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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Emilia Moment Oct 06. 2024

찬란한 가을 햇살에의 동경, 처연한 겨울나무에의 경외

이성희,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



현관 앞, 구매 이유나 필요 따윈 이미 오래전에 잊은 누런 택배 상자들 사이로 온라인 서점 이름이 박힌 작은 포장 하나가 눈에 띈다. 단박에 기다리던 책임을 알아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고 책을 꺼내는 순간, 그만 " "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온다. 손끝에 전해지는 크래프트지의 거친 질감 위로 영롱하게 빛나는 초록빛 제목과 나뭇잎 무늬까지. 너무나 '그답다' 싶다.

'그답다'라고 쓰고 니 괜히 조금 머쓱해진다. 내가 과연 그를 '그답다'라고 말할 만큼 잘 알고 있던가? 절친한 사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학원 동기였지만, 수업 시간에도, 3교시라 불리던 네트워킹 시간에도 우리의 동선이 겹친 적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그답다'라는 말을 감히 쓸 수 있는 건, 지난 몇 년의 시간 그의 삶과 생각을 조용히 그러나 열정적으로 공감하며 팔로우해 왔기 때문이다. SNS에 적힌 글로 누군가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하지만, 적어도 지난 몇 년간 그가 SNS에 써 내려간 성실하고도 치열한 삶의 기록과, 그가 책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모두 하나의 '그'였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를 팔로우하기 시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회사에서의 거취와 아이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무렵이었으니, 30대 후반, 마흔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기였을 것이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불현듯, 이름만 알던 대학원 동기가 올린 발리의 초록빛 풍광과 대나무로 지어진 초현실적인 건축물, 그린스쿨이라는 낯설지만 강렬한 단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아이 교육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했지만, 발리에서 뉴욕으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뉴욕 주립대학교에 편입해 전혀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고, 이어 뉴욕 식물원의 조경사로 이어지는 상상초월, 상상불가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며 어느덧 내 삶도 그의 여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내 마흔의 시간을 헤쳐 나가게 해 준 고마운 인생길 안내자이자 롤모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풀숲을 먼저 헤쳐 가며 길을 내어주고, 계절의 변화를 미리 보여주며 다정하면서도 위엄 있는 인생 선배로서. 지치고 힘든 날엔 그저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 들판 위의 교목 같은 존재였다. 덕분에 나는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때로는 여유를 부리며 마흔의 멈춤과 도전, 그리고 그 이후의 성장 여정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다.

내 <마흔의 시간>은 바로 그가 이끌어준 인생길을 따라온 시간의 결과물이다. 그런 그에게 책 출간 후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전해야 마땅했지만, 어설픈 숙제를 내고 나서 선생님 눈을 피하는 학생처럼 내내 부끄러워 딴청만 부렸다.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를 읽고 나서야 그간 내가 느낀 부채감의 실체를 정확히 깨달았고, 이제야 비로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원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교회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모든 삶의 이야기'

' 그의 글을 읽으며 그 깊은 통찰력에 놀라고 쉼 없이 갈고닦아 거의 투명해진 그의 영혼에 감동합니다'

' 유독 사람들이 만든 것들 속에서 사는 게 고달픈 날이면 '여기 좀 보세요'라고 말을 걸어줄 것 같은 책'

'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 나선 가드너의 모험기'

- 이성희,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 추천사 중에서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글만큼이나 멋진 추천사.




워낙에도 책을 천천히 읽지만 이 책은 일부러 천천히, 더 천천히 읽었다. 마치 한 입 한 입 꼭꼭 씹어 입 안에서 이미 그 맛과 질감이 해체되고 영양소만 남은 밥알을 삼키듯, 글자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다.

자연과 정원에 대한 그의 순수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성실하고 치열한 질문 끝에 결국 그만의 답을 찾아가는 영적 단단함. 지적이면서도 유려한 필력에 유머까지. 그는 정말 '사기캐'다. 그 모든 것이 질투 날 만큼 부럽고 멋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넘어 그와 같은 인생 롤모델이 내 인생에 있음에 깊이 감사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도 감상을 적기를 주저했던 건 소화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쩌면 이런 나의 동경과 존경심, 그리고 경외감 때문이리라.


'우리 모두는 각자의 언어를 갖고 있다. 환대의 언어, 평화의 언어, 생명의 언어, 공감의 언어... 언어는 곧 삶이다. 그 삶에 복음의 정수가 담긴다. 누군가는 요리에, 누군가는 노래에, 누군가는 제품을 통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듯이 정원사라면 마땅히 정원이라는 언어를 구사하고 또 해석할 힘을 길러야 한다.'
- 이성희,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


자연과 정원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닦아가는 저자의 여정은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그가 경험한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주시는 위로와 치유의 힘', 정원에서 경험한 '환대'를 나 또한 수없이 경험했다. 그에게 신앙이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내게는 글쓰기가 그러했다뿐. '순례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그의 말처럼 우린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인생 순례길을 걷고 있는 것이리라.

종교서적으로 분류되었지만 지난 몇 년간 읽었던 그 어떤 자기 계발서나 성장 에세이보다도 더 큰 감동과 지적, 영적, 감성적 자극과 통찰을 주었던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정원은 가장 가까운 정원이라 생각한다.'
- 이성희,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


동의한다. 찬란히 내리쬐는 바삭한 가을 햇살 아래에서, 집 앞 정원에서 또는 가벼운 산책길에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간직하고픈 책 속 문장들>


'긴장과 염려와 두려움... 그 짐들을 길 위에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짐을 버리고 길을 물었다'

'자연을 닮은 정원이 얼마나 강력하게 포용과 좋아 내 힘을 발휘하는지'

' 정원을 드나들 때마다 환대의 의미를 생각한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곧 우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피하지 않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용기가 지역에서 꽃으로 피어나기를 기대한다.'

'11월은 세계 죽고 빛이 사는 계절이다. 색은 식물의 투쟁 흔적이다.'

'빛으로 수렴되는 삶'

'슬픔이 이 아름다운 정원 속에서 더 슬픔다워지는'

'기억은 취약하고 기록은 은폐된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자 경계를 사는 훈련의 과정'

'각자의 땅을 찾을 시간'

'각자에게는 각자의 관점으로 지역을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길 위에서 깊어진 사유'

'피조 세계의 화해를 생각한다. 자연과의 연결을 생각한다. 연결은 화해의 열매다.'

'식물원은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충전하는 곳이다.'

'우리가 정원에서 느끼는 충만한 감정은 나 스스로 그 전경을 감상하고 해석한 시간의 열매다.'

'아픔이 길이 된 결과'

'대단한 삶에 대한 과도한 미련과 생존의 힘겨움이 공존하는 모순을 잠시 벗어나서 이끼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살아있는 것들은 갇혀 있길 거부한다.'

'신이 침묵할 때, 마음이 가난할 때, 감정과 사유 속에 고뇌가 가득할 때 우리는 겨울의 빈 들판에선 자작나무와도 같은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나무는 죽지 않았다. 생명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작동하고 정교한 보호 장치들이 돌아간다. 줄기의 수피와 가지의 선들이 드러나고, 잎눈과 옆흔과 그 상처 속의 미세한 관다발 조직의 패턴까지 나타난다. 나무의 가장 나무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영혼의 겨울도 그렇다. 광야에선 실존이 자신에게 그리고 신에게 가장 정직하다. 이때가 존재의 출발점이고, 우리는 여기서 긴 여정을 이야기 위한 채비로서 안식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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