면 주류 60 : 소수 40 정도인 것 같아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저였던 경우가 많았어요.
Q. 학교가 아닌 회사에 들어가게 되어도 소수의 의견을 모두 이야기할 건가요?
소수의 의견 40 중에, 제가 속한 조직이 일하는데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만 추리고 추려서 10 정도만 이야기할 것 같아요.
Q. '다이나믹'이라는 단어를 한글로 바꿔본다면?
제가 생각하는 다이나믹은 ‘역동성’ 혹은 ‘남다름’인 것 같아요.
Q. 그동안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나요?
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남다른 에피소드들이 많았거든요. 예를 들면 앞니 몇 개 안 났을 정도로 어렸을 때, 미끄럼틀을 굳이 거꾸로 타다가 부딪혀서 앞니 두 개가 날아갔어요.(웃음) 그리고 네 살 때 대전 엑스포에서 제가 없어진 적이 있었는데, 세 시간 반만에 스스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는 거예요. 이런 엉뚱한 에피소드들이 매년 있었어요.
Q. 많은 사건들 중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국회 인턴'을 꼽았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처음으로 제가 순수하게 재밌어서 열정을 가지고 했던 일이었어요. 그 이전의 저는 무언가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꾸준히 한 적이 없었거든요. 별도로 돈을 받고 한 일도 아니었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인턴의 형태였지만 동아리 같다고 느낄 정도로요.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야근도 재미있게 하고, 주인의식도 가지게 되고, 가슴이 뛰더라고요. 또 열심히 하니까 인정도 받게 되고 그러니 더 재미있어지고요. 국회 인턴을 한 이후에 ‘이렇게 몰입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해야겠다는 삶의 방향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Q. 한희: 국회에서 인턴을 할 때 어떤 점이 재미있었어요?
먼저 국회라는 공간이 가진 '역동성'이 좋았어요. 예를 들면 제가 오늘 본 것이 그날 9시 뉴스에 나오니까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또 마침 당시에 재미있는 이슈가 많았어요. FTA라든지, 강용석 이슈라든지 재미있는 이슈들 덕분에 더 재미있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제 업무의 권한과 범위가 컸던 점, 인정을 받으면서 일했던 점도 좋았어요.
Q. 자연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 있나요?
스위스의 초록초록한 초원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처음 보는 초록이었고 마치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곳 같았어요. 그리고 초록 자연 속에 하나씩 박혀있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어요.
- 초록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시골 할머니 댁에 자주 가다 보니 초록 자연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있는데요. 특히 스위스의 초원은 정말 경이로웠어요. 여행 중 혼자 보면서 박수를 쳤을 정도로요. 한국에 비해 선명도가 높은 초록색이어서 물감에서나 볼 수 있는 색 같았거든요.
Q. 도시에서의 삶보다 자연(시골)에서의 삶을 더 선호하는지?
오스트리아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제가 있던 곳이 정말 스위스 마을 같은 곳이었어요. 평일 저녁 8시 이후나 주말이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싹 닫는 곳이었는데요. 그런 곳에서 저는 정말 매일매일 행복을 느끼며 살았어요. '이게 진짜 행복한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요. 기본적으로 저는 그런 여유로운 환경이랑 잘 맞아요. 반면 같이 갔던 친구는 여행만 다녀오면 시골이 너무 답답하다면서 도시 앓이를 하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게 전혀 없었죠.
Q. 다이나믹하지 않은, 어쩌면 지루한 삶도 괜찮은지?
저는 그런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더 다이나믹한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지만, 자연(시골)에서는 그냥 하루가 온전히 저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 속에서 제가 할 것을 찾는 거니까요.
Q. 한희: 경쟁보다 지금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편인가요?
네. 제 삶에서 경쟁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 제가 마음속으로 경쟁을 만들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요. 경쟁심을 갖는 순간 제 마음이 너무 불편해지고 피곤해져요. 이게 저만의 속도로 사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Q. 자연 외에도 옛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옛 것이란 무엇인가요?
예전 그대로 남아있는 것.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이요. 문화재로 치면 복원된 것보다는 원래 모습 그대로 오래 보존되어 있는 게 더 좋아요.
