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수아 - 오 페드로우소
너무 추워서 오랜만에 잠을 설친 밤.
전날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빨아 놓은 옷이 마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 날은 시작부터 비가 왔다.
순례길 36일 차에 우비를 입고 떠나는 아침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내내 비가 왔다.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Santiago de Compsostella(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대서양과 맞닿은 Galacia(갈라시아) 지역에 있다.
바다 근처여서인지 스페인 내륙 지방보다 비가 훨씬 많이 온다.
초반에 우비 쓸 일이 없었어서 날씨 운이 넘치는 순례자가 된 줄 알았는데, 갈라시아로 넘어오는 O‘cebreiro(오 세브레이로)부터 매일같이 비가 왔다.
축축한 상태로 걷는 건 제약도 많고 귀찮아지는 일도 많아 더 빨리 지친다.
후반 긴축정책으로 돈을 아끼겠다 다짐했는데 바가 보여 또르띠야와 카페 콘 레체를 시켜 먹었다.
이상하게 비가 오는 날이면 따듯한 라떼가 먹고 싶었다.
긴 거리도 아닌데 잔뜩 지쳐서 걸었다.
와중에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20km의 벽도 깨졌다.
산티아고 도착 전 마지막으로 묵은 알베르게는 시설이 좋았다.
한 방에 5명만 배정되는 알베르게는 까미노 위에서 5성급 호텔 같은 곳이다.
게다가 난 홀로 온 순례자였기 때문에 1층 침대에 배정받는 호사도 누렸다.
유명한 스테이크 가게가 있기로 유명한 동네여서 한국인들은 죄다 그 가게로 갔다.
난 끝까지 고민하다 스테이크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돈도 아껴야 했기 때문에 숙소에서 전자레인지로 라면을 해 먹었다.
여기에 슈퍼에서 산 레토르트 생선 야채구이까지 곁들이니 스테이크 대체라고 하기에 호사인 한 끼였다.
짧은 거리에 하루가 일찍 마감되어 밀린 블로그와 일기와, 그동안 미뤄뒀던 버스와 비행기까지 모든 걸 다 해결했다.
이제 산티아고까진 20km밖에 남지 않았다.
나의 순례길의 끝은 그곳이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