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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Aug 27. 2023

육아, 엄마의 눈빛과 마음을 따라가 보는 시간

어느 여름날의 일기

1. 몇 주 전, 대전에 사는 엄마가 서울에 올라와 나와 사위, 손자를 만나고 가던 날이었다. 할머니 껌딱지인 손자와 가기 직전까지 놀아주다가 기차 시간 때문에 서둘러 헤어지며 문 너머로 작별 인사를 급히 하던 엄마는, 문이 다 닫힐 때쯤 “사랑해”라고 나지막이 외쳤다.


서울에 있던 이틀 내내 손자와 열심히 놀아주고는 사실은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기차를 타고 먼 길을 왔다고 “사랑해”라는 말에 꾹꾹 담아 전했다. 손자의 장난감과 책에 둘러싸여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느라 중요한 이야기를 마지막에 시간 내어 한다는 걸 깜빡했다는 듯, 잘 있으라는 인사 후 급히 덧붙였다.


2. 육아는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라던데, 나에겐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과 마음을 따라가 보는 시간일 때가 많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나에게 몰두하고 파고들며 괴로워했다. 30대가 되어 엄마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나는 참 안쓰럽고 조마조마하면서도 때로는 버거울 만큼 힘이 넘치고, 그 에너지를 따라가 주지 못해 미안한 딸이었던 것 같다.


3. 어느 날 대전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서울에 올라가는 건 영우를 보러 가는 것도 있지만, 세희를 보러 가는 게 더 커.”


그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늘 엄마가 서울에 오면 품에 영우를 안기고는, 저만치 떨어져 앉아 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4.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의 시선을 빌어 나를 사랑해 본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지금껏 이런 표현을 보면 애인을 자연스레 떠올렸는데, 요즘은 엄마의 얼굴을 떠올린다.


영우가 사랑이 많은 아이로 컸으면 좋겠기에 나부터 사랑을 채워 영우에게 듬뿍 주려 노력한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엄마의 사랑이 내 마음에 고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평생토록 가장 오래, 많이 사랑해 준 사람은 엄마였다.


일하느라, 아니 사실 그냥 하루가 버거워서 피곤하던 날에도 영우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속내를 감추며 방긋 웃고, 꼭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하루 끝에 남은 힘을 모아 해준 엄마의 말들이 지금 나의 하루를 지탱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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