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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May 20. 2020

폐쇄병동 일기 - 노래방

내가 일한 병원 폐쇄병동에는 놀랍게도 노래방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매주 1~2회 노래방 시간이 있고, 그때 많은 환우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친다. 긴장하고 떨다 보니 잘 부르지는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회불안이 있는 분들에게는 치료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유도하기도 한다. 가끔은 엄청나게 잘 부르는 환자분이 들어와서 거의 단독 공연을 하기도 한다. 여하튼 즐거운 시간이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음악으로 채워진 시간. 그것이 노래방 시간이다.


노래방은 선곡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수련의 시절, 노래방 시간이면 이런저런 노래를 불렀다. 보통 분위기를 띄우는 즐거운 노래를 불렀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병동에 복귀하였고 노래방 시간이었다. 나는 고 김광석 씨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불렀고, 환자들의 우울증을 악화시킨 죄로 동료에게 핀잔을 들었다. 또 다른 최악의 선곡으로는 이적 씨의 '거짓말'이 있다. 대학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은 가족이 그만큼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홀로 병동에서 지내야 하는 환자들은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노래 '거짓말'에는 자신을 버리고 간 사람에 대한 원망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노래방 시간이 끝나고 전화기 앞에 긴 줄이 늘어섰고, 곧이어 스테이션으로 부모님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는 후일담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런 웃지 못할 사연들은 그만큼 노래 하나가 그들의 감정에 큰 영향을 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정신과 의사들이 피나는 수련 끝에 엄청난 지식과 이론으로 무장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환자와 보호자에게 교육을 하고 이론을 설명해도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교육을 듣는 당시에는 이해를 하는 것 같지만, 자발적이지 않은 이해는 순식간에 잊힌다. 결국 의사들은 그들의 감정을 움직여서 변해야겠다고 '느끼는' 상태로 만드는, 어쩌면 기술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능력을 가져야 치료에 성공할 수 있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노래방 시간에 꼭 참여하라는 노교수님들의 조언은 어쩌면 공부하는 것이 익숙한 젊은 의사들에게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폐쇄병동과 노래방.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시설이 참으로 오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Photo by Anna Ear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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