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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Jul 14. 2020

폐쇄병동 일기 - 폐쇄병동의 하루

 놀랍게도 폐쇄병동의 하루는 매우 일정하다. 온갖 사고가 난무하고 정신없는 하루가 될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어느 병동보다 규칙적이게 돌아간다. 심지어 하루 시간표를 미리 공지하는, 예측 가능성이 매우 높은 병동이다.  자 그럼, 이번에는 평범한 병동의 하루를 소개하겠다.


"갑자기 이상한 행동 하는 사람이 많지 않나요??"


 라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당연히 있다. 환자들은 당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치료진은 대부분 


"아... 저분 사고 치겠다..."


 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겠다. 여하튼 폐쇄병동에서 지내다 보면, 그 하루가 놀랍도록 예측 가능하다. 자 그럼, 이번에는 평범한 병동의 하루를 소개하겠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내가 근무하였던 병동의 하루 일과이다. 


 아침 6시 30분이 되면 병동 홀과 복도에 불이 켜진다. 불이 켜지지만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사님(보호사님)이 순찰을 돈다.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주사님이 박수를 짝짝 치면서 환자들을 깨운다. 사실 일어나는 것이 규칙이지만, 많은 환자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주사님이 투덜거린다. "옛날에는 다 깨웠는데... 에휴. 이렇게 활동 안 하면 어떻게 좋아지나." 실제로 예전에는 병동 규칙을 환자에게 강요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인권에 관련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현재는 치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병동 규칙을 강요할 수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협조적인 환자들이 있다. 일어나서 그들은 병동 홀로 모인다. 


"헛 둘셋넷~"


 당직을 서고 있던 레지던트도 주섬주섬 일어나서 홀로 나온다. TV에서는 국민체조가 한창이다. 환자들과 레지던트, 주사님은 각자 자리를 잡고 서서 국민체조를 한다. 외부에서는 새천년 체조라는 것을 한다는데, 입원하시는 분들이 아직은 국민체조를 더 좋아해서인지 아직도 국민체조가 나오고 있다. 나도 국민체조만 아는 세대여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었다. 


 아침체조를 마치고 가볍게 씻고 나오면 병동 출입문을 통해 아침밥이 들어온다. 오전 7시 30분이다. 요즘은 개인 맞춤식이 나오기 때문에 영양사분이 한 분 한 분 이름이 적힌 식판을 들고 이름을 부른다. 와글와글 식사가 진행된다. 보통 추가로 가져온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먹는다. 후식으로 달달한 과자까지 야무지게 드시는 분들이 많다. 병동에서 살이 찌는 분이 많은 것은, 병동 생활이 결코 힘들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10시까지 자유시간이다. 세안, 샤워 등 개인위생이 이루어지고, 잠이 부족한 분들은 다시 잠을 청하기도 한다. 이 시간에 실습생들이 출근을 시작한다. 간호과 실습생이던, 의과 실습생이던 사람이 많으면 어느 정도 분위기가 밝아진다. 환자들과 어울려 지내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고군분투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여하튼 시간이 흘러 10시가 되면 오전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오전 프로그램은 주로 활동을 늘리는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활동적인, 즉 몸을 쓰는 일들이다. 힐링 댄스, 요가, 노래방, 공작시간 등이다. 나는 힐링 댄스 시간을 좋아했다. 몸을 30분 정도 쓰고, 20분 정도는 누워서 몸을 정리하는 시간인데 이때 몰래 잠을 잘 수 있었다. 


 프로그램 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자유시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이때 담당의와 면담, 심리검사, 교수님 회진 등이 이루어진다. 싫으면 거부할 수 있지만, 보통 동의하신다. 자신도 도움을 받고자 입원하였기 때문인지, 환자분들은 치료진에게 보통 협조적이다. 면담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책상과 컴퓨터 하나 덜렁 있지만, 그곳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진다. 


 점심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특식을 주문한다. 다만 특식이 늦게 들어가거나 하면 반영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럼 약간의 소란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사실 특식이라고 엄청 맛있는 것은 아니라서 그냥 일반식을 드신다. 점심은 거르는 분이 거의 없어서 좀 더 활기를 가진다. 실습생들도 번갈아 나가서 식사를 한다. 


 오후 2시부터는 다시 프로그램 시간이다. 조금 바쁜 느낌인가? 보통 오후 프로그램은 머리와 감수성을 쓰는 시간이다. 병동 회의를 하기도 하고, 서예, 회화 시간 등이 있다. 나는 서예 시간을 좋아했다. 봉사활동을 오시는 서예 선생님에게 묵으로 대나무 그리는 법을 배우면서 재미를 느꼈었다. 환자분들 중에는 오후 프로그램을 잘 참석하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점심 먹고 딱 졸린 시간이기에 낮잠을 자는 것이다. 실습생들이 총출동하여 같이 하자고 꼬드기는 풍경이 벌어진다. 


 프로그램 시간은 1시간 정도이고, 마무리되면 산책시간이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못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안정된 환자들과 전공의, 실습생들이 병원 잔디밭으로 나가서 공도 차고 배드민턴도 했었다. 많은 환자들이 산책을 굉장히 좋아했다. 건물 내부에만 있는 것이 쉽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공의들도 햇볕을 쐴 수 있는 시간이다. 


 산책시간도 끝나면 다시 자유시간. 자유시간에 젊은이들은 주로 병동에 있는 보드게임을 하거나 탁구를 치고,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TV를 보거나 책을 읽기도 하셨다. 더 중요하게는 대화를 많이 하셨다. 재밌는 것이 많지 않으니 대화를 하게 되면서 서로 위로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가끔은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보통 서로 본체만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한 달 이내로 퇴원이 이루어지는 급성기 병동이기에 큰 문제는 없다. 


 저녁시간이 되고, 저녁식사가 끝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병동 만남 시간을 가진다. 이때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서로 정보를 나누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앞에서 하는 시간을 가진다. 환자분들이 이 시간을 상당히 좋아한다. 특히 할머니들이 이 시간에 먹을 것을 가지고 오셔서 나눠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서로를 칭찬하기도 하고, 조증으로 너무 활동적인 분들은 타박을 당하기도 한다. 여하튼 재밌는 시간이다. 


 이제 10시까지 자유시간이다. 10시에는 취침시간이고 이때부터는 불이 꺼진다. 환자들은 각자의 활동을 하면서 투약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전체적인 하루는 이렇게 돌아간다. 별 것 없지 않은가? 폐쇄병동이라고 별로 바깥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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