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땡볕도 오르막도 결국 끝이 있다

네그레이라 - 라고-아벨레이로아스

by 정한결

전날 산 땅콩버터와 사과를 아침으로 먹고 7시 반에 길을 나섰다.


아침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안갯속에 피어오르는 해가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수많은 일출과, 일몰과, 노을을 만났지만 한 번도 아름답지 않은 적 없었다.


산티아고 도착 전부터 아슬아슬했던 이어폰이 본격적으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산티아고에서 살 걸 후회해 봤자 이미 늦은 일이었다.

유일하게 피스테라-묵시아 루트를 걷는 YH님은 나보다 일정을 하루 늦게 시작했기에 대화하며 걸을 사람도 없었다.

음악도, 대화도 없이 내내 걷는 순례길은 상상만 해도 고통이었다.


원래 계획은 12-13km대에 있던 마을에서 쉬어 가는 거였는데, 바가 없고 집만 있던 곳들이어서 그냥 지나쳤다.

힘들어도 절대 길바닥에서는 쉬지 않는 게 나의 고집스러운 철칙이었다.


결국 출발 지점에서 21.3km를 걷고서야 바를 발견해 들어갔다.

당시엔 ‘어떡해, 해야지’ 였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역시 웬만한 정신머리로는 못 할 짓이다.

바에서 거의 기다시피 카운터로 가 트윅스 하나를 주문했고, 먹고 한동안 널브러져 있었다.


날씨도 좋고 길도 예뻤지만 후반부에 갑자기 엄청난 오르막이 등장했다.

목적지의 알베르게 이름이 Monte Aro여서 불안감은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었다.


이미 체력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해까지 쨍쨍 내리쬐는 극한의 날씨였다.

눌러쓴 모자에 앞으로 남은 오르막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출발 7시간여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쨍쨍 내려쬐는 해에 손빨래한 옷을 말렸다.

태양은 걸을 때 고통이지만, 일정 이후엔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


너무 힘들어서 밥을 사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안 그래도 늦은 스페인의 저녁시간까지 기다릴 힘도 없었기에 그냥 산티아고에서 산 라면을 전자레인지로 끓여 먹었다.

알베르게에 딸려있던 바에서 산 콜라까지 곁들이니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었다.


낮의 고생이 무색하게 오후 시간은 밀린 일기를 쓰고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일기를 쓰며 여유롭게 보냈다.

주황빛 노을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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