Q. 개인적인 옛 것이든 한국의 옛 것이든,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전 한국의 ‘시골’을 잃고 싶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정이 살아 있는 시골의 문화요. 지금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시골의 모습은 아빠를 포함한 7남매가 시골에 내려가면 이장님이 방송을 하는 거예요. "오늘 누구네 집에서 아침식사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특별한 날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음식이 많이 있었을 뿐이에요. 그럼 정말 마을 어르신들께서 저희 집으로 한 분씩 오세요. 너무 신기하죠? 드라마 <응답하라1988>에 음식 하면 이웃끼리 나눠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옛날의 정서, 그런 문화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요즘 고민이 '어떻게 하면 내 평생의 업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들었어요. 천직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나요?
모두에게 있지는 않지만 존재는 한다고 생각해요.
- 본인이 생각하는 천직이란?
다른 모든 조건이 안 좋을지라도 이 일을 할 때면 가슴이 뛰는 일이요.
Q. 천직을 찾을 수 있다고 믿나요?
찾고는 싶지만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는 천직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노력할 거예요. 지금도 여러 노력을 하고 있고요.
Q. 모 카드사에 합격해서 연수까지 받다가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당시 정말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는데, 크게 두 가지였어요. 벤처 쪽에서 일을 해보는 것과 부모님을 모시고 제가 짠 루트대로 유럽여행을 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카드사에 합격하여 직장인이 되는 순간 모든 게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되어버렸고, 그 사실이 저를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연수 중에 나와서 벤처기업 인턴과 부모님과의 유럽여행 두 가지를 모두 실천했어요. 그러고 나니 이제는 정말 직장인이 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제가 직장에 얼른 들어가고 싶어졌어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죠.
Q.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네. 그래서 연수기간에 나온 것도 있어요. 저를 포함해서 사람은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에, 젊을 때 도전적인 일을 하다가 나중에 안정적인 일들을 하고 싶어요. 적어도 첫 직장은 '제가 꿈을 꿀 수 있는 직장'이었으면 좋겠어요. 카드사에서 나온 후에 느낀 건데 꿈을 이루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그림을 대략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저는 '극경험주의자'라서요. 직접 해봐야 깨닫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안 좋다고 해도 제가 직접 겪어봐야 안 좋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사실 남들보다 깨닫는 게 느린 것도 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이게 '나'임을 알고, 여러 경험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여러 곳에서 인턴을 하고 돌고 돌아서 결국 제가 지금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이에요. 어차피 제가 뭘 가장 하고 싶은지 당장은 알 수 없을 것 같으니(하고 싶은 게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럴 바엔 빨리 들어가서 경험을 해보며 소거법으로 지워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저에게 맞는 일을 만나면 쭉 이어나가는 거죠. 단, 지금 아니면 못할 것부터 하나씩 도전해보려고요. 그게 지금의 저에게는 대기업이에요.
Q. 이전 인터뷰이가 남긴 릴레이 질문입니다. 오늘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뭔가요?
열심히 자고 있다가 배고프다는 오빠를 위해 일어나서 삼계탕을 끓여준 일요. 제가 일어나자마자 한 일이에요.(웃음)
Q. 다음 인터뷰이에게 하고 싶은 릴레이 질문은?
'인생에서 바로잡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Q. 자신이 그 질문에 답해본다면?
바로잡고 싶은 순간이라기보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어요. 저는 대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서 생물 관련 학과로 전과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생물학을 좋아했고 그래서 과학고 진학을 꿈꾸기도 했어요. 의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요. 대학에서 제일 재밌게, 또 자발적으로 공부했던 유일한 과목이 생물학 수업이었어요. 전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웃음)
Q. 인터뷰를 마친 후, 자신을 다시 한 마디로 표현해본다면?
저는 여전히 '나만의 속도로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도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물음표가 더 커진 것 같아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 건지에 대한 물음표요.
Q. 나중에 묘비명은 어떻게 쓰고 싶나요?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간다.'
나만의 속도로 살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살면서 나에게 한 번쯤은 물었어야 했구나. 지금의 속도가 너에게 맞느냐고, 편안하냐고. 무언가에 휩쓸려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어야 했다. 그 질문을 하지 못 했던 나는 결국 멈춰 서 버렸다. 그리고 왜 그리도 빠르게 살아왔는지 물었다.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은 인생에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혹시 지금 나답게, 내 시계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엄청난 속도를 견뎌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게 어떨까.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대단치도 않았다. 그것들을 내려놓고서도 나는 끄떡 없이 달렸다. 반면 내가 대단치 않게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는 중요했다. 예를 들자면 나 자신.
- 심윤경 '사랑이 달리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