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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용서, 그리고 이해

용서란 이해의 다른 이름일지도

by The Emilia Moment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꼽으라면 '배움'과 '성장'이다.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라면 아낌없이 투자하고, 성취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읽고 생각하고 깨닫는 와중에도 도무지 배워지지 않고,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었으니, 바로 '용서'와 '감사'이다.



내가 읽고 들었던 거의 모든 명저와 명강의는 용서와 감사를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로 꼽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난 도무지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다다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용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직도 내 안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란 말인가.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들, 그들은 저리도 멀쩡하게, 아니 오히려 더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상처받은 내가 용서를 해야 한단 말인가.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라는 성경 속 말씀에 분노했다. 왜 세상은 늘 선하고 약한 자들에게만 용서를 강요하는가? 오른뺨을 맞으면 너 또한 그들의 오른뺨을 치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미워하고 욕하는 게 뭐가 그리 나쁜가?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혼자 속으로 미워하고 욕하는 것뿐인데...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감사와 용서 없이도, 나만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을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분노와 미움이 내 삶의 동력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 덕분에, 겨우겨우, 어찌어찌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왔기에 차마 내버릴 수는 없다. 이제 와 용서를 해버린다면? 내 삶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무것도... Nothing... 그 공허, 그 허무를 난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 당첨 가능성을 가늠할 수 없는 로또 같은 것이라면, 분노와 미움, 공허와 허무는 내 현실이자 현재 삶의 기둥이었다. 독이 든 사과임을 알면서도 나는 매일 분노와 미움이라는 독 사과를 먹는 선택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용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백번 이해한다 한들, 난 도무지 그 열쇠를 돌려 문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갈망보다 삶의 공허와 허무가 더 무섭고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문득, 하루가 다르게 곱게 물드는 집 앞 단풍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마흔 이후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입에 발린 감사가 아니라 지금 이대로의 나, 오늘의 단풍을 볼 수 있음에, 지금의 나로 살아 숨 쉬고 있음에 대한 감사였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엔 이해와 용서가 함께 한다.


입으로 쉽게 내뱉는 감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나이가 든 덕분이라 생각한다. 삶의 다양한 곡절을 겪으며 경험치가 쌓이고, 그 과정에서 상대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아량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안의 분노와 미움도 점차 사그라졌으니 이런 걸 두고 나잇값이라 한다면 톡톡히 값을 치른 셈이다.

솔직히 아직 용서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용서란 결국 이해의 다른 이름이고, 이해하는 마음에는 감사를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이해하니 상황에 감사하게 되고,
감사한 마음을 품으니
상황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용서란 이해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에는 닿지 못했다. 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사람은 여전히 밉고 싫다.

하지만 그런 미움도 점차 퇴색되는 중.
언젠가는 맑아지겠지. 어찌하겠는가. 이나마도 마흔 중반에 겨우 깨달았으니, 쉰 중반쯤에는? 조금 나아지려니 생각하며.


분노와 미움 대신
감사와 이해로 내 삶을 채워가는 것.
용서는 애써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스며들고 대체되는 것인지도.


감사와 용서,
그리고
이해


오랜 숙제다. 오래될 숙제이기도 하고. 늦게 제출해도 삶은 용서해 줄 테지. 생각하며 오늘 하루에 감사.

#나는t가맞나봄 #오늘도감사합니다
#마흔의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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