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영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사람은 추억이나 기억의 힘으로 살아간다지만, 사실 사람을 끝내 살아남게 하는 건 망각의 힘이다.
– 오수영,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독서만큼 빠르고 쉬운 예방책도 없다.
그럴 땐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아 책장을 훑는다.
오래전 읽었던 낡은 책들 사이에서
작고 얇은, 흡사 메모패드 같은
문고판 책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비닐도 뜯지 않은 채 잠들어 있던 책...
아, 이 책!
기억났다.
이 책을 사들고 나오던 날의 서늘함도 함께.
그날 날씨가 그랬는지, 내 마음이 그랬는지
서늘한 기억을 함께 품고 돌아온 책.
『순간을 잡아두는 방법』
2023년 봄이었을까. 가을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정말 무엇이든 부여잡고 싶었다.
무엇이든 의미가 필요했고,
그래서 사들고 나온 이 책은 금세 의미를 잃고
집 안 어딘가에서 망각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망각의 힘 덕분에
오늘의 나는 다시 이 책을 만났다.
사람을 끝내 살아남게 하는 건
망각의 힘이 맞는구나.
다시,
아니 이제야.
아니, 비로소
만나게 되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