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아, 이쪽으로 가지 말고, 저쪽으로 돌아서 가.”
예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선배는 내게 말했다.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보고 싶었다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처음으로, 그녀가 내 꿈에 나타났다.
사실 그녀가 꿈에 나타난 건 어떤 계시도, 운명도 아니란 걸 안다. 그저 어제 우연히 그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T 아니랄까 봐.
그럼에도 나는 자꾸만,
그녀의 등장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왜일까.
마흔이라는 삶의 중턱.
나는 아직 많은 이별을 겪지 않았다.
죽음은 언젠가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 죽음이란, 여전히 공감할 수 없는 타인의 경험이다.
그런 내게,
선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언젠가’가 바로 오늘일 수도 있음을
차갑고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지난 2년,
나는 그녀의 죽음을 곱씹었다.
아니, 애도했다.
아니, 결심했다.
그녀가 살지 못한 시간을 내가 값지게 살겠다고.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녀가 살아내지 못한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과연 그녀의 죽음을 애도할 자격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의 모든 선택에는 이 질문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다 할 만큼,
나의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는가.”
그리고 오늘.
조심스럽게 대답해 본다.
그렇다고.
.
.
.
보고 싶었어요.
전 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