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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시점이다: 나를 마주하는 시간

선림유취

by The Emilia Moment
고개를 돌리다가 부딪히니

자기 자신이로구나.

- 『선림유취』

(민음사 인생일력)




외부로만 향하던 시선을 멈추고 고개를 돌릴 때, 비로소 보이는 건 오래도록 외면했던 나 자신이다.

끝없이 책을 읽고, 긴 여행을 떠나고, 고민과 방황 속에서 치열하게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 여정의 끝에 다다르면 마주하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아니, 어쩌면 오랜 시간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돌아온 탕아를 반기는 아버지의 따뜻한 포옹처럼, 마침내 스스로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은 고요하면서도 강렬하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을 경험한다.

답을 찾아 읽기 시작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혹은 먼 여행의 끝에 깨닫게 되는 진실은 이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정이라 하듯, 스스로와의 만남이야말로 가장 어렵고도 긴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는 것.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성찰과 변화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닐까.

결국, 삶은 흐름이 아니라 '시점'일지도 모른다.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상 삶이란 내가 바라보는 시점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의 전환.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과의 진정한 만남이며,

진정한 나로서 살아가는 인생의 첫걸음이 된다.








덧.



오늘 아침 일력 속 글귀를 읽는 순간, 전설의 바리톤 드미트리 호보로스토프스키(Dmitri Hvorostovsky)의 '우리는 얼마나 젊었던가 (Kak molody my byli)'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낯선 자여, 뒤를 돌아보오!
그대의 강직한 눈빛이 익숙하오
그대는 혹시, 젊은 날의 나인가
우리는 항상 스스로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니

-'우리는 얼마나 젊었던가 (Kak molody my byli)'

전설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보여주는 명곡.
유튜브에서 꼭 들어보길 추천.


https://youtu.be/GU1jUiXOJpo?si=xO-v8sVJw3ME0j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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