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애가 거부 판결을 받을 때.
어떻게 하면 나를 좋아할 건데?!
남자는 미칠 노릇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인을 가지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그러나 여자는 자기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안 생긴다는데. 내가 억만금을 바쳐도, 내가 살을 빼도, 내가 리포트를 대신 써 줘도 네가 좋아지지 않는다는데. 어쩌겠는가. 남자는 허망하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일까.
여자는 남자가 부담스럽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남자는 괜찮은데, 그 남자는 거북하다. 분명히 이전에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이 남자가 부르니 소름이 끼친다. 모르겠다. 나에게 정말 잘해주는 것 같은데, 별로다. 이 정도로 나에게 정을 쏟는데. 내 앞에서 내가 좋다는데. 그래도 좋아지지 않는다. 아니 싫다. 이 남자보다 훨씬 못나지만, 다른 남자가 차라리 나한테는 맞는 것 같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주변에서는 다 저만한 남자 없을 거라는데.
이미 판결은 나왔다.
인간은 수많은 사건을 기억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서 살아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특히 대인관계 측면에서 이런 판단을 수도 없이 내렸다. 길가를 걸어만가도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위험한 인물과 덜 위험한 인물을 구별하면서 걷게 된다. 이런 기억과 판단은 엄청나게 빠르게 행동을 결정한다. 동물인 인간은, 생존이 최우선이다. 여자는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이 본능보다 빠른 판단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유전자 수준에서 알고 있다.
여자가 내린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여자가 본능이라고 느낄, 정말 빠른 속도로 내린 이 판단에서 남자는 통과하지 못했다. 안전한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된 것이다. 그 이유는 모른다. 여자도 모를 것이다. 콧수염 때문일 수도 있고, 점 때문일 수도 있다. 목소리의 어떤 부분일 수도 있고, 손가락을 펴는 각도일 수도 있다. 여하튼 남자는 여자를 지금까지 지켜줬던 수많은 판단들의 결과물, 즉 통찰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에 의해 판단되었다. 사랑할 수 없는 남자라고. 수십 년 후에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이 여자일지, 남자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여기서 남자는 그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
뒤집으려면, 기다려라.
이 판단이 여자에게 법관이 내린 판결문처럼 뚜렷한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자가 그 남자를 생각할 때마다 미약한 거부감을, 왠지 모를 불편함을, 기분 나쁜 예감을 심어준다. 인간은 이런 기분에 민감하다. 결국 피하게 된다. 여자는 이렇게 위험을 회피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남자는 더 여자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여자에게는 위험이 더 다가오는 것이다. 괴물이 쫓아오는데, 여자는 달아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여자는 왜 무서운지 모르지만, 도망치고 싶어질뿐이다.
본능처럼 내려진 결정은 한 번의 말, 한 번의 이벤트로 뒤집을 수 없다. 그 여자가 내린 판단의 근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여자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반론이다. 잠시 마음을 멈추고, 자신을 발전시키자.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대화하자.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미래를 설계하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사람이 되자. 그 여자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노력할 수도 없다. 정공법이다. 남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그 여자도 멀리서, 조금씩,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릴 근거가 쌓일 것이다. 재심의 기회는 천천히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