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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Nov 04. 2020

배움의 단계

이번 시간에는 뇌과학과 약간 짬뽕해서 배움의 단계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과학적인 내용은 아닙니다만, 적당히는 맞으니 넘어가 주세요.(라고 스스로에게 최면...)




인간의 뇌는 신경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신경 세포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팔과 신호를 전달하는 팔이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신호가 발생해서 -> 신호를 받아들이고 ->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이 수십 차례 반복되면 하나의 명령이 전달됩니다.


이게 딱 한 줄로 쭉~ 가는 것이 아니고, 서로 간섭을 일으키며 Network를 형성합니다. 


여러분이 '학습'을 한다는 것은 이 신경 세포의 Network가 변화하는 과정입니다. 




여러분이 뭔가 하나를 배운다고 생각해봅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 학습과 관련된 신경 세포가 하나도 없겠죠? 


학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0단계입니다.


이 때는 그냥 無의 상태입니다.




자 이제 학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뇌라는 것이 갑자기 신경세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잖아요?


다른 것을 학습한, 다른 신경 세포들은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이것을 자원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도를 해봅니다. 


이미 다른 학습을 한 신경 세포를 빌려 쓰는 느낌이지요. 


어떤 신경을 빌려와야 하는지 그때그때 확인해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배워나갑니다.


이때, 지금 학습하는 것과 유사한 과거 학습한 신경 세포를 끌어다가 쓰려고 하겠죠.


그래서 이전에 배운 것과 비슷한 것을 배우면 처음에 쉽고, 생전 처음 하는 것을 배우면 처음에 너무 어렵죠. 


포토샵 잘 쓰는 사람은 일러스트레이터를 처음 잡아도 좀 쓸 수 있겠잖아요? (그렇죠?)


이것을 1단계라고 합시다.




계속해서 학습하여 익숙해지면 뭔가 되는 것 같은데, '아는데 안 되는' 지경이 옵니다.


이건 신경 세포를 빌려서 쓰는 것은 마스터를 한 거죠. 


그런데 그 학습 전용의 신경 세포는 생기지 않은 단계입니다. 


롤 할 때 분명히 궁을 눌렀는데 안 나가죠? 아직 이 단계라서 그래요.


무슨 신경 세포를 빌려야 하는지도 알고,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경이 아직은 빌려 쓰는 단계라서 절차도 있고, 거쳐야 하는 단계도 많습니다.


이것이 2단계이죠. 


이 때는 굉장히 괴롭기도 합니다. 아는데 안 되니까 엄청 화나요.


그리고 이 단계부터는 이전에 배워놓은 다른 학습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건 3단계를 하고 설명을 드릴게요.




마지막 3단계입니다. '무아지경'이라고 표현하지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이제 전용 신경 세포가 형성돼서, 명령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크킹 처음 할 때는 누구를 암살해야 할지 가계도 뒤지고 클레임 확인하고 엄청 어렵죠?


그렇지만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별생각 없이 죽이면 내 땅이 넓어지는 시기가 옵니다.


몸만이 아니라 지식도 그래요. 이걸 통찰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3단계, 전용 신경 세포가 형성된 단계입니다. 


이 단계가 되면 이제 자동으로 움직여버리는 단계가 됩니다. 


그런데 나쁜 경우가 있어요. 


수영할 때 제대로 된 자세를 학습하지 않고, 약간 휘어진 자세가 편해서 그것대로 연습이 되어서 3단계가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이제 제대로 된 자세를 학습하는 것을 이전에 학습한 약간 휘어진 자세가 방해합니다.


이미 익숙해져 버려서 전용 신경 세포가 생겨버렸기 때문에, 2단계에서 신경 세포를 잘 빌려오느니 차라리 이미 학습된 전용 신경 세포를 써버리는 것이죠. 




우리는 어떠한 것이든 이 0 ~ 3단계를 거쳐가면서 배웁니다. 


운동도, 게임도, 공부도 다 이 단계를 거칩니다. 


0 ~ 2단계까지는 사실 고행입니다. 3단계에 도달해야 쓸모가 있고 진짜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거의 대부분의 일이 3단계가 되어야 하니까 '1만 시간의 비밀' 같은 말이 도는 것이죠.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는 0 ~ 2단계를 잘 버티도록 도와줍니다. 


당근을 줄 수도 있고, 채찍을 줄 수도 있고, 배우는 사람에게 목표의식을 줄 수도 있겠죠.


여하튼 인고의 시간을 거쳐 3단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써먹을 만 해집니다. 




감정 관리도 이 단계를 거쳐가면서 배웁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이미 우리가 문제라고 인식한 감정 관리법이, 나의 3단계 상태라는 것입니다. 아까 예로 든 수영에서 잘못된 자세를 배운 것과 같은 형국이지요. 


여러분의 삶의 과정과 유전 등등의 모든 경험의 총집합으로, 현재의 문제가 되고 있는 감정 관리법 전용의 신경 세포가 엄청나게 생겨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즉... 여러분이 새로운 감정 관리법을 익혀도, 그 녀석이 제대로 작동하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을 안 한다는 것이죠.


익히는 과정 중에 조금만 방심해도 이전의 감정 조절법이 먼저 작동해버립니다.


그래서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몇 번 해보고 '에이 안되네.'가 나오지요.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신경 세포가 너무나 튼튼하고 뚜렷해서, 바뀌지를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별로 재미도 없고, 바꾸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안 들지요. 


학습은 3단계가 되어야 쓸만해지는데, 새로운 감정 관리법을 3단계까지 익히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강조)


분명히 가능합니다. 실제로 효과를 보는 분도 있고요. 


어렵고 틀리는 것 같아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학습도, 반복하면 신경 세포가 조금씩 생겨납니다.


결국은 됩니다. 중간에 포기하지만 않으면요. 


뭐든 배워야 하는 요즘 세상, 다들 이 학습 단계를 생각하면서 처음을 참고 견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정 관리, 대인관계 기술 등등도 지금까지 익숙해져 버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만... 결국 해낼 수 있습니다. 


가끔 이것을 못 견디는 환자분들에게 속이 답답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잘 이끌어내고, 그걸 잘해야 좋은 정신과 의사이겠지만...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네요 ㅠㅠ




힘든 세상이지만, 잘 학습하다 보면 좋은 세상이 오겠죠! 파이팅하는 한 주 되세요!




*사족으로, 내 친구는 롤 5년 했는데도 궁 눌렀는데 안 나간다던데?라고 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겠네요. 이건 롤의 궁극기를 학습하지 않고, 그냥 감에 맡겨서 누르는 경우가 이렇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학습으로 그냥 누르면, 롤의 궁극기에 대한 학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학습한 감만 학습이 강화될 뿐이죠. 그래서 프로게이머들은 이런 것을 신경 쓰면서 롤을 '공부'하는 느낌으로 학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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