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페드로우소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날이 밝았다.
나는 고민 끝에 서쪽 끝, 피스테라와 묵시아까지 걷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 날 일정이 내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산티아고에 들어선다는 건 확실히 엄청난 일이었다.
잔뜩 지쳐 걷는 길이었다.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다들 끝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축축 처졌다.
EJ님은 다리 통증을 호소했고 나와 YH님도 야트막하지만 끝이 없는 오르막 내리막길이 지겨웠다.
산티아고 공항 근처 유명한 바에서 케이크를 먹으며 쉬어갔다.
산티아고가 가까워오자 인구밀도가 엄청났다.
사리아부터 종종 걸으며 교통 정체를 느낄 수 있는 구간들이 있었다.
와중에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전반-중반까지 가방에 처박혀있기만 했던 우비는 오 세브레이로 산맥을 넘으며 가방 깊숙한 곳에 들어간 적이 없다.
드디어 비석이 10km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이제 눈앞에 대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티 외곽에서 Santiago de Compostella 글자를 봤을 뿐인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도심을 지나 화살표를 따라
노랫소리가 들리는 골목을 지나면
780km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눈앞에 드러난다.
평소의 나라면 감격해 울 만한 풍경인데 예상외로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멍- 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지난 몇십 일간의 까미노의 끝인 건가?
사실 내 최종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었기에 더더욱 감동이 없었던 것 같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인증샷을 남겼다.
그동안 같이 걸었던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감동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처지는 발걸음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성당을 찍고 떠난 지 오래였던 듯하다.
산티아고까지 오는 길엔 몇 킬로가 남았는지 알려주는 비석이 있었지만 정작 산티아고에는 0km 비석이 없다.
기념품샵에 달려있긴 하지만 오피셜 비석은 아니다.
오피셜 0km 비석은 다름 아닌 피스테라와 묵시아에 있다.
인증샷 소동이 끝난 후엔 인증서를 받기 위해 이동한다.
컴퓨터에 출발한 곳을 입력하고 크레덴셜 확인을 받으면, 생장 피에드포르부터 779km를 걸었다는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숫자로 보니 한 달여간의 모든 고생길이 피부로 느껴졌다.
3박을 머물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양말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내 몸은 물론이고 한 달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장비들도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저녁은 한국식 고기 뷔페에서 모였다.
서로 안면만 있는 JH & SY 커플과 EJ & YH가 산티아고까지 와서야 처음으로 밥을 먹는 자리였다.
고기와 라면과 볶음밥과, 김치까지 계속해서 리필해 먹으며 완주를 축하했다.
산티아고 둘째 날엔 그동안 못한 게으름을 몰아 피우겠다며 먹을 때 빼곤 침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산티아고까지 와서 이럴 일인가 싶었지만 삐걱거리는 몸이 그걸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